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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달 연대기 관련 커뮤니티 반응 모음 1

반응 모음이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1번...
커뮤니티 반응 중에서 읽을만한 글 아카이브



(아갤)어째서 아스달 고증오류가 더 욕을 먹는가? 300과 비교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asdal&no=38076)

*이 글은 망한 영화 리뷰 전문 유튜버 거의없다 님의 영상에서 많은 내용을 따 왔음을 미리 밝힙니다*


영화 300은 고증을 개나줘버린 영화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 점 때문에 욕을 많이 먹기도 했다

하지만 그 점 때문에 욕을 먹어도 아스달만큼 쓰래기 취급을 받지는 않는데 그 이유로 액션 영상미 등 수많은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점이 영화만 보는 과정에서 크게 방해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 이유들을 정리한 것이다

1. 고증에 대한 태도 

우선 300은 모든 제작진이 대놓고 고증 안했다고 자신있게 말한 영화다 덤으로 장르는 판타지 모험극이라고 주장한다 

언듯보면 아스달과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지

하지만 적어도 원시인의 이빨갰수 같은 헛소리로 변명을 하지 않고 스스로 하지 않았다고 인정하면서 마음대로 만들었다고 말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은근히 관대해서 스스로 인정한다면 잘 받아 주기도 하니까!


2. 대사로 내용설명

300에서도 은근히 대사로 상황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근데 왜 아스달처럼 욕을 먹지는 않을까???

우선 300은 액자식 구성을 이용했다. 

영화 본편의 내용은 과거이며 화자는 딜리오스라는 인물이고 그가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사기를 올리기 위해 과거의 일을 들려주는 구성이다

독백을 하는 주체가 그 상황속 에서 연기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그 상황 밖의 인물이 된다는 점이에 아스달과는 다르다

이 구성 하나만으로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대사로 하는 상황설명들이 어색하지가 않게 된다 

또한 설명을 할 때는 주로 눈뽕을 주는 장면과 함께하여 해당 장면 상황을 짧은 시간에 직관적으로 받아 들일 수 있게 해준다

대사만을 위해서 장면을 만든 아스달과 달리 장면을 위해 대사를 쓴 것이다

거기다 대사를 넣는 상황도 뜬금없지가 않다

이모탈들과의 전투 전 대사로 이모탈들을 설명하는 장면을 보자

이 장면이 대사로 캐릭터들에 대 설명하는 어색한 상황으로 보이는가???

왜 그렇게 안보일까???

간단하다 전투 전에 아군에게 자기가 적군에 대하여 아는 정보를 알려주는 장면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스달에서는 이런 상황설정을 통한 디테일을 볼 수가 없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말타기 장면에서 독백하기 라던가 그런 식으로 딱히 화면에 집중할 필요가 없는 상항에서 대사로 내용을 설명한다

게다가 화면과 소리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영상물에서 무의미한 화면에서 소리로만 정보를 전달하니 화면에는 집중이 안되고

그렇다고 300처럼 눈뽕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눈은 자연스럽게 다른 정보를 찾게 되니 어색한 점만 눈에 들어온다 


3. 스토리 내부에서의 개연성

300에서 대표적으로 고증을 무시한 이모탈을 보자

이러한 고증을 무시한 복식등에 대하여 일단 야간습격부대라는 설정을 깐 뒤에 

공포를 부르기 위한 복장이라는 설정을 추가로 깔고, 죽일 수 없는 적이라는 공포석인 아군의 반응을 보여줘 정당성을 부여한다 

여기에 주인공측에서 이놈들은 가면을 통해 얼굴이 같아서 죽은 놈들이 또 오는 것처럼 보이니까 죽일 수 없는 것처럼 착각한 것이라는 설명을 추가하여 영화 내부에서는 최대한 어색하지 않은 장면을 완성한 것이다.

추가로 이모탈들의 맨얼굴이 등장하는 것은 미리 죽일 수 없는 괴물이라는 아군들의 반을을 통해 미리 깔아둔 것이 있어 좀더 쉽게 받들일 수 있도록 준비를 한 뒤

본격적으로 판타지스러운 괴물들이 등장하는 것은 이 이후로 하며 그나마 순서대로 받아드릴 수 있도록 설계를 깐다

우선 개연성을 부여하고 그걸 바탕으로 순서대로 판타지스러운 장면들을 진행시켜 나간 것이다

이에 비하여 아스달을 보자 우선 개연성부터 망가져있다 

거기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각종 오류 장면들에 내부적으로 정당성를 부여하는 과정들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간단히 가설을 만들자면 타곤예수 반딧불 장면에서 그 10분 전쯤에 타곤이 흑인상인으로부터 큰 돈을 주면서 향수모양의 병에 담긴 물약같은 것을 사는 장면을 3초만 넣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 순간 수많은 장면에 그나마 의미가 생기게 된다 

이런 디테일 하나도 없이 판타지 고증 어쩌고 타령을 하고 있으니 욕이 안나올 수 가 없다


4. 뇌정지 시키기

이와같은 준비를 해두면서도 300은 시작부터 남자도 벗기고 영화 여자도 벗기면서 일단 뇌정지를 시키고 시작한다

영화보는 동안 잡생각이 나지 않도록 미리 설계를 까는 것이다

거기에다 특의의 영상미와 액션으로 필요없는 생각을 할 시간이 없도록 계속 몰아친다

이에 비하여 아스달은 시작부터 수준낮은 cg(뱀 제외)때문에 잡생각이 무럭무럭 치솟게 만든다

거기다 내용이 크게 복잡한 것도 아닌데 스토리의 진행속도도 빠르지 않아서 지루하게 되고 그 사이에 독백으로 흐름을 또 끊어먹으니 드라마 보면서 딴생각이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그 결과 드라마의 흐름에 집중할 수 가 없고 이상한 점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욕을 먹게 되는 것이다.


결론: 판타지를 근거로 고증을 하지 않았으면 변명하지 말고 솔찍하게 밝히면서 그것을 대신할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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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갤)까놓고 지금 아스달을 판타지장르물이라고 부를 이유가 뭐가 있냐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asdal&no=38008)

무당, 신녀 등은 실존했던 직업이고 한드에서 딱히 판타지 요소가 아니라 일반 사극에서도 나오는 단골 요소임. 현재 아스달에 나오는 흰늑대할머니나 부족 무당, 아사족 등의 역할과 백스토리가, 예를 들어 기존의 "주몽"에 나온 신궁과 여미을에 비해 판타지급으로 더 독창적이고 체계적인 부분이 있음?

그럼 남은건... 뇌안탈 하나 정도? 아님 생각하는 말(horse)...?

실존 인물 유무에 따라 영화 알렉산더가 대하"역사극", BC10000이 대하"모험극"으로 각각 분류되고,

신화적 인물이 베이스라도 나름 현실적인 시대적 배경과 서사를 갖다댄 영화 아킬레스가 대하"시대극"/대하"드라마극"으로 분류되고, 

신화적 인물 베이스에 용사와 마법사, 괴수, 탈인간급 위대한 로맨스들을 채워넣고 비로소 "판타지"로 분류되는게 킹 아더, 보통 이런 식인데, (킹아더 영화는 워낙 많아서 개중엔 나름 현실적으로 접근해 비판타지이자 대하역사물로 분류되는 것들도 있음)

아스달이 꼭 판타지라고 불려야 할 이유를 모르겠음. 기존 사극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 세계관, 어차피 다양한 부족사회였던 시대관에 그냥 좀 특이한 부족 이상으로는 별 설정도 없어보이는 뇌안탈 하나 달랑 끼워넣으면 판타지급으로 방대하고 독창적인 세계관이 되는건가? 

뇌안탈은 애초에 은섬이나 타곤을 아웃사이더로 만들기 위한 일개 수단일 뿐이지 작가 세계관의 애정어린 산물이 아닌 거 같은데.

판타지가 뭐라고 생각한걸까?

판타지인데 고증이 왜 필요해요, 배우들 이빨 몇 대 좀 뽑아드려요~?라는 식으로, 단지 귀찮은 부분에서의 면책도구로만 판타지를 휘두른 건 아니고?

판타지라고 하면 자고로, "나에게 이렇게 엄청난 상상력의 산물, 세계와 크리쳐가 있고 그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이 날 지경인데 내 전문지식이 모자라 허구스럽고 고증이 안된 부분도 좀 있음. 그렇다고 그 전문지식을 다 배우자니 내 살아생전에 작품이 못나올 거 같음. 물론 그런 구멍들을 다 덮을 수 있을 만큼 내가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 보여주고자 하는 세상은 독창적이고 방대하고 매력적임. 자! 보세요. 이 정도면 감점포인트보다 득점포인트가 더 많은거임" 이런 진지한 거래가 있어야함. 

현재 아스달을 보는 내 느낌은 그 거래에서 사기를 당한 느낌임. 한여름 야시장, 카니발축제같이 그냥 온갖 잡다한 걸 알록달록하게 때려넣기만했지 독창성이 없고 관계성도 없음. 벌써 8회나 지나갔는데 이게 왜 판타지인 척을 하는지를 모르겠음. 그냥 부여국에서 일어나는 정치싸움이라고 해도 상관없을듯. 

심지어 재미도 잘 봐줘야 평타수준... 밑에 어느 누가 "카타르시스를 느낄 갈등해소도구가 없는게 문제"라고 적었는데, 내가 보기에 더 큰 문제는 그런 카타르시스를 굳이 느껴야 할 이유조차 지금 없다는 거임. 지금 갈등이 딱히 뭐가 있어? 불쌍해야할 와한족, 이겼으면 좋겠을 은섬은 불쌍하지도 않고 그냥 겉돌고만 있는데? 타곤은 뭔가 늘 분주히 하고 있으니 아 그런가보다 하고.

재미도 부실하고 판타지의 매력도 없는게 판타지 행세해서 한국의 왕겜이라며 투자 유치하고 글은 안일하게 쓰고, 처망하면 아직 한국 대중에게는 판타지 장르가 낯설다 운운하며 판타지 장르의 특수성만 두들겨 패고 공공의 적 만들어 쏙 빠져나갈게 뻔하니까 아스달은 정말 양심없음의 극치다. 대작이 나와서 주가 상승을 견제하는 자들이 고의적인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반응은 심지어 너무 치졸해서 실소만 나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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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갤)☆ 아스달 주요장면 시간 정리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asdal&no=37957)

이부분만 보고싶은 갤러 참고하셈
초는 약간의 오차 있음

<1회>
갓가즈 등장 - 5분 32초
해골 - 50분 13초

<2회>
유황길 - 43분 55초
맥도날드 - 44분 40초
정령댄스 - 49분 51초

<3회>
그놈드른 너무 강아고 - 2분 35초 (풀존맛 포함)
안대! 왜도라 - 5분 10초
엘리베이터 멀미 - 21분 10초 (토하는 장면 주의)
글로벌아스달 - 1시간 17분 38초

<4회>
산업혁명 - 4분 33초
귀곡성 - 57분 50초~
요기요 - 1시간 11분 5초

<5회>
예수 - 1시간 17분 17초

<6회>
너좀무섭다 - 43분 10초

<7회>
삐에제에에뜨!! - 14분 23초
해투악 vs 탄야(졌다..) - 53분 51초

<8회>
약한 사내다 -  1시간 6분 29초

보다보니 정든다
재밌는 씬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더 추가하도록 노력해보겠음 많이들 보셈


옥빈좌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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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갤) 현직 영화스탭에게 들어본 아스달의 문제점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asdal&no=37457)


영화 촬영스탭하는 친구랑 오랜만에 만났음. 시골 배경으로 하는 할머니가 주인공인 무슨 영화 찍었다는데 사실 무슨 영화인지는 기억 안나고

근황 토크 하다가 그 친구도 아스달에 관심이 많은거 같아서 왜 아스달이 똥작이 됐는지 몇가지 이야기를 들어본 걸 정리 공유함

참고로 이 친구는 영화스탭 일은 3년 정도 했고 영화 비수기 때는 각종 행사나 공연 사진, 영상촬영 알바 하면서 살고 있음



- 아스달 제작비 비중 중에 CG 제작비가 제일 높아야 정상이다

CG는 100% 노가다로 들어가는 작업이고, 영화에서 능력자가 하는 것처럼 대충 드래그해서 만드는 CG는 없다고 함

대규모 전투씬이면 복붙으로 숫자를 늘릴 순 있지만 아스달은 그런 대규모 씬이 필요한 경우가 거의 없음

한국이 나름 영화판에서 CG로 유명한 나라인데, 디워가 온갖 욕은 다 처먹었어도 CG하나는 좋았다는 평가가 있음

심지어 스타워즈 어벤져스 같은 히트작에서도 한국 CG팀이 꼭 들어갈 정도의 실력임

왜 한국 CG가 좋은가? 오랜기간 실력과 노하우가 쌓인 것도 있지만, 열정페이와 크런치 모드식 야근으로 쭉쭉 빨아먹으며 만들기 때문임.

주5일제 40시간 철저히 지키는 서구 영화판은 절대로 따라올 수 있는 한국의 강점(...)임


- 아스달 제작비중에 CG 비중 얼마인지 까보면 진상이 드러날것

아스달이 언플한걸 보면 '신과함께'보다 CG 분량이 2배가 많고, 신과함께 CG팀이 아스달 CG도 만들었다고 함

그런데 아스달 CG의 만듬새를 보면 같은 팀이 만들었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수준임

드라마인걸 감안하면 신과함께 때보다 인력을 2~3배 늘렸어야 신과함께와 같은 퀄리티가 나오는 건데

지금 퀄리티는 CG팀에서 기존 인력 숫자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제작한 걸로 보임. 시간이 쫓긴 상태로 만들다 보니 디테일이 떨어지는게 당연하고, 미드의 고품질 CG에 길들여진 시청자의 눈에 그런 허접함이 보이지 않을 수가 없음

물론 아스달 CG가 완전히 개판이라는건 아님. 최대한 객관적 시각에서 드라마를 보면 10장면 중에 9장면은 CG 퀄리티가 나쁘지 않음. 수준급이라고 할 장면(1화 뱀 등)도 꽤나 많음. 하지만 잘 나가다가 10개 중 한두 장면에서 삑사리가 나는데 이게 큼. 감독이 일반 시청자들은 모르고 지나가겠지 싶어서 놔둔 걸수도 있는데, 한국 시청자들 수준이 선덕여왕 시절보다 한참 올라간걸 간과한 것임

특히 장동꼬가 임팩트가 컸음. 시청자들은 아스달에서 왕좌의 게임 수준을 기대한건 아님. 하지만 장동꼬 부분이 너무 시선강탈이고 그 장면 때문에 계속 CG 수준을 트집잡고 싶어하게 만드는 드라마임


- CG보다 먼저 배우를 촬영한게 아닌지 의구심

친구 말로는 아스달 주연배우들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그럭저럭 연기가 나쁘지 않은 비주얼 배우'라고 함. 연기력 똥망 평가 까진 아니라고.

은섬이 산웅을 인질로 잡은 장면을 예로 들어 보겠음. 두 배우의 발성은 상당히 아쉬움. 하지만 동건이형의 표정연기는 남자가 보기에도 꽤나 멋있었는데 여자들이 보기엔 어땠을까 싶음.

배우들의 실력이 갑자기 똥망이 됐다기 보다는 CG팀과 촬영팀 사이에 뭔가 문제가 있었던게 아닌가 짐작이 감.

CG 촬영시에는 알다시피 초록색 벽에 기준점만 표시해 두고 거기에 맞게 연기한 다음에 연기 장면과 CG 장면을 합쳐서 방송분을 만듬

정상적으로 촬영이 진행됐다면 각 씬마다 어느 자리에 어떤 CG가 들어갈지, 배우에게는 어떤 CG 효과가 들어갈지가 촬영 전에 다 결정된다고 함.

CG를 먼저 만들어 두고 연기하라는 건 아님. 최소한 어떤 그림이 들어갈지 밑그림은 만들어 둔 상태에서 배우들에게 설명을 해줘야 배우들도 머릿 속에 지금 내 앞에 이런게 있고 뒷배경은 이런 식이다 상상력을 발휘할 환경이 돼야 연기도 더욱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임

지금은 CG가 어떻게 들어간다고 말로만 대충 설명해주고 촬영에 들어간게 아닌가 싶을 수준임

아스달의 경우 CG가 많이 들어간 장면일수록 배우들의 연기가 어설프거나 우스꽝스러워지는 경향이 있는데 애초에 배우 촬영분만 다 찍어두고 후반작업에 CG를 몰아서 하자고 한게 아닌가 의심이 들음.

- 실제 촬영기간은 매우 짧았을 가능성
애초 아스달의 촬영기간은 6개월로 알려져 있음. 노동착취로 욕을 먹자 스튜디오 드래곤은 촬영 일자가 146일이라고 밝힌 바 있음. 주5일을 했다고 가정하면 29주로 얼추 6개월에 들어맞음

문제는 이게 긴 기간이 아니라는 것. 시즌1이 18회인데 회당 촬영기간이 2주도 안됨. 

아스달과 자주 비교되는 왕겜의 경우 회당 2~3주 촬영은 기본이고 주요 회차는 5~6주 촬영했음. 시즌8 윈터펠 전투는 55일(11주) 촬영한 것으로 유명함

공중파 주말드라마는 40분씩 2회를 하는데 아스달은 80분씩 2회를 함. 아스달이 과연 여타 주말연속극보다 여유로운 환경에서 촬영된 것인지 의문스러운 대목임.

레드벨벳 짐살라빔의 어원 탐구 연예




안녕하세요. 김재규입니다.

오늘 제가 예전부터 좋아하던 레드벨벳이 신곡 '짐살라빔'(Zimzalabim)을 발표했습니다.

기사들을 보니 짐살라빔의 뜻에 대해 레드벨벳이 "유럽에서 수리수리마수리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라고 설명했다고 하는군요.

노래 도입부에서 서커스 혹은 마술 공연에서 들을 법한 드럼 소리가 이어집니다.

대체 짐살라빔의 정확한 뜻이 뭘까? 궁금해서 구글신에게 물어봤습니다.

짐살라짐은 30~40년대 미국에서 쓰이던 마술 주문

구글에서 'zimzalabim'을 찾아보니 'sim sala bim'(심살라빔)이란 결과가 나왔습니다.

구글링의 기본인 위키백과에 물어봤습니다. 심살라빔은 1940년대 해리 어거스트 잰슨(Harry August Jansen)이란 마술사가 사용한 주문이라고 합니다.

image.png

('심살라빔'을 유행시킨 마술사 해리 잰슨(단테) 사진 출처 : 위키백과)

'심 심 살라빔'(Sim Sim Sala Bim)이란 표현도 있는데, 조니 퀘스트(Jonny Quest)란 1960년대 미국의 SF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캐릭터인 하지(Hadji)가 사용하는 주문이라고 합니다.

2013년에 나온 판타지 영화 오즈 그레이트 앤 파워풀(Oz the Great and Powerful)의 주인공 오스카 딕스(Oscar Diggs)도 사용합니다.

심살라빔(=짐살라빔)의 가장 오래된 기원으로 보이는 마술사 해리 어거스트 잰슨을 알아보겠습니다.

해리 잰슨은 1883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났습니다. 6살 때 잰슨의 가족은 미네소타주로 이사를 왔으며, 잰슨은 16살부터 마술 공연을 다닙니다.

잰슨은 '마술사 단테'(Dante the Magician)란 이름으로 활동했습니다. 이 이름은 잰슨의 선배 마술사이자 동업자인 하워드 써스턴(Howard Thurston)이 붙여준 것이라고 합니다.

단테는 무대에서 박수를 받을 대마다 '심 살라 빔'이라는 단어를 말하곤 했다 합니다. 1931년 촬영된 'Dantes Mysterier', 1942년의 'A-Haunting Will Go On'에서 단테가 직접 '심 살라 빔'을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합니다.

1940년에 단테는 브로드웨이 모로스코 극장(Morosco Theartre)에서 '심 살라 빔'이란 이름의 쇼를 제작합니다. 하지만 TV가 보급되면서 극장 관객이 줄어들었고, 단테는 1940년대 말 은퇴합니다. 1955년 단테는 71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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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6월 21일 단테의 마술쇼 포스터. 사진 출처 : flickr nutflsh)

관객에게 감사 표시할 때 쓰이던 '심살라빔'

이번엔 영미권의 지식인이라 불리는 쿠오라(Quora)에서 짐살라빔의 기원을 찾아봤습니다. 자신을 '전문 마술사'라 소개한 이의 답변을 참고했습니다.

40년 이상 마술사 활동을 했다는 래리 덴버그의 답변에서 '심 살라 빔'의 좀더 정확한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덴버그에 따르면, 1949년생인 미국 마술사 위트 헤이든(Whit Haydn)도 단테에 대한 헌사의 의미로 자신의 쇼에서 '심 살라 빔'이란 단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헤이든의 설명에 따르면 '심 살라 빔'은 '천 번의 감사'를 뜻한다고 합니다. 관객이 더 많이 박수를 칠수록 관객을 향한 인사의 폭도 커지고, 이것이 바로 '심 살라 빔'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덴버그는 '심 살라빔'(Sim Salabim)이 중세 연극의 하나인 로빈후드 무언극(mummers play)에서 터키 연금술사의 주문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연금술사가 로빈 후드를 되살리는 약을 쓰면서 하는 주문이라고 합니다. 무언극에도 '대사'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그렇다고 합니다.

끝으로 덴버그는 스웨덴에서 '아브라카다브라'와 같은 의미이며, 다른 스칸디나비아 문화권에서도 통용되는 표현이라고 하네요. 스칸디나비아 문화권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어서 알 수 없지만, 네이버 어학사전 검색결과, 독일이나 네덜란드에서도 '심살라빔'을 주문으로 쓰는 건 맞는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해리 젠슨 위키백과 페이지에서 심살라빔의 기원으로 소개된 덴마크 동요 Højt_på_en_gren_en_krage 유튜브 링크로 글을 마칩니다. 앞서 설명처럼 해리 젠슨(단테)은 6살까지 덴마크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 노래를 배웠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노래 도입부에 '심살라빔' 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왕좌의 게임 이론 : 왕겜 프로듀서진이 의도적으로 시리즈를 망치고 있다? 왕좌의 게임

왕좌의 게임 이론 : 왕겜 프로듀서진은 의도적으로 시리즈를 망치고 있다?
Game of Thrones Theory : Do D&D intentionally ruin the series?

안녕하세요 김재규입니다.

오늘은 왕좌의 게임 시리즈 자체에 대한 이론이 아닌, 외부적인 요인에 대한 이론입니다.

오늘 이런저런 뉴스브리핑을 보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보게 됐습니다. 디즈니가 온라인 스트리밍 업계의 알짜 기업인 '훌루'(Hulu) 를 인수했다는 내용입니다.

디즈니가 왕좌의 게임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어제 저는 구글링을 하다가 또다른 흥미로운 기사를 읽게 됩니다.

주요 내용을 간단히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위 기사에서 아래 사진 따옴)

image.png

왕좌의 게임 프로듀서들, 디즈니에 고용되다

"5월 15일 있었던 한 행사에서, 월트 디즈니 회장 밥 이거(Bob Iger)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9 이후 출시될 스타워즈 영화는 왕좌의 게임의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베니오프(David Benioff)와 D.B.웨이스(D.B.Weiss, 사진 속의 두 사람을 합쳐 통칭 D&D)가 제작할 것이라 확인했다. D&D의 스타워즈 영화는 2022년부터 출시될 예정이다."

어제의 저는 여기까지만 읽고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습니다만, 뒤에 더 중요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이날 행사에서 이거는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의 미래에 대해 논했다. 현재 디즈니의 새로운 스트리밍 플랫폼인 디즈니+(Disney+)를 위한 2개의 스타워즈 작품이 제작중이다.
이미 지난해 디즈니는 D&D가 스타워즈 시리즈(필자주 : 캐넌(canon, 正傳)의 핵심인 9편의 작품)와 별개의 스타워즈 시리즈의 각본과 제작을 맡을 것이라 발표한 바 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 이거는 "다음 영화"라고만 표현했다. D&D가 맡을 작품이 시리즈가 될 것인지 단 한편의 영화가 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8(라스트 제다이)의 감독인 라이언 존슨(Rian Johnson)이 맡기로 했던 또다른 3부작의 미래는 불분명하다. 아직 라이언 존슨의 3부작의 첫 영화가 언제 개봉할 것인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D&D가 어떤 스타워즈 영화(혹은 시리즈)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 최근 (D&D가 제작한) 왕좌의 게임 마지막 시즌에 대한 비판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비판 여론은 각본과 극의 진행속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기타 HBO의 다른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
D&D의 스타워즈 영화는 2022년 개봉 예정이며, 또다른 2개의 스타워즈 영화가 2024년과 2026년에 개봉할 예정이다.

스타워즈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제쳐 두겠습니다. 이 기사만 봤을 때는 라스트 제다이 감독인 라이언 존슨이 아예 짤린 것인지, 아니면 D&D와 존슨이 힘을 합쳐서 이후 스타워즈 시리즈를 전개해 갈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니까요.

기사 내용을 보건대, 미국에서도 왕겜 시즌8에 대한 비판이 높은 모양입니다. 진행 속도는 뭐 봐줄 수도 있습니다. 이제 단 하나의 에피소드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디테일에 신경쓸 겨를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D&D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각본, 특히 나이트킹 스토리가 허무하게 끝난 점이나, 여러 주요 인물들이 7시즌동안 쌓아왔던 캐릭터성이 한순간에 붕괴되는 등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저도 납득이 가지 않고 D&D를 옹호하는 여론을 열심히 찾으려 해도 찾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image.png

디즈니와 HBO의 관계
여기서 디즈니와 HBO의 관계에 대해 잠시 설명하겠습니다. 쉽게 말해 두 회사는 경쟁 관계입니다.

한국에서는 '스트리밍 서비스'로 통하는 서비스의 정식 명칭은 OTT(Over-the-top) 미디어 서비스입니다. TV 셋톱박스를 넘어서는 범위로 미디어를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한국에서는 넷플릭스(Netflix)가 유명하지만 사실 HBO도 OTT 서비스 시장에서 굉장히 잘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으로 넷플릭스의 구독자는 1억4890만 명, 2016년 말 기준으로 HBO의 구독자 수는 1억 3400만 명에 달합니다.(HBO의 OTT 서비스만 구독하는 사람은 작년 2월 기준으로 500만 명)

그 뒤를 잇는 것이 바로 디즈니가 인수한 훌루입니다. 훌루는 올해 1분기 기준으로 2800만 명의 구독자를 갖고 있습니다. 디즈니는 훌루를 개편해 올해 11월 12일 디즈니+를 출범시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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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는 이론과 궁예질
새로운 서비스가 뜨기 위해서는 기존 서비스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합니다. HBO의 간판 프로그램인 왕좌의 게임의 D&D의 차기적이 디즈니의 스타워즈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혹시 D&D와 디즈니의 계약 조건에 왕좌의 게임 관련한 부분은 없었을까요?

스타워즈 에피소드 8 라스트 제다이는 그동안 이어온 스타워즈 시리즈의 팬도, 새로 유입된 팬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물론 높은 점수를 준 평론가도 있었습니다만, 라스트 제다이에 대한 일반적 평가는 좋게 봐줘도 '논란이 있다'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타워즈 시리즈의 스핀오프 작품인 '로그 원'(Rogue One)은 상대적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기존 캐넌 시리즈의 설정을 모두 유지하면서도 그 자체로도 훌륭한 오락 영화였습니다. 스타워즈 시리즈 오랫동안 즐겨왔던 저는 로그 원의 마지막 장면에서 정말 감격했습니다.

D&D가 제작할 스타워즈 시리즈도 스핀오프 시리즈입니다. 캐넌 시리즈는 에피소드 9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마블 유니버스와 달리 스타워즈 유니버스는 하나의 유니버스입니다. 이에 따라 모든 스핀오프 작품(드라마, 애니메이션, 소설 등)은 모두 캐넌 시리즈가 세워놓은 설정 범위의 안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D&D가 최근 각본으로 욕을 먹고 있습니다만, 그들의 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조지 마틴의 원작 내용을 충실히 따라갈 수 있었던 시즌 5까지 D&D는 대체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소설의 전개를 착실히 따라하면서도 중간중간 오리지널 캐릭터나 화면 연출을 책에서는 맛보기 어려웠던 장면을 가능한한 최고의 수준으로 구현했다고 저도 인정합니다.

D&D에 대한 비판은 이번 시즌에 처음 나온 것이 아닙니다. 왕겜이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의 스토리 진행을 추월하기 시작한 시즌 6 이후부터 D&D의 각본에 대한 의문은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정말 D&D가 실력 없는 작가들이라면 디즈니가 그들을 고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비록 D&D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재주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이미 주어진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가는 데에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디즈니가 고용한 거라 봐야 합니다.

과연 디즈니와 D&D의 계약서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까요. 공개되지 않아서 모르는 것인지 저의 구글링 실력이 부족한 것인지 현재 시점에서는 저도 어떤 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D&D가 디즈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보답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당연히 훌륭한 스타워즈 영화를 만들어야 겠지요. 하지만 '왕좌의 게임 프로듀서'로서 디즈니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도 분명히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론일 뿐입니다만..

브랜 = 빛의 군주(Lord of Light) 이론 왕좌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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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재규입니다. 시즌1부터 꾸준히 챙겨보던 왕좌의 게임이 이제 피날레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시즌의 4화가 이미 방영된 듯 하지만, 아직 4화를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왕좌의 게임 레딧 채널에 오른 이런저런 글들을 읽어 봤습니다.

왕좌의 게임의 여러가지 재미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궁예질입니다. 그동안 존 스노우의 정체는 무엇이었는지, 대너리스의 3마리 용은 누가 타게 되는 것인지, 나이트킹과 브랜의 관계는 무엇인지, 호도르는 왜 호도르가 된 것인지 등등 많은 이론들이 왕좌의게임 시청자들 사이에서 나왔습니다.

국내에서도 이런저런 방법으로 왕좌의게임을 보는 사람들은 많은 것 같은데, 특정 커뮤니티에서 왕좌의 게임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친구들과 왕좌의게임 이야기를 하는 것 말고는 다른 곳에 생각을 풀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얼음과 불의 노래 카페가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왕좌의 게임 관련한 토론은 그리 활발하게 벌어지진 않는 느낌이고, 그나마 디씨 기타 미국드라마 갤러리에서 조금 왕겜 이야기가 오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부터 왕겜 관련한 정보나 이론을 알기 위해서 레딧 채널을 적극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레딧에 올라온 이론 중 브랜(Bran Stark)가 빛의 군주(Lord of Light)라는 이론을 가져와 보겠습니다.

원문을 직역한 것은 아니고, 원문에 기초해서 중간에 제가 아는 내용이 나오면 추가하기도 해서 구성했습니다.

에피3에서 '브랜=빛의 군주' 이론이 거의 확실해졌다.
조지 마틴(GRRM) 자신이 지난해에 큰 힌트를 던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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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타임 매거진(Time Magazine)과의 인터뷰에서 조지 마틴은 베릭 돈대리언(Beric Dondarrion, 사진)을 예로 들면서 이렇게 명쾌하게 설명한 바 있다.

"그는 더이상 살아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심장은 뛰지 않고, 피도 혈관을 정맥을 흐르지 않습니다. 그는 유령(wight)이지만, 얼음이 아니라 불로 되살아난 유령입니다. 이제 우리는 '얼음과 불'을 둘러싼 모든 이야기로 되돌아갑니다."

이 말에 의하면, 베릭은 '불 유령'(fire wight)이다. 이는 무언가의 복선이 되는 발언이다. 나이트킹(Night King)은 얼음 유령들을 되살린다. 그렇다면 불 유령들을 되살리는건 누구인가?

몇가지 팩트를 체크해보자

* 브랜은 강력한 워그(warg : 왕겜 세계관에서 거리에 제한 없이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다. 우리는 그가 과거, 현재, 미래를 볼수 있으며, 미래 자신을 돕기 위해 과거를 조종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아직 우리는 워그의 힘이 어느정도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 우리는 나이트킹이 죽은자를 사악한 언데드 병사로 되살릴 수 있다는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에피소드(시즌8 에피3)를 통해 나이트킹이 눈과 얼음을 자기 의지대로 조종하여, 거대한 눈보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됐다. (이 점이 중요하다.)

* '빛의 군주'(Lord of Light)의 추종자들은 그들의 군주가 항상 반대되는 사악한 신과 전쟁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들의 세계관은 이분법적으로 이뤄져 있다. 빛과 어둠, 선과 악, 불과 얼음. 모든 것은 각자의 대립하는 것을 갖고 있다.

* 세눈박이 까마귀(Three-eyed Raven)은 나이트킹의 영원한 적수처럼 보인다. 나이트킹은 의도적으로 원래 세눈박이 까마귀(브랜에게 지식을 전수해줬던 노인)를 죽였고, 그 이후로부터는 브랜을 쫓고 있다.

* '빛의 군주'는 모든 이를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빛의 군주'가 되살렸다고 여겨진 이들은 아리아가 나이트킹을 무찌르는데 도움을 준 것이다.

* 브랜은 아리아에게 단검을 줬고, 자기 자신을 미끼로 쓰라고 했다. 빛의 군주가 그랬던 것처럼, 브랜은 아리아가 나이트킹을 무찌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런 사실들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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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나이트킹(사진)이 죽음, 밤, 얼음의 군주라면 그는 자신과 같은 반대자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 반대자는 당연히도 생명, 빛, 불의 군주, 즉 '빛의 군주'다.

* 나이트킹은 실체가 있는 존재다, 따라서 그의 반대자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빛의 군주도 물리적 실재가 있어야 하며, 최소한 자신의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대리인(champion)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빛의 군주(또는 그의 대리인)은 누구인가? 지금까지 방송에서는 나이트킹 수준의 힘을 가진 존재가 명확히 나오진 않았다.

* 만약 나이트킹이 죽은자를 되살릴 수 있다면, 그의 반대자 역시 같은 수준의 되살리는 힘을 가져야 한다. 나이트킹이 되살린 자들이 악을 위해 싸운다면, 나이트킹의 반대자가 되살린 자들은 선을 위해 혹은 살아있는 자를 위해 싸워야 한다.

* 조지 마틴의 '불 유령' 언급은 이런 논리를 확인해준 것이다. 베릭 돈대리언, 존 스노우, 혹은 샌도르 클리게인(Sandor Clegane)도 '불 유령'들이다. '빛의 군주'가 나이트킹의 반대자라는 이상의 이론은 이치에 맞는다.

* 나이트킹이 눈과 얼음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그의 반대자 역시 불을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어야 한다. 또는 불을 통해 남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 브랜과 '빛의 군주'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 세눈박이 까마귀가 나이트킹의 최종 적수이다.

이 모든 것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세눈박이 까마귀가 나이트킹의 반대자이며, 나이트킹의 반대자는 '빛의 군주'다. 따라서 세눈박이 까마귀가 된 브랜이야 말로 '빛의 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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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의 모든 스토리라인은 단검(사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또한 단검 스토리라인은 본질적으로 브랜과 연결돼 있다.

방송에서는 리틀핑거(피터 배일리쉬)가 단검이 원래 자신의 것이었이나 도박에 져서 티리언에게 주었다고 주장했고, 시즌7에서 샘웰 탈리(Samwell Tally)가 시타델(Citadel)에서 읽던 책에 잠시 등장하기도 한다. 시즌7 막판 산사가 리틀핑거를 처형할 때, 단검이 리틀핑거에게 속한 것이라고 결론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단검이 원래 누구 소유였는지, 리틀핑거의 소유였다면 리틀핑거는 어떻게 이 단검을 얻게 된 것인지(발리리안 강철검은 매우 희귀한 검이라 오래된 귀족 가문에서 대를 이어 전해져 오던 것. 배일리쉬 가문은 사실상 리틀핑거가 처음 일으킨 것)

'Lord Bran'이 만들어낸 '왕좌의 게임'
이 지점에서 명확해진 것은, 브랜이 이 모든 줄거리를 모두 조종해왔다는 것이다. 브랜은 시즌8 3화의 전투가 어덯게 끝날 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어떻게 나이트킹을 죽여야 할지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덫으로 사용했다. 전투 중에도 그는 워깅(warging)을 계속했는데, 전투를 최종 결론으로 이끌기 위한 행동이었을 수 있다.

이제부터는 이론이다. 시즌1에서 브랜의 다이어울프인 서머가 브랜을 죽이러 들어온 암살자를 죽였다. 자신의 과거를 본 현재(시즌8)의 브랜이 서머의 몸 속으로 들어가(왕겜 세계관에서 워그는 다른 동물에 빙의해서 그 동물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음) 과거의 자신을 지켜낸 것이다.

더 과거로 가자면, 이 발리리안 단검은 미친왕이라 불린 에어리스 타게리언 2세(Aerys Targaryen II)의 것일 수 있다. 브랜이 미친왕에게 어떤 작용을 했고, 미친왕이 죽을때 제이미나 리틀핑거가 단검을 가져갔을 지도 모른다. 브랜(=세눈박이 까마귀)이 과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애초 이 단검이 나이트킹을 죽이기 위해 수천년 전에 제작됐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브랜의 워깅 능력으로 여러가지를 추측할 수 있다. 로버트 왕(Robert Baratheon)은 사냥 중에 멧돼지의 돌격으로 인한 상처로 죽음에 이르렀다. 이 역시도 브랜이 과거로 돌아가 워깅을 통해 조종한 것일 수도 있다.

아리아의 훈련도 중요한 부분이다. 아무리 발리리안 단검이란 무기를 갖고 있더라도 아리아가 훈련을 하지 않았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브랜이 암살당할 뻔한 일, 로버트 왕의 죽음으로 인해 가족이 뿔뿔히 흩어지고 자신의 생명도 위협을 당한일 등이 없었다면 아리아가 지금 수준까지 훈련을 거치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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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멜리산드레('빛의 군주'의 사제, 사진)와 아리아의 대화에서 아리아가 자신의 검술 스승인 시리오 포렐(Syrio Forel)과 나눴던 대화(Not today)가 다시 한번 나왔다. 애초 아리아의 훈련 자체가 처음부터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는걸 나타내주는 대목이다.

'빛의 군주'의 물리적 실재인 브랜이 나이트킹과 대등한 수준의 힘을 가졌다면, 위에 나열한 것처럼 브랜이 7왕국을 둘러싼 전쟁과 죽음에 모두 개입했다는 이론도 가능할 것이다. 브랜은 나이트킹을 물리치기 위해 과거를 조종하고, 이미 죽은 사람을 되살려 내서 아리아의 손에 단검을 넘어갈 수 있게 했고(마지막엔 자신이 직접 건네줌), 그 결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 베릭 돈대리언은 매우 여러번 죽었다 살아났다. 술에 쩔은 사제 소로스(Thoros of Myr)가 대단해서가 아니다. 소로스 자신도, 멜리산드레도 그정도 힘은 없다고 인정했다. '빛의 군주'인 브랜이 개입해서 베릭을 살려낸 것이라 봐야 한다. 베릭은 아리아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 하운드는 어떻게 살아났나. 시즌6에서 하운드를 발견한 레이(Ray)는 그가 죽은줄 알았다고 말했다. 또한 레이는 하운드가 회복할 때마다 여러번이나 거의 죽을뻔 했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살아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운드는 원래 악인에 가깝지만, 살아난 이후에는 선인에 가까운 행보를 보인다. 하운드 역시 아리아가 나이트킹에 접근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다.

* 존 스노우는 어떻게 살아났나. 멜리산드레는 존을 되살리기 위해 기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멜리산드레도 포기한 시점에서, 이미 존의 심장이 멈춘지 한참 지난 시점에서 그는 갑자기 다시 숨을 들이킨다.

* 3화에서 멜리산드레가 참호에 불을 붙인다. 하지만 이번에도 멜리산드레의 기도는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자신의 기도가 통하지 않자 멜리산드레의 눈도 불안해진다. 나이트킹이 얼음과 눈을 다스렸던 것처럼, '빛의 군주'가 직접 참호에 불을 붙인 것이다.

* 바리스는 자신이 거세당할 때 불길(자신의 거시기를 태운 그 불길.) 속에서 어떤 목소리를 들었다. 이후 그는 생존을 위해 구걸, 도둑질 등 모든 것을 했고 결국 킹스랜딩의 고위직에 오르기까지 했다.

지금껏 브랜은 '빛의 군주'와 함께 같은 목적을 향해 움직여 왔다. 브랜이 바로 '빛의 군주'이며, 브랜 이전의 세눈박이 까마귀들도 '빛의 군주'라고 보는 것이 가장 간단한 해답이다. 최소한 브랜 등 세눈박이 까마귀들은 '빛의 군주'의 대리인이다.

다만 브랜이 직접적으로 전투에 나선 건 아니다. 워깅을 통해 이런저런 일들이 가능하게 했을 뿐이다. 브랜과 나이트킹의 대립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이트킹의 마지막 장면이 아쉬움을 남긴 건 아닐까.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거리도 생각난다. 나이트킹이 죽었을 때 모든 유령들도 그대로 죽었다. 나이트킹 이전에도 백귀(white walker)가 죽으면 그가 영향력을 행사했던 유령들이 그대로 죽었던 장면이 시즌 7에 나온 바 있다.

만약 브랜이 죽는다면 존 스노우도 죽게 될까? 나이트킹이 없는 상황에서 '빛의 군주'의 새로운 반대자는 누가 될 것인가?

보충설명

* 브랜의 힘은 위어우드 나무(Weirwood tree) 곁에 있을때 가장 강해진다. 위어우드 나무는 퍼스트맨의 신앙의 대상인데, 하트 나무(Heart tree)라 불리기도 한다. '빛의 군주'의 또다른 이름은 '불의 심장'(Heart of Fire)이다. 스타니스 버라씨언의 깃발에도 '불의 심장'이 나온다.

* 네드 스타크의 동생인 벤젠 스타크(Benjen Stark)는 숲의 아이들(Children of the Forest)에 의해 되살려졌다. 이후 벤젠은 불타는 철퇴를 무기로 사용하며, 장벽 너머에서 활동한다. 그 역시도 불 유령(fire wight)이라 볼 수 있다. 숲의 아이들은 애초에 나이트킹을 창조한 고대 종족이다. 나이트킹의 반대자로서 세눈박이까마귀를 만들어낸 것 역시 아이들일 수 있다.

* 미친왕은 틈만 나면 "전부 불태워"(burn them all)란 말을 했다. 심지어 죽어가는 순간에도 그 말을 했다. 미친왕을 그렇게 미친 상태로 불러일으킨 배후에도 '빛의 군주'(브랜, 세눈박이까마귀)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멍청한 자유당, 선거제도 개혁 왜 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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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한국일보)

4월 22일, 자유한국당은 자신을 뺀 여야4당이 선거제도 개혁과, 공수처 신설 법안 등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올린다는 합의를 하자, 대놓고 20대 국회를 보의콧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자유한국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미온적인 행보를 보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애초 국회 정개특위에서 선거제도 개혁안을 논의할 때도 자유당은 내부 조율이 필요하다, 헌법도 같이 개정해야 한다 등 온갖 이유를 들어 자신들만의 '개혁안'을 내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4당(민주당, 바른미래당, 평화민주당, 정의당)은 3월 17일, 지역구 의석을 줄이고 선거권 연령을 만18세로 낮추는 등 선거법 개정안에 잠정 합의합니다. 이때도 자유당은 '누더기 밀실 야합'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했지요.

지방선거 - 잘못된 선거제도의 폐해가 드러나다
선거제도를 왜 고쳐야 할까요? 현행 선거제도는 대부분의 의석을 소선거구제 지역구로 배정하고, 일부 의석을 비례대표로 나누는 방식입니다. 이런 현행 제도의 문제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지난해 6월 13일 열린 지방선거 입니다.

서울특별시의 경우 민주당은 광역비례 약 51%의 득표율로 서울시의원 110석 중 102석을 얻습니다. 경기도에서 민주당은 약 53%의 득표율로 경기도의원 142석 중 135석을 얻습니다. 인천시의원도 55%의 득표율을 거둔 민주당이 37석 중 34석을 석권합니다.

애초 민주당이 90% 이상을 득표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정당득표에서 50%를 조금 넘는 득표율로 90% 이상의 의석을 가져가는 것은 민의를 정확히 대변한 결과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수도권에서 자유한국당이 거둔 정당득표는 25.14%입니다. 하지만 수도권 광역의회에서 자유당 지지자들을 대변할 의원들은 대체 어디로 갔습니까?

이런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정치학자들은 대체로 비례대표의 비율을 늘려야 한다는데 합의하고 있습니다. JTBC에서 OECD 37개국의 선거제도를 살펴본 바에 따르면, 총 24개 나라가 100%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영미권이라 불리는 4개국(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와 프랑스는 비례대표제가 아예 없으며, 한국 일본 독일 등 지역구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하는 나라가 8개국입니다.

선거제도 개혁에 가장 열정적인 정의당의 경우 독일식으로 지역구 의석은 있지만, 정당득표를 기준으로 의석을 나누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합니다. 하지만 민주당 등 다른 당이 난색을 표하면서 결국 비례대표 의석을 48석에서 75석으로 약간 늘리고, 전체 의석의 50%에만 연동형을 적용하는 방안이 3월 17일에 합의된 것입니다.

위의 지방선거에 50% 연동형 방식을 적용해 보겠습니다. 수도권 광역의원 숫자는 총 289석입니다. 그리고 자유당의 정당득표는 25.14%였습니다. 50% 연동형 방식이라면 자유당은 289석의 12.07%에 해당하는 34석은 최소한 확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자유당이 확보한 의석은 12석에 불과합니다.

물론 자유당이 강세인 TK 지역에서는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계산을 해봅시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자유당은 TK에서 49.82%의 득표율로 90석 중 66석을 가져갑니다. 민주당은 34.82%의 득표율로 14석을 가져가는데 그칩니다. 50% 연동형이 적용되더라도 민주당은 90석의 17.41%에 해당하는 15석을 가져갈 뿐입니다. 9.4%를 득표한 바른미래당 역시 4석 정도를 가져가는데 그칩니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TK 지역에서 몇석을 내주고 수도권에서 30석 이상을 가져가는게 이득인 것 같은데, 자유당은 생각이 다른가 봅니다.

PK 민심이 반민주당으로 돌아섰다고? 근거는?
아마 자유당은 지금의 추세라면 자신들이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이길 수 있으리라 전망하는 것 같습니다. 가장 최근은 2016년 총선에서 자유당(당시 새누리당)은 12년만에 제1당의 지위를 민주당에게 내줍니다.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싹쓸이하다시피 이긴 덕분이 큽니다.

게다가 2016년 총선 때는 국민의당의 위력이 컸습니다. 호남 28석 중 23석이 국민의당에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내년 총선에서는 호남 의석 대부분이 민주당에게 돌아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물론 PK지역에서는 자유당이 과거의 위세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PK에서 8명의 당선자를 냈습니다만, PK에서의 민심이 3년 전과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PK의 민심이 과연 '확 달라졌나'라는 점에는 의문이 있습니다.

16년 총선 당시 민주당은 경상남도에서 24%(자유당은 44%), 부산에서 26%(자유당은 41%), 울산에서 22%(자유당은 36%)의 득표율을 올렸습니다. 가장 최근 발표된 4월 18일자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PK에서의 민주당 지지율은 43%, 자유당 지지율은 17%로 오히려 역전됐습니다.

물론 1달치 조사를 모은 한국갤럽의 3월 통합 여론조사를 보면 자유당이 33%, 민주당이 25%로 자유당이 민주당을 앞선 결과가 나옵니다. 하지만 2016년 총선 당시 PK에서 양 당의 지지율 격차가 14~20%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PK민심은 3년 전보다 오히려 민주당에게 호의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여전히 자유당은 TK, PK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민주당에 열세입니다. 게다가 3년 전 총선에서 민주당의 표를 갈라먹었던 국민의당의 후신인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도 지금은 큰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다시 3년 전 총선으로 돌아가봅니다. 서울에서 새누리당은 30%(민주당 25%), 경기도에서 32%(민주당 26%), 인천에서 33%(민주당 25%)를 득표했습니다. 하지만 수도권에서 민주당 당선자는 82명인데 반해, 새누리당 당선자는 35명에 그칩니다. 정당득표에서 오히려 앞섰음에도 손해를 본 것입니다.

자유당의 태클, 민주당은 속으로 좋아할듯
당시 민주당이 새누리당보다 정당득표에서 열세를 거둔 결정적 이유는 국민의당입니다. 국민의당이 수도권에서 25% 이상의 득표율을 거뒀기 때문입니다. 당시 국민의당을 뽑았던 사람들이 과연 반반으로 나뉘어 내년에 민주당, 자유당을 뽑을까요 아니면 민주당에게 더 많은 표를 나눠줄까요? 오히려 내년 수도권 총선에서는 82:35보다 비참한 결과가 자유당에게 주어지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사실 민주당은 속으로 좋을 겁니다. 민주당 역시 선거제도 개혁을 하면 의석에서 손해를 봅니다. 갤럽 여론조사에 의하면 정의당은 10% 내외, 바른미래당은 5~7% 정도의 고정 지지층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제도대로 총선이 실시된다면 민주당은 자유당만 걱정하면 됩니다. 정의당, 바른미래당 후보가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는 지역구는 몇 곳 안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가 도입된다면 좋든 싫든 정의당과 바른미래당에게도 어느정도 의석이 배분됩니다.

민주당 지도부도 겉으로는 자유당을 비판하지만 속으로는 '나경원 화이팅'을 외치며 지금 제도대로 총선이 실시되길 바랄 수도 있습니다. 작년 지방선거처럼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싹쓸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래저래 생각해봐도 자유당이 선거제도 개혁을 방해하는 것은 바보짓이 아닌가 싶습니다.

(펌) 데뷔를 놓친 타카하시 쥬리가 생각했던 것 (3) 연예


원래 출처는 일본 현대비지니스 기사입니다. 모든 사진 출처 역시 일본 현대비지니스 원기사입니다.

저번에는 원문 번역에 저도 손을 봤는데 애초에 올린 분과 크게 달라진 것도 없고 해서, 펌글 출처글에서 문장이 어색한 것만 수정했습니다.
일본어 실력이 부족한 주제에 전체를 다 번역을 하면서 보려고 하니 시간만 많이 걸리고 큰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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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B48그룹의 39명이 도전한 케이팝 서바이벌 방송 프로듀스48.

AKB48의 타카하시 쥬리는 데뷔 멤버를 정하는 최후의 20인까지 남았다. 아쉽게도 데뷔는 하지못한 타카하시. 방송 후로부터 5개월이 지난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있을까.

전편에 이어서 인터뷰 후반에는 30명으로 줄어든 이후에 했던 컨셉평가와 데뷔평가 그리고 장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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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연습생. 생각의 차이

57명에서 30명이 된 컨셉평가의 단계에서는 정예만 남아있는 상태였었죠. 거기서 타카하시씨는 'I Am'의 팀으로 들어가게됩니다.

저의 팀(아이엠 팀)은 그전까지 결과를 남겼거나 1위를 가지고 싸우던 사람만 모였기 때문에 최강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가은, 최예나, 안유진 등 멤버가 엄청 좋았죠. 역으로 다들 너무 대단해서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하나 라는 느낌이었어요.

그래도 현장에서의 평가는 좋지 못했죠. 아마도 컨셉이 확실하지 않아서 그랬던것 같아요. 섹시에 멋있고 또 조금은 귀엽고.. 이런게 그 미션에서는 그다지 플러스로 되지 못했던것 같아요.

역시 한껏 귀여운 롤링롤링이나 엄청나게 멋있었던 루머같은게 높은 평가를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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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은씨는 당초 방송때 주목을 받아서 많은 사람들이 눈여겨 보던게 인상적입니다

정말 여신이에요. 촬영중에 가은쨩이 통역도 해줬었거든요. 그리고 아마 느낌상으로 일본인 성향(일본인들이 좋아할만한 성향)이라고 생각하구요.

한국 여자애들과 일본 여자애들은 꽤나 다른 부분이 있는데, 가은쨩은 일본 쪽 느낌이었어요. 중학생 때 와카야마현에서 살기도 했다고 기억하는데요, 일본인의 마음을 알아주었죠. 가장 가까이 다가와 주었어요.

거기다 리더로써 항상 여러 그룹을 이끌어주기도 해서 '모두가 사랑하는 가은쨩!' 이라는 느낌이었죠. 무조건 데뷔할거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마지막에 모두가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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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나씨랑은 다음 데뷔평가때도 같은그룹이 되어 사이가 좋으셨죠

엄청 사이가 좋아졌어요. 지금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어요. 정말 귀여워요.

행동이 가벼운 것처럼 보이지만 트레이너분들 앞에서 무대할때는 "무서워 무서워~"라고 계속 저에게 말을 걸어와서.. 그걸로 친하게 되었어요.

한국 연습생은 트레이너분에게 익숙해져 있으니까 일본인만 무서워 했었지만 예나도 무서워했어요.

한국과 일본 연습생에게서 어떤 다른 점을 느끼셨나요?

'나는 이게 되니까 이걸 할래' 라는 생각 방식이 한국이고, '모두 어떤게 가능해? 어떻게 모두같이 할까?'라는 생각이 일본. 이런 차이라고 봐요.

한국 연습생들에게 자주 들은 이야기가 '왜 자신이없어? 이상해'라는 것이었어요. 저는 자신이 없는 것이 기본이라서요.

처음에는 한국 연습생의 이런 모습에 배려심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무섭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어요. 그렇지만 그게 아니었었죠.

자신을 가지는 것에 따라서 '어느만큼 스테이지에서 빛이 날 수 있다'를 알게되고 부터는, 이런 생각을 존경할수 밖에 없게되더라구요. 나도 가능한 걸 찾아야겠다..라며 노력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다들 '어떻게 하지..?'라는 느낌이었다면 점점 '나는 이걸 할수있어'라고 말하게 되었죠.

저도 노래를 하고싶다고 계속 말했고, 섹시나 귀여운 컨셉이라면 다른사람보다 빛날 수있다고 어필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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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인정하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8월 31일. 데뷔멤버인 12명을 정하는 최종회가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다. '아이즈원'(IZ*ONE)이라는 그룹명이 발표되었던것도 이때였다. 타카하시 쥬리는 최종 16위가 되어 (아이즈원으로) 데뷔를 하지 못했다.

다시 되돌아보면, 타카하시는 결국 한번도 데뷔권 내에 들어간 적은 없었지만, 마지막 20인까지는 남았다. 그 외 참가자들의 순위가 크게 변동되는 도중, 10위 후반대에 계속 위치해 있었다. 방송에서 나와서 주목받는 일은 없었지만 안정적인 존재감을 발휘한것이 인상적이었다.

8월 31일 그날은 어떤기분으로 임하셨나요?

'데뷔해주겠어!'라는 마음이었어요. 거기에 서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제가 포기하지않고 온 힘을다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감동은 느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미션이 되고나서부터는 힘든 것은 없었고, 전부 사랑스럽게 느껴졌어요.

결과적으로 16위라서 아쉽게 되었지만, 역시나 팬분들은 정말로 응원해 주셨고, 다른 연습생들이 '같이 데뷔하고 싶었어!'라고 울어 주었죠. 그렇게 친해진게 된 것이 무엇보다 큰 자산입니다.

이때는 이미 저 스스로도 자신감이 있었고, 처음으로 제 자신을 조금은 인정하게 되었어요. 몇 번이나 (한국과 일본을) 왕래하며 죽을 정도로 연습을 했기떄문에, 누군가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죠. '내가 나를 인정하자'라고 생각했던 때였습니다. 달성감이 있었어요.

물론 아쉬웠던것도 있어요. 엄청 울었거든요. 그날 뒤로도 계속 일이 있고, 1주일 후에는 공연도 시작해야했지만, 그때 느꼈던것이 항상 잊혀지질 않았어요. 정말 몸가누기가 힘들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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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얻은것이 많은것 같은데요. 어찌되었든 댄스는 AKB48과는 다른것이었습니다.

맞아요. 레벨이 달라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특히나 허리 사용법이 일본과 한국이 달랐어요.
한국에서는 섹시함이 꼭 있어야만 해요. 리듬을 타는게 아이돌이라기 보다는 댄서에 가깝거든요.
어필하는 것도 포함해서 센스가 없으면 안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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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AKB48에 그 경험이나 능력을 살리지는 않는 건가요?

그럴 생각을 저는 하고 있습니다.(경험과 능력을 살릴 생각) 그렇지만 전체적인 시스템을 바꾸는것은 어렵다고 생각하고, 그걸 강요하는 것은 팬분들께도 아닌것 같아요.

AKB48의 방법으로 해나가는 방법도 있다면, 한국에서 배워온 걸로 스테이지에 설 수있어 라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하고있습니다.

이후에는 어떻게될까요? 저는 무대에 서고 싶어요. 그렇지만 제 자신이 하고싶은 것도 해보고싶어요.

그래도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한국의 무대에 서고싶으니까.

케이팝에서 당연한게 일본에서는 가능한 것인가

인터뷰를 하면서 강하게 들었던 생각은, 막 21살이 된 여성이 한국에서의 체험으로 능력 면에서나 정신적인 면에서나 크게 성장했다는 것이다.

방송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내가 나를 인정하자'라는 이야기를 하는 타카하시 쥬리에게는 1996년의 애틀란타 올림픽 여성 마라톤에서 동메달을 획득해 '내가 나를 칭찬해주고싶다'라는 말을했던 아리모리 유코 선수의 모습과 겹친다.

그건 자신의 한계까지 노력하고 힘을 전부 쏟아낸 후에 도달할 수있는 경지인 것일까.

그런 타카하시의 경험은 아마 AKB48에서 전파되어갈 것이 분명하다. 그녀가 직접 무언가를 전하지않아도 그 모습에서 주변도 배울것이 많을 것이다. 이런 영향은 곧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는것은 아니지만 차근차큰 주변에 퍼저나갈것이다.

단지 이후 보다 주목받는것은 '그런 타카하시를 주위가 어떻게 대하는가?' 이다. 그녀가 한국에서 터득한것을 전력으로 발휘가 가능한 장소는 지금의 AKB48에게는 없다. 그룹의 디자인도, 노래도, 댄스도, 내수의 틀에서 나오는 일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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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타카하시와 같이 마지막 20인에 남았던 타케우치 미유는 방송이 끝난 직후에 AKB48에서 졸업을 하기로 하였다. 졸업 후는 한국에서의 활동을 시야에 두고있는 것처럼 보인다.

애초에 아키모토 야스시가 현재의 AKB48그룹에 만족하고 있었다면 이런 기획에 참가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현 상태에 변화를 요구하고, 동시에 48그룹의 한국진출에 도움이 되는 것이 목표일 것이기 떄문이다.

그러니 타카하시뿐만 아니라 미야자키 미호, 시로마 미루, 시타오 미우 등의 최종후보자, 그리고 무
라세 사에, 고토 모에, 치바 에리이, 무라카와 비비안, 나카니시 치요리, 야마다 노에 등 한국에서의 경험으로 큰 성장을 보여준 멤버들에게 어떤 판을 준비하는가 라는것이 이후에 요구된다.

하나 제안을 한다면, 댄스나 춤의 실력을 기준으로해서 해외진출도 상정한 새로운 그룹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

말하자면 AKB48그룹 전체의 정예팀이다. 다른 그룹과 겸임도 하지않고 악수회도 드문드문 하고, 댄스와 노래를 열심히 갈고 닦아 노래와 퍼포먼스에 특화를 하는 것이다.

프로듀스48에서 타카하시 쥬리가 흡수한, 케이팝에서는 당연히 이루어지고있는것을 일본에서도 하는 것이다.

물론 그때는 기존의 48그룹과는 꽤나 체제가 다를것은 뻔하다. 트레이너를 상주시키고 노래도 춤도 뮤비도 글로벌 기준으로 공들여 제작해야만 한다.

타카하시가 가지고 돌아온것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환경자체를 바꿔나가는 것이 필요해보인다.

타카하시 쥬리는 마지막에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아키모토 야스시를 시작해, 주위가 어느정도 그녀의 말을 진중하게 받아들일것인가? 거기에 따라 이후의 상황이 AKB48뿐만 아니라 J-POP의 미래도 크게 좌우될것이다.

(펌) 데뷔를 놓친 타카하시 쥬리가 생각했던 것 (2) 연예





원글 작성자가 번역한 원본 기사는 [일본 현대비지니스(現代ビジネス)](https://gendai.ismedia.jp/articles/-/59438)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원글 번역을 참고하고 내용이 잘 연결되지 않는 부분은 저의 부족한 일본어 실력+파파고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글에 나오는 모든 이미지는 링크의 현대비지니스 기사가 출처입니다.

-> (펌) 데뷔를 놓친 타카하시 쥬리가 생각했던 것 (1)


일한의 ‘센터’의 차이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배틀에 들어갑니다. 첫 번째 그룹 평가에서 ‘단발머리’의 1조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센터가 되죠.

이때는 아직 센터 포지션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AKB에서는 센터가 된 멤버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더라도 주변이 맞춰줍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센터에 설 수 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완벽한 아이가 센터. 그것을 몰라서 센터를 하고 싶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랬더니 엄청 힘들었습니다. 엄청 혼났고, “아, 이것이 한국 센터의 가치구나”라고 통감했습니다. 이 때에 문화의 차이를 느꼈습니다.



이때 트레이너에게 크게 혼나고, 타카하시씨는 중간에 센터를 다른 멤버에게 넘기려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끝까지 센터를 했는데, 한국에서는 그 모습이 주목을 모은 것 같습니다.

개인 배틀이라면 보컬, 메인 보컬, 랩이라든지 각각의 역할을 하면 점수를 주겠지만, 그룹 평가는 센터가 안되면 모두가 망가지니까요. 저 대신 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제 자신도 ‘이런 식으로 금세 포기하게 될 줄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좀더 연습하자고 말해줬습니다.

저는 한국어 책을 들고 서투르게 말하고 있는 상태인데, 조유리(현 아이즈원 멤버)라던가 한국 아이들이 감싸 줬던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유대감을 느꼈습니다.

물론 한국의 연습생들도 모두 센터를 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라도 좋다고 말해 주었기 때문에, 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좋은 퍼포먼스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굉장히 거리가 좁혀지고 친해졌습니다.

그때 지금까지 AKB48에서 계속 해왔다는 프라이드가 상한 적은 없었나요?

저도 7년 정도 아이돌을 해왔는데 ‘7년간 뭘한거야?’란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절망이었죠.(웃음) 마음 속에서부터 ‘아 뭘했었던 걸까’ 하고요.

한국의 연습생들은 기간이 2년이나 3년이고, 착실히 수업을 받아왔다고 해도, 저는 7년이나 무대를 서 왔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할말이 없었습니다, 정말로요. 다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부끄럽다고 생각했지만.. 엉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으셨죠.

예.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무대에 섰을 때 힘을 보여주자라는 마음으로 계속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실력이 이렇다 저렇다 하기보다는, 한번 물면 어느 정도까지 갈 수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았어요.

뭐랄까, 포기하지 않을 수밖에 없어요. 다른 사람들보다 잘할 수는 없는 데다, 한국연습생들 이상으로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서양음악에 맞춰 프리하게 춤추라고 해도 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포기하지 않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트레이너에게 혼이 났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 있다면 어느 정도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그래서 AKB48일 때는 센터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만, 저쪽에서는(한국에서는) 모든 미션에서 센터에 입후보했습니다.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타카하시 쥬리 '빨간 머리' 공식 직캠영상>


그 말은 AKB48의 연장선상이라는 건가요?

연장선이라고 볼 수는 없죠. "나는 AKB48에서 이것을 해왔으니, 이걸 할 수있어“라고 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정말로.

....아, 그렇지만 한 가지. 제가 (AKB48 팀B의) 캡틴을 해서 인지 커뮤니케이션은 금방 통했습니다.

등급을 나누기 때 옆에 앉아 있던 그룹 (MND17)이나, 첫 번째 버스 이동 때 옆에 앉은 조영인 연습생과 곧 친해졌습니다.

합숙소도 일본인 2명, 한국인 4명의 방이 되어, 한국어 책을 가지고 커뮤니케이션을 했습니다. 아직은 그다지 말을 할 수 없었고, 상당히 느낌(feeling)이었지만, 금방 사이가 좋아져서 감동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AKB48의 연장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전혀 다른 세계였습니다.

이런 연습 때도 가끔 일 때문에 일본으로 돌아가셨죠?

저는 그랬습니다. 길어도 한국에 계속 있었던 것은 1주일 정도. 악수회에 갔다 와서 다시 4일간 촬영하고, 또 이쪽(일본)에서 이벤트나 음악 프로그램이 있고, 또 한국에 돌아온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동은 힘들어요. 또 너무 피곤해서 비행기에서는 항상 깊이 잤습니다. 체감으로는 10분 정도 이동한 것 같았어요.

촬영하는 연습소도 스탭분들은 들어오지 않고 입구까지만이었고요.

연예인이라는 입장도 박탈당하고, 어디까지나 연습생 취급이군요

그렇습니다. 후반에 가까워지면서 통역사도 없이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후반부에는 이미 말이 통하게 되어서 “와 대단하다! 나 한국어 알아들어!”라고 감동했습니다. 졸아가면서요. (웃음)

한국어는 책 두권을 가져갔지만, 처음에 숙소 때뿐이고, 나중에는 거의 쓰질 않았어요. 메모장만 가지고 나머지는 이제 귀로 듣고 암기했습니다. 2개월 정도로 대체로 알게 되었습니다. 읽는 것도 대체로 가능합니다.

(한국어 하는 쥬리 영상 예시)



 마지막에 익숙해지다

그룹 평가가 끝나고 96명이던 연습생은 57명으로 줄었다. 여기서 시작된 것은 포지션 배틀이다. 30명이 보컬&랩, 27명이 댄스에 도전하고, 그 중에서 27명이 방출된다.

타카하시 쥬리는 보컬&랩을 선택해, 미야와키 사쿠라 등과 함께 블랙핑크의 ‘뚜두뚜두’에 도전했다. 전체 3위 안에 주어지는 베네핏은 얻지 못했지만, 30명 중에 10위를 하여 결코 나쁘지 않은 결과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룹 내에서 멤버끼리의 어긋남도 볼 수 있었다. ‘뚜두뚜두’의 퍼포먼스의 어레인지(arrange) 내용에 대해서 트레이너와 스탭으로부터 엄격한 지적이 있었다.



이때 ‘뚜두뚜두’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선 저는 확실한 노래라고 생각했고, 알고 있는 곡이었기 때문에 선택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퍼포먼스를 하고 싶지만, 연습 시간이 없다는 것은 그룹 평가에서 알게되었죠.

그럼 알고 있는 곡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거라 생각했죠. 무대에서는 인생에서 가장 여성들의 성원을 받은 순간이었습니다.(웃음) 엄청 기뻤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꽤 힘들었습니다. 한국 연습생 두 사람과 사쿠라와 저의 의견이 엇갈려 버려서요.

보컬&랩의 평가이기 때문에 역시 잘 부르고 싶었지만, 다른 두 사람은 춤도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춤을 트레이너나 무대감독에게 보이니까, 역시 ‘이건 보컬&랩의 평가야’라고 혹평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도중에 저와 사쿠라는 한 번 일본에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비행 2시간 전 정도까지 계속 대화를 하고, 결국 아슬하게 교육센터를 빠져나와 일본으로 갔습니다.

헤어졌던 시간에 서로 조금 진정하고 한국에 돌아온 후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래서 춤을 안추는게 낫다고 했더니 받아줬어요. 이때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 어긋남의 원인은 무대에 섰을 때의 이미지가 되냐 안되냐였다고 생각합니다.

마이크 스탠드를 사용했는데 저와 사쿠라는 마이크 스탠드가 있어도 노래하거나 춤출 수 있지만, 이미지가 별로인 것 같아서 그것으로도 아주 많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타카하시 쥬리 '뚜두뚜두' 공식 직캠영상>


48그룹의 여러분은 연습에서는 고생했지만, 실전에 강했다는 느낌은 있습니다.


무대에 섰을 때 좋았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AKB48로 무대 직전까지 춤을 외우고 실전에 들어가는 일도 많았기 때문에 마지막에 가서야 익숙해졌거든요.

비록 첫 번째 레벨은 낮았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연습시간도 꽤 있었고 결과로 나오기 때문에 실전에서 틀린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역시 무대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무대에서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어요. 그것보다 긴장한 것은 트레이너에게 보일 때였습니다. (웃음)

(추가 기사가 현대비지니스에 뜨면 추후에 올릴 예정)


(펌) 데뷔를 놓친 타카하시 쥬리가 생각했던 것 (1) 연예

펌글 출처 : 디씨인사이드 엠넷 갤러리



-> (펌) 데뷔를 놓친 타카하시 쥬리가 생각했던 것 (2)

안녕하세요 김재규입니다. 작년에 프로듀스48(PRODUCE 48)의 애청자였고,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한 아이즈원(Izone)을 열심히 응원하는 아재 위즈원입니다^^..
물론 탈락한 인물 중에도 관심이 가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프듀를 통해서 AKB48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알게 됐고요.
지금 아이즈원 12명을 모두 사랑합니다만, 탈락자 중에는 타카하시 쥬리(高橋朱里)가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더군요. 머리가 조금 크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귀여운 계란상에 한국어도 잘하는 편이었습니다만 결국 경연에서 인상적인 무대를 남기지 못하고 최종회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원글 작성자가 참고한 기사는 일본 현대비지니스(現代ビジネス)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원글 번역을 참고하고 내용이 잘 연결되지 않는 부분은 저의 부족한 일본어 실력+파파고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우선 1,2페이지를 업로드하고 곧이어 3,4 페이지 업로드하겠습니다.
여기에 나온 모든 이미지는 현대비지니스 기사가 출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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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일본 데뷔를 앞두고 있는 일한 혼성의 걸그룹 IZ * ONE (아이즈원).

AKB48 그룹의 미야와키 사쿠라(宮脇咲良)·야부키 나코(矢吹奈子)·혼다 히토미(本田仁美)도 포함된 12명은 한국 Mnet에서 2018년 6월 15일부터 8월 31일까지 방송되었던 K-POP 서바이벌 프로그램 'PRODUCE 48'에서 선발됐다.(현재 PRODUCE 48은 AbemaTV에서 방송중)

4회에 걸친 배틀에서 '국민 프로듀서'로 불린 한국 시청자들의 지지를 얻어 승리한 이들이 바로 그녀들이다.

한편, 최후의 20명까지 남았지만 아쉽게 데뷔를 놓친 8명이 있다. 타카하시 쥬리도 그 중 하나다.

2011 년 동일본 대지진 직전에 오디션에 합격한 그녀는 AKB48에 재적한지 7년이 지났다. 2016년 AKB48 총선거에서 15위를 기록하고 이후 3 년 연속 선발 권내를 유지했고, 현재 팀B 캡틴을 맡고있다.

그룹 이외에도 뮤지컬 '눈의 프린세스'(雪のプリンセス)에 2년 연속 출연하고 있다. 그러한 순조로운 활동을 하던 중에 'PRODUCE48'에 도전했다.

프로그램 종료 후 5 개월, AKB48에 다시 활동을 이어가는 타카하시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취재, 글 : 마츠야 쇼이치로(松谷創一郎), 사진 : 이모토 타카코(飯本貴子))


“반드시 나가겠습니다”라고 즉답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조금 시간이 지났습니다. 지금 되돌아 보면 "PRODUCE 48" 5개월간은 어땠습니까?

한 해를 되돌아보면, 역시 그만큼 제 안에 남은 것은 없었습니다. 가장 충격적이고, 최고의 도전이었습니다. 일이라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우연히 작년 ‘PRODUCE 101’을 알게되고, 전부 보고 나서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 ‘좋아한다’는 기분만으로는 부족했고, AKB48로써 노력한다는 마음으로도 절대로 넘을 수 없었어요.

역시, ‘도전한다’, ‘데뷔하고 싶다’라는 각오가 있어야만 했습니다.

프로그램 출연 소식을 알게 된 게 언제였나요?


2017년 11월 (29일)에 MAMA의 이벤트에 출연했는데 거기서 발표되어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째서 K-POP의 이런 큰 이벤트에 AKB48이 나가는걸까,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프로그램에 출연할지 말지 질문을 받았을 때 “반드시 나가겠습니다”라고 즉답했습니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지는 계속 고민 했죠.



3년 전부터 AKB48 선발 총선거에서 팬분들의 투표로 드디어 11위나 12위를 차지하여 선발(16위 이내)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저 자신은 실력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팬분들이 11등을 만들어 주셨는데, 거기서 위로 올라간 적이 없다는 것은 자신의 실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릴 방법도 전혀 몰랐기에, 어떻게 하면 위에 올라갈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때에 이 프로그램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MAMA 이벤트 때는 제 팬들과는 다른 관객들이었지만, 혹시 여기에 영향을 줄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재규식 해석 : 새로운 팬들을 얻어서 총선거에서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지 않겠나라고 생각한 것)

프로그램 내에서 K-POP을 좋아한다고 말하더군요

K-POP을 듣게 된 것은 재작년부터입니다. 아이유상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고, 가요 프로그램도 보게 되었고, 블랙핑크와 트와이스를 알게 되었습니다.

‘PRODUCE48’ 오디션에서도 아이유씨의 ‘Dear Name’을 모두 한국어로 불렀습니다.





 가장 필사적이었던 때의 일

그렇게 시작된 'PRODUCE 48‘에서는 갑자기 가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참가 멤버는 전원 트레이너들 앞에서 춤과 노래를 선보이며 그 실력을 A~F의 5단계로 나뉘었다.

이것은 프로그램의 MV ‘내꺼야’의 위치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AKB48의 많은 수는 이곳에서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타카하시 쥬리는 여기서 B등급으로 평가받는다. 48그룹에서는 A등급이 미야와키 사쿠라와 타케우치 미유, B등급은 타카하시를 포함한 4명 뿐이었다.

그리고 ‘내꺼야’의 3일간의 연습기간을 거친 두 번째 등급평가에서는 A등급으로 올라간다. 당초의 평가는 높았다.

첫 랭크 분류 심사 단계에서 타카하시 씨는 높이 평가받으셨죠.

하지만 정말 여유가 없었습니다. 한국의 연습생과의 실력 차이가 너무 커서, 어떻게하면 좋을까라고. 트레이너 분들도 일본인의 경우 "뭐야, 이거?"같은 느낌이었구요.

단지, 제 차례가 오기 전에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FT아일랜드의) 이홍기씨가 다른 트레이너들에게 “이 사람(일본 연습생)들의 장점은 솔직함이니까 그것을 봐주세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것을 듣고, "이제는 할 수 밖에 없어!"라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지금까지 AKB48에서 해온 것을 온 힘을 다해 보여줄 수 밖에 없다고요. 그랬더니 의외로 B를 받았습니다. 정말 힘든 것은 그 다음이었죠.



이어서 한번 더 랭크 분류가 있었죠. A등급으로 올랐습니다

스스로 찍은 영상심사였습니다. 그건 엄청 힘들었습니다.

이틀간 계속 ‘내꺼야’의 노래와 춤을 계속 외웠죠. 한국어 가사를 제대로 외운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게다가 도중에, 저를 포함한 몇 명이 키타하라 리에씨의 졸업 콘서트(4월 14일) 때문에 니가타(新潟)에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만 먼저 찍었는데, 그랬더니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그대로 울면서 니가타에 돌아갔더니, 안준영 PD가 니가타에서 영상을 찍어도 좋다고 연락을 했습니다.

다만, 한국에 있는 아이들과 같은 시간에, 절대 다시 찍지 않는다는 규칙으로요. 그래서 니가타에서도 ‘내꺼야’ 연습을 하고 영상을 찍었습니다.

이때가 가장 필사적이었습니다.



(<내꺼야> 일대일 아이컨택 타카하시 쥬리)



눈으로 듣는 유튜브 – 유시민의 고칠레오 2회 - "북한 핵 개발 자금 출처는 DJㆍ노무현정부" 사실일까? 2부 눈으로 듣는 유튜브



‘알릴레오-고칠레오’는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이 진행하는 방송입니다.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에서 전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전문 속기사가 아니기 때문에 발언 내용을 100%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중간중간 발언자의 말이 꼬였다고 느끼거나 할 경우에는 임의로 말이 되는 문장으로 수정한 경우도 있습니다만, 가능하면 100% 그대로 반영하려 노력했습니다. 괄호 안의 설명은 제가 임의로 넣은 설명이며 발언자가 말한 내용이 아닙니다.

**출연자 소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유), 천호선 노무현재단 이사(천)


(11:50부터 끝까지)

 귤상자 음모론이 가짜뉴스인 이유


(사진출처 : 홍준표 페이스북)


그 이야기(대북송금 특검)를 다시 기억해내게 한 게 최근에 역시 홍준표씨입니다. 홍준표씨가 최근 우리가 귤을 제주산 귤을 북측에 보냈잖아요. 그때 홍준표 씨를 포함하여 몇몇 자유한국당 분들이 귤 박스에 귤만 들었겠느냐라고 이야기를 했고, 최근에는 앞으로 문재인 정부 힘이 빠지면 조사좀 해보겠다. 현금이 오갔을 것 같다라는 식의 발언을 하셨죠.
그래서 이문제에 대해서 아까 참여정부 때 4억 5천만원 화상상봉센터에 쓰였다라는거 말고 한번 더 있죠. 그게 바로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대북송금이고 그것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 특검으로 진사규명이 되었었던 사건인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사실 사람들이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홍준표 2018년 11월 11일 페이스북에서 귤상자 문제제기)


그 팩트를 이야기 하기 전에 귤 상자나 사과상자에 딴 거 담는 거는 그분들이 많이 하던거죠? 역시 해본 사람이 뭐 안다고. 옛말에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건 그렇고, 그러면 이 대북송금 사건, 소위 불법 대북송금 사건의 팩트는 뭐예요. 확인된 팩트가?


최종적으로 특검이 밝힌 것은 4억 5천만불이 현대에 의해서 북쪽에 전달되었다. 그 과정에서 산업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과정과, 북측에 송금하는 과정에 정부가 편의를 봐주었다. 외환관리법 위반이다. 그러나 이 4억 5천만 불은 보니까 대북 경제협력을 위한 일종의 선투자라고 검찰도 그때 규정을 내렸습니다.

(링크된 오마이 기사는 ‘발췌문’임. 발표문 전문이 발견되면 추후 업데이트.)


현대가 이 4억 5천만 달러를 제공하면서 뭐 사업 독점권 같은거를 조금 받았죠?


조금이 아닙니다. 그 부분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다시 한번 확인을. 7가지나 되요. 7대 SOC 사업권에 대한 30년 독점 사용권입니다. 일종의 조차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인데요. 읽어만 볼께요. 전력, 통신, 철도, 통천비행장, 임진강댐, 금강산 수자원, 명승지, 여기는 백두산 묘향산 다 포함합니다의 관광공사 등인데 이것을 위한 선투자 개념으로 우리 돈으로 따지면 5천억원 정도를 북에 미리 현대가 준거죠.


정부와 국책은행이 송금 과정에 편의를 준거는 확인이 된거죠? (천 : 그렇습니다) 그러면 정부가 국민 세금을 북한에다 몰래 보낸게 아니고, 현대가 이 돈을 선급금으로 말하자면 독점사업권에 대한 선급금으로 보내려고 했는데, 그 당시까지 북한이 국제금융거래에 인프라가 안되어 있었던 것도 있고, 국제 제재도 있고 해서 정부가 편의를 봐준 건가요?


글쎄요. 그 배경에 대해서는 정확한 공식적인 해석은 없는데요. 여기서 하나는 더 있습니다. 1억 달러 정도를 정부가 대북 특별정책자금으로 지원하는 문제가 검토됐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건 실행되지 않았죠.
최근 며칠 전인가요 기사인데요. 현대 현정은 회장이 그때 그 보냈던 사업권을 기반으로 해서 현대의 대북진출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게 그대로 유효한겁니다.
이게 가만히 생각해보시면 제가 만약 5천억이 있었으면 7대 사업 독점권을 준다면 빚을 내서라도 5천억을 줬을거 같애요. 지금 그게 아마 다시 살아나게 되고, 현대가 북한에 진출하는데 굉장히 큰 근거가 뒷받침이 될 수 있는 그런 약속 또는 계약조건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이 산업은행하고 정부가 편의를 봐준 거 이거 때문에 특검이 이뤄졌고, 국회에서 야당이 그때 다수였을 때니까 특검법을 의결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안했다는 이유만으로 굉장한 정치적 곤경을 맞았잖아요. 특히 김대중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랑하는 그런 분들한테 비난도 많이 받고. 그때 왜 거부권 행사를 안하셨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좀 남아 있죠?


예.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가장 큰 거는 우리 유 이사장님이 쓰신 운명이다에도 나와 있고, 취재 하시고 쓰신 것 아닙니까? 당시에 만약에 이 부분이 김대중 대통령이 ‘나도 알고 있었다’라고 하고 통치행위의 일환이었다라고 하면 이 문제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노무현 대통령 측에서 (유 : 사람을 보내서 동교동에 전달을 했죠)
사실 유인태 정무수석이 그 당시에 가시기도 하고, 다른 분도 또 있고 (유: 누군진 알지만 말은 안할께요) 그렇게 전달을 했고, 그런데 결국엔 김대중 대통령께서 나는 보고받은 바가 없다 이렇게 된겁니다. 보고받은 바가 없으면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될 수가 없는거죠. 그러니까 불가피하게 특검으로 갔는데.
저는 거기다가 또 한가지 이건 유이사장님이 쓰신 얘기지만 또 하나는 우리가 특검 이러면 두 가지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는 특별히 일반 검찰이 아닌 검찰을 임명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수사의 범위를 항상 한정하죠. 특검법은 항상 2조에 보면 수사의 대상이라고 해서 어디어디까지만 한다고 정합니다.
그때 당시 노무현 대통령께서 이거는 일반 검찰에게 맡기면 파고파고 들어가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온갖 것들을 다 들춰내서 협박하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판단이 있으셨고요. 특검은 특정해서 한정하기 때문에 요 건에서 끝날 것이다. 그러니 특검으로 가는 것이 일반 검찰에게 기회를 주는 것보다 훨씬 낫다라는 판단도 있었죠.


그래서 당시 특검이 이 대북송금 관련 사항만 딱 조사를 하고 끝을 냈죠. 이거에 대해서는 지금도 여진이 뭐 SNS 보면 조금 있습니다만, 김대중 대통령으로써는 김대중 대통령 나름의 그런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을 것 같고, 노대통령은 노대통령 대로 여러 가지 판단이 있어서 조금 좋지 않은 후유증을 남긴 것은 사실이지만, 어찌보면 결과적으로 보면 특검 수사결과에서 나온 것처럼 현대에서 돈이 나왔고, 정부가 송금편의를 봐준 것이 사실의 전부임을 확인한 의미가 있죠.


거기서 하나가 더 나간게 노무현 대통령께서 당시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이것을 아주 고민하면서 고통스럽게 받은 카드였는데, 이 기회를 통해서 앞으로 투명하지 않은 거래, 투명하지 않은 주고받음 이런 것은 없을 것이다라는 약속을 하셨죠. 남북관계를 투명하게 이끌어 나가겠다 이거를 계기로.
그걸 아셨던 노무현 대통령이, 그때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유 : 준비위원장) 초기에는 준비위원장이 아니었고 나중에 그렇게 되셨고. 이 과정은 문재인 현 대통령께서 다 아시거든요. 이거를 현금을 단돈 얼마라도 보내면 나중에 특검간다는걸 다 아시는데, 그런 문재인 대통령에 귤박스에 현금을 넣어서 보냈을 가능성은 없을 거라고 보는 거죠.


그거는 논평할 가치가 없고요. 자 이제 마무리 하면서, 이 68억 달러에 대한 이른바 보수진영의 해석. 이게 북한에 대한 퍼주기고, 이걸로 핵을 만들었다. 이 팩트는 우리가 다 체크를 했고요, 이 팩트를 왜 이렇게 해석할까 이분들은?


그건 이사장님이 너무 잘 아시지 않을까요? 하하


제가요? 음... 제가 받은 느낌은 이게 대부분이 인도적 지원하고 현물 차관은 현물로 지급한 인도적 지원이었고. 현금으로 오간 것은 99.9%가 다 상거래에 동반되는 현금지급이었는데, 어쨌든 현금이 북한에 들어가면 다 이게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쓴다고 전제를 두면, 이렇게 비난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그런데 인제 이분들의 걱정을 해소하려면 북한하고 우리 사이에 아무런 경제적 거래를 안해야죠. 그죠. 결국 이 팩트를 이렇게 해석한다는 것은 앞으로도 항구적으로 분단상태에서 살아가자, 북한과 아무런 거래도 하지 말고 대결하면서 이것을 매우 이상적인 미래로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해석하는게 아닐까요


그렇겠죠. 노무현 대통령께서 당시에 하셨던 말씀을 한번 들어 보면서 얘기를 마무리 지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애요 그죠?

<2007년 10월 31일 제6차 세계한상대회 개막식 노무현 대통령 발언>

>설사 밑지는 장사이면 북한을 그대로 두어야 합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웃에 아주 가난한 나라, 가난한 국민이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안보의 위험요인입니다. 그래서 설사 수지가 맞지 않더라도 우리는 평화를 위해서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투자해야 합니다.


이 시각이 이제 68억 달러를 전혀 반대쪽으로 바라보는 그런 비전이나 시각을 대변하고 있는 말씀이죠?


예. 객관적인 근거 사실도 틀리지만, 해석도 다릅니다. 우선은 남측의 국민, 북측의 인민들의 생존과 삶에 어떤 방향이 좋을 것인가라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요. 그런 관점에서 봐야 하고요. 우격다짐이 아니라 합리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것은 북한 인민의 생활 나한의 경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통일의 관점에서도 북한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망가지면 위험이 굉장히 증가될 것이고요, 더 많은 통일비용이 든다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북이 경제적 자립이 가능해야 평화도, 번영도, 통일도 가능하다. 이렇게 봐야 할 것이고요. 앞서서 함께 살펴보았지만 국민 세금으로 현금 퍼준 것 없습니다. 그리고 대가 없이 퍼준 것도 없습니다.
억지로라도 대가없이 퍼주기라고 주장할 만한 것은 인도적 지원 뿐일 텐데요. 인도적 지원을 퍼주기라고 할 수도 원래 없고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나 국제 기구도 대북 인도적 지원을 상당히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현물이고요. 이것이 남쪽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북한의 주민들도 대부분 알고 있고 점점 더 많이 알아갈 것이다. 물론 이거이 핵개발에 사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없다. 오히려 평화통일의 대중적 기반이 될 수 있다라고 봐야 할 것이고요.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남북평화와 교류야말로 한국경제의 도약과 청년들의 일자리를 확대하는 그 어떤 정책보다도 높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핵심적인 국가 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 그러면 다 이게 북한 핵, ICBM 이런 문제들 때문에 이런 해석이 일부 통용될 수 있겠죠. 앞으로 북미 관계가 잘 풀어지고, 남북관계가 그와 함께 잘 발전하면, 남북 사이 경제교류가 활성화 되면서 민간 차원의 상거래도 아주 커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뭐 68억 달러가 아니라 6800억 달러가 될 정도로 남북한 사이에 상거래가 이뤄져도 만약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어떤 공포 또는 북한이 안보를 위협하는 주체로서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는 홍준표씨도 이런 해석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희망적인 결론을 도출하면서 오늘의 알릴레오, 아니 오늘의 고칠레오 코너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얼마 안되가지고 서툴러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고칠레오 2회 끝)

눈으로 듣는 유튜브 – 유시민의 고칠레오 2회 - "북한 핵 개발 자금 출처는 DJㆍ노무현정부" 사실일까? 1부 눈으로 듣는 유튜브



‘알릴레오-고칠레오’는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이 진행하는 방송입니다.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에서 전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전문 속기사가 아니기 때문에 발언 내용을 100%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중간중간 발언자의 말이 꼬였다고 느끼거나 할 경우에는 임의로 말이 되는 문장으로 수정한 경우도 있습니다만, 가능하면 100% 그대로 반영하려 노력했습니다. 괄호 안의 설명은 제가 임의로 넣은 설명이며 발언자가 말한 내용이 아닙니다.

**출연자 소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유), 천호선 노무현재단 이사(천)

*고칠레오 2회 2부

DJ, 노무현때 북한에 70억달러 퍼줬다?


알릴레오의 알짜 코너, 고칠레오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이제 두 번째 고칠레오인데요 오늘이. 우리 고칠레오 코너는 사회 혼란을 더 심각하게 만드는 각종 가짜뉴스, 특히 노무현 대통령과 노무현 재단에 대한 가짜뉴스 뿐만 아니라, 우리 삶과 관련된 중요한 사회적 현안에 대한 그런 가짜뉴스도 꽉 잡는 그런 시간입니다.
첫 회에서는 제가 문제가 되어서 저와 관련된 뜬소문 잡느라고 이분이 못나오셨는데요, 앞으로 고칠레오에 정기적으로 출연해서 가짜뉴스를 막 잡는 해결사 노릇을 하실 분입니다. 노무현재단의 천호선 이사.


반갑습니다


이제 고칠레오 코너에 정규적으로 이렇게 나오실건데, 소감 한말씀, 각오 한말씀.


어쩌다 보니까 불려나온 거고요, 앞으로 계속 나올런지는 오늘 이후에 평가에 따라 달려 있을 것 같습니다. 가짜뉴스 전문 해결담당은 아닐 것 같고요, 요번에는 한 가지를 맡게 됐으니까 최선을 다해서 바로잡기 위해서 고칠려고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가짜뉴스, 참여정부와 관련된 가짜뉴스, 이런 것이 나올 때는 우리 천 이사께서 담당해 주시지 않을까 이렇게 예측합니다. 자, 오늘 우리가 잡아야 할 가짜뉴스 뭐 가지고 나오셨어요?


북한 하면 떠오르는 지긋지긋한 얘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가지고 나왔는데요, 이것 관련된 발언을 먼저 들어보시고 시작하겠습니다.

(2017년 대선 토론회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 발언)
>지금 문 후보께서 지금의 북핵 위기를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탓을 하고 있는데, 이거 제대로 국민들은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북핵 위기는 DJ, 노무현 정권 때 70억불 이상 북에 돈을 퍼줬기 때문이다.


어... 허허 이거 한철 지난 얘기 같은데 끝없이 되풀이 돼요. 이게 벌써 20년?


그렇죠. 대북 지원이라고 할 수 있는게 시작됐을 때부터 2001년 경부터 시작된 얘기니까 20년 가까이 된 이야기가 됩니다.


지금 이 발언의 핵심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70억불이 넘는 돈을 북에 줬다 그거잖아요. 이게 맞아요?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70억불을 현금으로 돈으로 북한에 줬다라는 것은 완전한 거짓뉴스다라는 말씀을 드리고요. 이 토론 때 그런 말씀도 많이 하셨어요. 이 돈을 가지고 북핵을 개발했다. 그랬더니 북핵의 책임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게 있다라는 얘긴데, 그 또한 매우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다.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이 70억 달러라는게 아무 근거 없는 수치는 아니죠? (천 : 네) 이 70억 달러라는 홍준표씨가 얘기한 이게 내용이 뭐예요?


그러니까 뭐 홍준표 당시 후보가 지금까지도 그렇지만 늘 친절하게 자기 발언의 근거를 설명하는 분은 아닙니다. 본인이 얘기한 적은 없지만 많은 사람이 언론에서 추정컨대 이 70억이라는 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 북한에 보낸 68억불에 상당하는 현금과 현물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라고 추정하고 있죠.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경향신문의 보도에서 현금 현물을 합치면 70억불에 가까워진다고 추정)


그러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68억 달러 어치의 해당하는 뭐가 가긴 갔어요 그게 북한으로. 그쵸? 왜 간거에요?


당시 이제 정부와 민간 양측에서 동시에 간거고요. 또 한편으로는 현물과 현금이 다 섞여 있는 겁니다. 무엇이 갔다는 건 온게 있다는 얘기죠. 그래서 이걸 다른 정부의 액수와 비교하는건 중요하지 않을 것 같고요. 당시에 이게 실제로 어떻게 쓰였는가, 또 어떤 댓가가 있었는가를 확인하는게 제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김대중 정부, 그러니까 국민의 정부 때부터 보죠. 우선 북한에 현금으로 간게 얼마나 되나요?


아예 숫자가 너무 많이 나오면 듣는 분들이 헷갈리실 수 있으니까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묶겠습니다.
묶으면 68억불중에 현금이 39억불, 현물이 29억불이 갑니다. 합해서 68억불이 되는거죠. 이것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 민간에서 인도적 지원이 있습니다. 인도적 지원은 모두 다 현물입니다. 여기서 현물은 밀가루, 옥수수 등등입니다. 의약품도 있고요. 이게 소위 말하는 인도적 지원이라고 할 수 있고요.
두 번째는 정부에서 준 차관이 있습니다. 차관은 빌려주는 거죠. (유 :이것도 현물인가요?) 현물로 갔습니다. 식량, 쌀이 좀 있고요. 철도나 도로의 자재, 경공업을 위한 원자재 이런 것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철저하게 현물로 갔습니다. 이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이렇다 이런 얘기를 하는거죠.





이것은 현물로 간거니까 밀가루나 옥수수나 혹은 도로 만드는 그런 자재, 이걸로 핵무기를 만들 수는 없었겠죠?


유일하게 방법이 있다면 북한 밖으로 갖고 나가서 팔아서 달러를 받아서 그것을 핵개발 자금에 쓰는 방법이 있겠는데 그렇다면 다 드러 나겠죠. 정부 기관이나 이런데 다 드러나고 소문도 다 퍼질 것이고, 그 많은 액수를 그렇게 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어서 현물이 핵개발에 사용되었다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39억불이 현금으로 넘어갔는데요. 이 내역은 어떻게 되죠?


두 정부 기간 동안 북에 송금한 현금이 39억 달러입니다. 이것은 대부분이 다 남북간의 교역 등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보낸 것이죠. 이걸 퍼주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세계의 모든 교역이 다 퍼주기가 되고, 우리가 미국과 중국에 엄청난 퍼주기를 하고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39억 달러의 1만 분의 1만 정부가 현금을 보냈습니다.


이거는 왜갔어요?


이거는 딱 한번 갔는데요, 노무현 정부 때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위해서 다 금강산에 모을 수 없으니 화상상봉센터를 만들자라고 해서 우리 쪽에서 지원을 했습니다.


북한에 화상상봉센터 만드는 비용을 지원한게 40만 달러?


그 중에 여러 가지를 보냈는데 이거는 현금으로 줬어요. LCD나 이런거.(이 대목은 정확히 이해 안됨) 또 그다음에 북한에 다섯 지역에다가 화상센터를 만드는데 거기까지도 북한 이산가족을 모시고 와야 할거 아닙니까. 그것과 관련한 차량 구입비 등으로 해서 4억 5천만원 준게 정부가 준 유일한 현금. 나머지 39억불의 대부분 99% 이상은 다 민간에서 교역을 하거나 그러니까 물건을 받았단 얘기죠. 위탁가공을 하거나, 개성공단 임금으로 주거나, 사용료로 주거나 해서 다 대가가 있는 분명한 대가가 있는 것들이었죠.


이거는 소위 말하는 자본주의적 시장거래?


우리가 남는 게 있기 때문에 주고 받은 것이죠.


그러니까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들에게 지급한 임금, 그리고 우리 기업들이 북한 기업에 임가공 위탁해가지고 옷 같은거 받아서 그 대가 지불한 거니까 이거는 상거래죠 상거래. 그죠? 남북한 기업 사이에 상거래 실적 이게 39억 달러 현금거래의 99% 이상?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99.99% 정도 될텐데요, (현금 지원한 0.001%는) 이것은 남북 화상상봉센터에 확충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2005년부터 약 2년 동안 참여정부에서 3700명이 화상상봉센터를 통해서 이산가족 상봉을 했습니다. 그만큼 매우 중요한 사업인 거죠. 북한은 전쟁 때 호적등본이 다 없어졌고요, 주민등록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명단을 넘기면 일일이 다 찾아 다녀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대 남북 이산가족들의 절실함을 놓고 볼 때도 이것은 결코 퍼주기를 위한 현금 제공이라고 절대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고요. 물론 이제 이것이 정권 바뀌면서 중단 되었습니다. 이제 새롭게 다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홍준표씨의 그 당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의 이 주장, 70억 달러 이상을 북에 돈을 퍼줬기 때문에 북핵 위기가 왔다, 이거는 가짜뉴스라고 해야 되나요?


일단 70억 불을 현금을 줬다는 주장은 100% 가짜고요, 그런데 그것이 근거가 되어서 마치 사실인 것처럼 알려지고 있고요. 나머지 부분, 현물을 가지고 북핵 개발을 위한 달러를 확보했다 이것도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고요. 민간 차원에서 오간 것은 다 주고 받은 충분한 우리 입장에서 상거래였고 댓가가 있었던 것이다. 사업권이든 이용로든 임금이든 위탁가공비건 물건을 받건.


이것이 사실관계는 이게 다죠? 더 보탤 사실관계가 있나요? 불법 송금 뭐 있었잖아요.
(설명 : 고칠레오 2회에 나온 표)


그 얘기 전에 한 가지만 말씀을 하면 차관이 있어요.


현물 차관. 현물 29억 달러중에 차관이 일부 있죠.


차관이 이제 언론에서는 야당에서 문제제기 했던 것 중에 하나가 이 차관을 비려준 건데 하나도 못 받고 있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게 인제 2001년 김대중 정부 서부터 차관을 줬는데 차관은 식량이나 도로나 철도의 자재들입니다. 그래서 이 차관은 보통 10년 거치 20년 상환 아닙니까. 그래서 2012년서부터 상환을 조금씩 받기 시작해야 할 것이었는데, 그 상황에서 이것을 못 받았죠. 남북관계가 안 좋으니까.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부터 북한을 주적시했고, 박왕자씨 사건 때문에 남북관계가 전면적으로 단절되었습니다. 이런거죠. 상대가 나보고 적이라고 하는데, 꾼 돈을 내가 알아서 갚어? 이럴 리가 없었던 거죠.


이거는 나중에 북한이 갚아야 하는 거죠?


그렇습니다. 현물로 갚아야 하는 것이고요. 현금으로 갚아도 되고 이 두 가지는 앞으로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받을 수 있는게 되겠죠.


이거는 나중에 현물차관 줬는데 현물로 받으면 안되나요.


그때그때 거래를 서로 협의를 하면 여러 가지 방법이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물로 받아도 될 것 같아요. 현찰이 북한에 아직은 달러가 없을 거 아니예요?


광물자원 같은 것들로 받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 거다라고 이렇게 전망할 수 있겠죠.


전체 현물로 건너간 29억 달러 어치 중에서 약 10억 달러 정도가 아마 차관이었던 걸로 그쵸?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걸로 이제 홍준표 씨가 이야기한 70억 달러라는 근거를 알 수 없는 액수의 근거를 우리가 애서 찾아서 약간 교정한게 68억 달러. (11:27부터 위에 올린 표를 띄워놓고 설명)
68억 달러의 구성 내용은 39억 달러의 상거래에서 오고 간 현금, 그 다음에 29억 달러의 차관을 포함한 현물 지원, 인도적 지원 이게 다인거죠. 팩트체크는 이거로 됐고요. 차관 문제는 아까 말씀을 하셨고.
대북 불법송금 문제로 특검도 하고 뭐..

(대북송금 특검 부분부터는 2부에)


눈으로 듣는 유튜브 - 우먼스플레인 16화 - 20대 남자 분노, 이유 있다고! 2부 눈으로 듣는 유튜브




‘우먼스플레인’은 젠더 이슈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방송입니다. 시사평론가 김용민씨의 유튜브 채널에서 전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전문 속기사가 아니기 때문에 발언 내용을 100%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중간중간 발언자의 말이 꼬였다고 느끼거나 할 경우에는 임의로 말이 되는 문장으로 수정한 경우도 있습니다만, 가능하면 100% 그대로 반영하려 노력했습니다. 괄호 안의 설명은 제가 임의로 넣은 설명이며 발언자가 말한 내용이 아닙니다.

눈으로 듣는 유튜브 - 우먼스플레인 16화 - 20대 남자 분노, 이유 있다고! 1부

**출연자 소개**
이선옥 작가(이), 황현희 개그맨(황), 김성회 손혜원의원실 보좌관(김)
방송 일자 : 2019년 1월 2일

21분 05초 ~ 끝까지


중요한건 가치(성평등)이지 이념(페미니즘)이 아니다


많이 배우고 계십니까? 하하


예, 뭐 다 맞는 말씀이시고 사실은 제가 그날 김용민 브리핑에서도 뒷부분에 그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586세대의 정치적 생각으로는 20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뭐 20대 분들이 보시기엔 저도 그들과 같은 한 부류 아니냐라고 말씀하실 수 있을텐데. 저는 뭐 조금 결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민주대 반민주의 구도로 지금까지 몰고온 그것으로 역사적 역할은 다했고,
사다리로 말씀도 하셨지만, 그 사다리가 걷어차여진 첫 세대가 저희(1970년대생)인 거거든요.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해서 정규직으로 해서 쭉 환갑까지 가는거고, 그 밑에 비정규직이 양산되어 있는 거죠. 그들의 정규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지금 20대가 그렇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들어가질 못하는 거고. 이런 것에 대한 문제제기였던 거고, 그래서 20대, 30대 목소리가 그들의 입에서 나와서 정치권에 그대로 전달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얘기도 같이 했던 건데, 저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작가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586이 시혜적인 관점에서 20대를 찾아봐서는 저는 이 문제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얘기만 하시지 그랬어요. 왜 그랬어요? 하하


아니 근데 민주당에 계시잖아요. 저는 궁금한게 옛날에는 YS, DJ 때는 40대 기수론 해서 그때 40대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 이런 바람이 불었었잖아요. 그게 몇십년 전이에요 생각해 보면. 그런데 왜 현재에서는 20, 30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인을 왜 키우려고 하질 않습니까?


전반적인 틀에서 좀전에 말씀드린대로 586이 너무나 많은 포션을 되면서 그 외의 부분들은..


아니 밥그릇 챙기는 겁니까 아니면.


세력 자체가 정치권 내에서도 크고 사회에서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으니까 그 다음 세대들이 기를 펴기 어려운 구조가 되는 거고


들어갈 수가 없잖아요


저는 그게 뭐 이제 세대간의 갈등을 당연히 유발하게 될 거고, 어느 세대나 마찬가지였고요. 그 386세대도 대학 다닐때는 소위 말하는 419세대에게 똑같은 애기를 했던 거거든요. 그런 식으로 세대 간에 교체가 되야 하는 상황이 왔다고 저는 보고 지금이 그런 터닝 포인트 중에 하나가 아닌가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런데 지금처럼 이 세대 문제에서 젠더 갈등으로 드러난 적이 한국 사회에서 없었어요. 우리 모두 다 지금 처음 겪는 일이예요. 그런데 처음 겪는 일을 그 이전의 잣대로 이걸 자꾸 분석하거나 파악하려고 하니까 이렇게 삑사리가 나는 건데, 그걸 판단을 못하신다고 저는 봐요.
당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지금은 과도기야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586 지식인들이 그런 얘기 많이 해요. 우리 사회가 성평등 사회로 가는 어던 통과 의례고, 지금은 과도기고, 이것이 지나면 좋아질 거다라는 말을 해요. 20대 남성들에게.
당대의 사람들에게 너네는 지금 통과의례를 거치는 중이니까 좀 참아, 좋아질 거야, 라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현실은 현실인데, 자신들은 운동권이고 데모했어도 좋은 직장 가서 지금 사회를 움직이는 자리에서 안락하게 살면서 아 우리도 지나고 보니 좋은 세상이 왔잖아 이게 말이 안되잖아요.


그게 정확한 포인트라고 보는데 이런 건거죠. 제가 야당 보좌관 시절에는 사실 예를 들면 이마트에 와서 등산복바지 3만원짜리 세벌을 사고, 구겨도 다릴 필요 없는 셔츠를 다섯벌 사서 일년 내내 그걸 입고 다녔어요. 왜냐면 항상 주말이고 주중이고 길거리에서 데모해야 되고, 정청래 의원(김성회 보좌관은 정청래 의원 보좌관을 지내다 손혜원 의원 보좌관이 됐음)이 단식한다고 광화문 가서 30일씩 있고 이러는 과정에서 매 주말마다 쉬지 못하고 어디 집회하러 가고 어디 노조가 잡혀가면 거기 쫓아다니고 이렇게 살았거든요.
그러다가 정권이 바뀌고 나서 이제 여당의 보좌관이 됐잖아요. 그러니까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진거죠. 순식간에. 그런데 이게 지금 50대들에겐 지금의 세상이 너무 좋은 거예요. 이정도면 정말 훌륭하지 않느냐라고 되니까 20대들에게 '너희들은 왜 이걸 모르니'라고 말을 하는건데 20대는 다른 고민을 얘기하고 있는데.


그것을 다른 말로 기득권이라고 표현해도 되겠습니까?


그렇죠. 그 기득권인 거고, 세상을 바꾸는데, 본인들의 입장에서는 세상을 바꾸는 데 일생을 바쳤는데, 그 세상이 자기가 원하는대로 바뀐 거지. 그러니까 여기서부터는 이제 머물면 되겠다. 이게 기성세대가 되는거고 사람이 보수화가 일어나는 거고.
사실 저는 그사람들에겐 이런 얘기를 계속 하면서 욕을 하는 입장이고, 그런 점에서는 심정적으로 20대, 30대와 더 붙어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게 젠더 이슈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없이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고, 제가 그들과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반성을 계속 하고 있는 거죠.


그러면 다시 젠더 이슈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커뮤니티가 지지자들의 이론을 생산하고 그것을 주변에 퍼뜨리는건 매우 유용한 수단이었고, 지금도 지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막강한 세력이라고 생각하고,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전체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건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라고 보좌관님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이 생각은 아직 변함은 없으신지.


그거는 설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라고 보는데, 저는 뭐 특히나 커뮤니티에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오래 있었고 계속 거기서 활동을 하던 사람이고, 보좌관을 하기 전부터 같이 어울려서 놀던 사람들이죠.


잠시 쉬던 중에 사달이 난거야 하하


실제 지역에 가서 현장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서 그 사람들의 육성을 듣는 일들이 항상 병행되어야 한다라는 주장에서 그런 맥락에서 제가 이야기를 했던 것이고고요, 커뮤니티 여론이 여론조사에 영향을 못미친다라는 뉘앙스는 아니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나태했던 거죠. 나태했던 것이고 그 문제를 이제서야 알았다. 저는 그렇고 이 문제를 지금부터 이선옥 작가님 경고처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민주당이 앞으로 계속 정치를 해 가는데 있어서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좀 최근에 많이 느끼고 있죠.


근데 지금 여성의 지지율이 워낙 되게 공고해요. 남성하고 지지율 차이가 많이 나고. 여성들은 뭐 여성폭력기본법에 대해서도 90% 넘게 지지를 하고 있고. 그런 상황에서 저는 민주당이 뭐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치공학적으로 이렇게 계산을 해보면 또 이렇게 움직이면 여성표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을 수 있잖아요.
제가 보좌관님이 오셨으니까 정치공학 얘기를 하게 되는데, 그래서 과연 저는 어떻게 대처할지 좀 궁금한데, 아직까지는 뭐 느껴지는 변화는 없어요. 여성가족부에서 게임이나 온라인 표현물에 대해서 성평등 ,성차별 게시물 모니터링을 해서 규제를 하겠다 또 발표를 하셔가지고 지금 게임업계, 혹은 게임 유저들에게 비난을 받고 계신데, 이 여성문제에 대한, 젠더문제에 대한 규제일변도, 엄벌 일변도 이런 정책, 그것이 저는 되게 위헌적인 요소가 많은데도 그냥 막 추진되고 있단 말이죠. 여가부가 지금 규제 발표한 것만 해도 그렇고, 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도 더 철저히 모니터링 해서 여성혐오 표현물들을 거르겠다 이런 얘기들을 막 하시고.
정부의 부처의 수장이나 정부 기관의 수장들이 가진 인식 자체가 페미니즘이라는 특정한 사상에 대해서 사상 중에 하난데 이걸 성평등이란 가치와 같은 급으로 두고 계속 그것에 입각한 정책을 자꾸 펴시고 발언을 여과없이 하시는 거가 저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계속 애기를 해왔지만 정부가 추구할 것은 가치이지 이즘(ism)이 아니거든요. 근데 이 정부가 계속 가치보다는 이즘을 추구하고, 그 이즘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분들을 계속 영입하거나 정책 입안자로써 계속 활동을 하게 하시는 것 같아서 저는 우려가 들고요, 표가 움직이는 것을 어떻게 막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표에 민감하실 수밖에 없지만 정치권에 계신 분들은, 표로만 보시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보면 그들의 목소리가 크고 그들이 뭔가 계속 얘기하려고 하니까 여론이 이제 그쪽으로 갔다고 생각을 하나봐요. 그래서 그쪽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그쪽 편을 많이 들어주는 것 같은데, 이제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쪽의 목소리도 같이 좀 말씀하셨다시피 많이 자세하기 알진 못했다라고 말씀을 하셨잖아요. 이쪽의 목소리도 좀 많이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제 아셨으면 뭘 하시겠습니까.


사실 제일 중요한 건 20대가 계속 20대에 머물지 않는다는 거거든요. 20대가 30대가 되고 40대가 될건데, 20대-30대 남성들의 이러한 이슈에 대해서 제대로 귀담아 듣고 반응하지 않으면, 이대로 10년만 지나가면 저는 민주당이 지지기반의 상당부분을 잃는 타격을 입을거라고 생각해요. 귀기울여 듣고 제대로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좀전에 말씀하셨듯이 성평등 정책을 세우는 것과 페미니즘이 다른 것인데,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이 문제는 잘 모르니까 전문가를 영입하면 되라는 태도가 빚어내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예전에 뭐, 너무 옛날 얘기라 죄송하긴 합니다만 김영삼이 대통령 할때 머리는 빌려오면 된다라며 경제 문제를 관료들에게 다 맡겼다가 IMF라는 이 사단이 났던 것처럼, 지금의 이 문제도 마찬가지로 정치를 고민하는 사람. 민주당이 정말 집권을 앞으로 하고 싶다면 성평등 문제에 대해서 자기가 자기 문제에 대해서 정책을 만들고 거기서 다양한 커뮤니티의 목소리, 여기서 커뮤니티는 온라인 커뮤니티 포함해서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그렇게 해서 정책을 만들어야지 여성운동을 하던 분들이나 페미니즘을 하던 분들만 영입해서 그냥 정책을 맡기면 된다라는 단순한 사고는 좀 벗어버려야 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이미 굉장히 많이 되셨고, 대세가 그쪽으로 가고 있어서 저는 이게 변화가 있기는 참 어려운 조건이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아까 김 보좌관님하고 사전에 얘기를 했는데, 이게 반민주당, 반문재인 이런 식의 흐름으로 그치지 않고 저는 전체적으로 보면 반진보, 진보에 대한 환멸, 분노 이렇게 간다고 봐요. 우리가 뭐 정의당 사태 시사인 사태, 이런 것을 쭉 봤듯이 제가 그때도 얘기 했던게, 그렇게 돌아선 마음들이 지금 향할 곳이 없을 때 그게 비뚤어지게 그 에너지가 갈 수 있다, 사회에 좋은 에너지로 갈 수가 없다라고 생각한다.
평등이나 인권의 가치를 다 중요하게 여긴다고 생각하죠. 그러니까 진보세력 범진보세력을 지지하는 지지자로써 있었던 건데 자기 정체성이. 그런데 이런 식으로 되면 범진보에 등을 돌린다는 거죠. '너네 믿고 지지해 줬더니 돌아오는게 이거야? 니네가 다를게 뭐야?' 그들이 판단할 때 계속 이렇게 파쇼적으로 가고, 반민주적인 행동을 하고. 인권의 이름으로 혹은 진보의 이름으로 혹은 뭐라고 해야 되죠.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나를 억압하거나 나에게 피해를 주는데 내가 진보를 지지할 이유가 뭐가 있어? 이거 되게 환멸을 느낀단 말이예요. 그렇게 가고 있다고 봐요 저는. 그래서 3년 전부터 경고했는데 아무도 안듣는거예요.
저는 그게 되게 위험하다고 봤어요. 왜냐면 계속 얘기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시사인을 구독하고 정의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우파입니까? 아니예요. 아니죠. 그리고 지금 20대들 문재인 대통령 엄청나게 지지했어요. 그런데 이들이 갑자기 무슨 일베화가 되어서, 극우주의자가 돼서 이 정권에 대해서 지지를 철회하냐는 거죠. 이들은 아직도 '너네 일베화 되고 있다' 이런 말을 그냥 정부 기관의 수장들이 해요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누가 자기를 일베로 취급하는데 그렇다고 수긍을 하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계속 오히려 저는 막 섶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 같은 반응들을 계속 보이니까, 아 정말 사태를 못읽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계속 할수밖에 없어요.

(위 링크에서 나윤경 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의 발언 "그렇다면 ‘일베’(일간베스트)에 대해선 왜 침묵하고 있는 거죠? 결국 남성들이 일베는 아니더라도 일베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걸 부정하지 못한다고 봐요.)


계속해서 목소리를 좀 내야할 것 같습니다. 이게 실질적으로 드러나는게, 바른미래당이 5% 대의 지지율에서 8.2%, 2.6%가 상승해서 8.2%까지 지지율이 올라갔거든요. 5% 대 지지율을 8%까지 올린거면 사실 이게 엄청난 영향이 있는거예요.


저도 이 과정을 통해 많이 느끼고 배운 것중에 한 지점인 거고요, 이 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듣고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과 정치집단에게 지지가 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거죠. 그런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대책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대책을 생각하는건 둘째치고 일단은 목소리를 귀기울여 듣고 그들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 제가 앞에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문제와 관련되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또 당으로 들어와서 함께 활동하는 것도 되게 필요할 거라고 보고요.
20대, 30대 남성들의 마음을 읽어야 다음 번에도 집권이 가능하지, 이것을 놓치고는 되지 않겠다라는 이런 위기감을 일단 요번 일을 통해서 많이 느꼈어요.

안전에 대한 여성들의 과장된 불안


저는 어쨌든 20대 남성들이 바른미래당을 뭐 지지하고 이게 문제가 아니라, 자기들의 의사를 표현할 창구를 찾으셔야 된닫고 봐요. 세상에 어느 세력도 그렇게 조직적이거나 세력화되지 않은 움직임에는 반응하지 않죠.
그런데 여성들에 대해서는 저는 좀 과반응했다고 평가하는게, 이 기사도 보시면 있는데, '범죄율이 낮은데 한국인 밤길불안 왜 클까'라는 기사예요. 최근에 보건사회연구원에서 낸 기사인데요, 한국이 16개 국가중에서 범죄 위험은 꼴찌에요. 그런데 불안감은 3위입니다. 강도나 신체적 위해 경험을 입은 순위가 핀란드 스웨덴 프랑스가 높고 한국은 1.5%로 16위에 해당하는 안전한 국가인데, 불안감은 세계 3위란 말이죠. 1위가 체코, 2위가 러시안데.
우리 나라의 여성들이 이 조사의 특성이 젊을수록, 외국은 나이가 많은 60대 이상의 노령인구일수록 불안이 큰데 범죄 불안이 큰데, 한국은 젊을수록 크다는 특징이 있고요. 특히 여성들에게서 불안감이 많이 나타나고, 특이한게 교육수준이 높을 수록 불안감이 높아지는 경향을 드러냈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 조사로 알 수 있는 것은 20대 여성들의 불안감이 현존한다, 그거는 뭐 사실이죠. 그런데 그 사실이 현실과 과연 맞는 불안감이냐, 굉장히 안전한 국가고, 실제로 신체적 위협이나 경험을 입은 경험도 매우 작은데, 이 조사에서는 최하위 수준인데도 불안감이 높은 것은 젊을수록 정보를 얻는 창구가 온라인에서 미디어의 극단적인 뉴스나 위험을 보도하는 이런 것에 되게 노출이 많이 됐다는 거죠.
그런데 최근 3년동안 그 혜화역 시위에 나온 여성들이 분노했던 것도, 여성이 안전한 나라에 대한 욕구가 있어요. 있는데 실제로 그 불안감이 현실과 비교해서 어떻다는 것을 정부가 혹은 정책을 입안한 사람들이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고, 이것이 과장된 공포나, 과잉 공포로 흐르지 않도록 조절해야 될 의무가 있어요. 정부는. 객관적인 지표를 보여주고 실제로 이렇다, 그렇지만 당신들이 가진 불안감은 이해해. 그렇지만 현실은 이러니까 우리가 좀더 그 불안감을 해소할 방향으로 노력은 하겠으나, 실제로 자신들이 활동하는 커뮤니티나 접하는 온라인 매체에서 가장 극단적인 뉴스만을 계속 접하거든요.
그리고 그거를 또 편승해서 확대 생산하는 언론, 미디어의 문제. 저는 여기에서 진보매체가 황색매체랑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해요. 진보매체가 지난 3년동안 계속 보도했던 여성폭력에 대한 뉴스들, 정말 현미경처럼 잡아내서 이것이 보도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판단하지 않고, 계속 보도했던 그런 뉴스들에서 여성들의 공포를 계속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보도를 했단 말이죠. 그러면 그걸 접하는 여성들은 당연히 없던 불안감도 생길 수밖에 없어요.


오늘 이렇게 얘기를 사실 저희가 30분에서 40분 정도만 하려고 했는데 사다 보니까 시간이 좀 많이 지체가 됐네요. 오늘 함께하셨는데 어떠셨습니까?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모르던 것들을 많이 배웠고, 모르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되게 부끄러운 일이었고, 사실 보좌관이라는 직업이 여론을 읽고 여론을 탐색하고 그것을 정책에 반영하도록 준비하고 의원과 상의하고 이런 역할을 햇던 건데 그런 점에서 놓고 봤을 때 굉장히 부족했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뭐 우먼스플레인 보고는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더 열심히 이선옥 작가님 말씀을 듣고,


제가 그날 사건 나고 대화하면서 아니 진선미 의원실이나 정춘숙 의원실 같은 본진 놔두고 왜 엄한 데서 폭격을 맞아가지고 하하 그러니까 안타까웠어요.


뭐 이렇게 말씀을 이제 아셨고, 거기에 대한 정책과 정치적인 활동을 약속을 해 주셨으니까, 많은 남성분들, 억울함을 호소하는 많은 남성분들을 대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잘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기대해도 됩니까?


뭐, 기대는 하지 마시고 제가 열심히는 하겠습니다.


아, 오늘 초면에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나 저는 걱정이 되가지고.


채팅창을 제가.. 아까 후원금 주신 분도 있는데 고맙습니다. 오늘 애기하느라 오늘 흥분을 많이 해가지고. 치마 입고 나왔을때 더 이뻤는데 제가 무릎담요 논란을 종식 시키고자 하하하.
기대하지 말라고요? 아니 기대를 섣불리 막 기대하라고 하는 것보다 그래도 여권에서 어쨌든 반성도 하시고 나와서 얘기하셨는데 잘 봐주셔야죠. 여러분이 변화하겠다고 하는 분들에게 너 안그럴거야라고 얘기하면 어떻게 변화가 됩니까. 그러시면 안되죠.


사실 오늘은 열띤 토론이 나올 수 있을까라고 생각을 하고 왔었는데, 이제 반응을 보시고 이런 쪽도 많이 생각을 하시는구나라고 그 목소리를 들으신 것 같애요. 그 들은 목소리를 현실로 옮겨주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청취자 분들, 시청자 분들에게도 말씀드리고 싶은게, 아무 말도 안하고 아무 것도 안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직접 내셔서 정치권이나 이런 곳에 목소리가 좀 도달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부탁드리고 싶은게, 여성폭력 방지기본법 그게 이제 개정 작업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일단 그 법의 위헌 요소나 우려되는 요소, 부작용이 우려되는 요소들에 대해서 좀 같은 당이시라도 그런 우려점들을 전달해서 적극적으로 개정작업에 관여를 하셨으면 좋겠고,
그 다음에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위헌적인 요소들이나, 여가부에서 지금 교육하겠다고 하는 성평등 교육 매뉴얼 같은 것에 대해서 좀더 관심을 갖고 보셨으면 해요. 저희도 한회 지금 다루려고 지금 매뉴얼들 보내주신 것들 보고 있는데요, 저는 정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그 교육이 왜 중요하나면, 유치원부터 온국민에게 다 적용되는 생애 전주기에 지금 해당되는 교육이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지금 정책의 수장이신 나임윤경 원장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이수역 사건 언급 하셨잖아요. 여성의 폭력에 대한 공포 그거는 동질이 아니다. 여성의 행위에 대해서는 약자로서 면죄부를 주고, 남성의 행위에 대해서는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일방적으로 규정을 하신단 말이죠. 이런 시각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하시는 거라서 저는 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목소리가 여권 안에 전달이 되었으면 하고.
저희 댓글 반응좀 해주시라고 했는데 또 이야기 하면 제가 말이 너무 많죠? 저 여가부 장관 안한다니까 자꾸 여가부 장관 하라고 하하하. 저는 게을러서 장관 못합니다. 하여튼 그렇고요.
저희가 다음 주에도 할 것 같아요. 다음 주에 계속 우리가 하려고 했다가 못했던 숙명여대 사건하고, 이수역 사건, 이제 경찰조사 마무리 됐는데 그 두 얘기 좀 다음 주에.


인사드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여쭤봐도 됩니까. 손혜원 의원님, 야구 좋아하시더라고요 하하하. 야구좀 같이 보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 그 두산 베어스 반달곰 디자인을 한 사람이 손혜원 의원이예요. 야구를 굉장히 사람하는 사람이죠.


전 한화거든요. 한화랑 야구할 때 같이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재밌을 것 같습니다.
예, 우먼스플레인은 여기서 마치고요, 저희는 다음 주 화요일이죠? 화요일 생방으로 인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동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먼스플레인 16화 끝)


눈으로 듣는 유튜브 - 우먼스플레인 16화 - 20대 남자 분노, 이유 있다고! 1부 눈으로 듣는 유튜브




‘우먼스플레인’은 젠더 이슈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방송입니다. 시사평론가 김용민씨의 유튜브 채널에서 전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전문 속기사가 아니기 때문에 발언 내용을 100%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중간중간 발언자의 말이 꼬였다고 느끼거나 할 경우에는 임의로 말이 되는 문장으로 수정한 경우도 있습니다만, 가능하면 100% 그대로 반영하려 노력했습니다. 괄호 안의 설명은 제가 임의로 넣은 설명이며 발언자가 말한 내용이 아닙니다.

**출연자 소개**
이선옥 작가(이), 황현희 개그맨(황), 김성회 손혜원의원실 보좌관(김)
방송 일자 : 2019년 1월 2일

시작 ~ 21분 05초

 20대 정서 모르는 40대 이상 남성들 


우먼스플레인으로 인사 드립니다. 오늘도 역시 이선옥 작가님 자리해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또 특별히 김용민씨가 자리를 해주셔야 되는데 오늘 급한 일이 좀 있으셔가지고 학교를 좀 다녀오셔야 되나봐요. 그래서 오늘 특별히 좀 금요일 날 생방으로 모셔 봤습니다. 김성회 보좌관님 자리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누구 의원실이라고 얘기 하셔야 되는거 아닌가요? 하하


괜찮을까요, 밝히셔도?


네 뭐...


아니, 시작하기 전에 오늘 욕먹을지 모른다고 다른 의원실 이름 댈까 이래서 제가, 하하.


자한당쪽 대세요, 하하


김용민TV 시청자분들 다 아시는 거라, 저는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실의 김성회 보좌관이라고 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근데 두 분은 뭐 초면이신 겁니까 아니면?


저희는 원래 아닌 사이고요, 김성회 선생님이 저희 여성폭력방지 기본법 할 때 제가 최종안 본회의 통과한 최종안도 제가 부탁해서 구해주시고, 잘 아는 사이예요.


저희가 잘 알기까지 됐군요, 이제?


하하, 아니 국회 관련해서 제가 뭐 모르는 거 물어보고 할 때 자문도 해주시고, 저희 프로에도 어쨌든 뒤에서 후원해 주시는 조력자 중에 한분이신데 오늘 ㅎㅎㅎ


근데 오늘 괜찮으시겠어요?


아 네 뭐 사람이 잘못하면 반성하고 새롭게 마음먹고 나가면 되니까요. 오늘은 다른건 없고 이선옥 작가님에게 많이 배우려고, 그런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제가 사실 가운데 앉아서 두 분을 좀 말릴까도 생각을 해봤는데 그렇게 자리 배치 안하고 둘이 오늘 열띠게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나누실 것 같아서 저는 옆에서 좀 잠깐.


하필 또 그 문제의 발언이 김용민 브리핑에서 하셨던 거라서 오늘 김용민 쌤하고 같이 이야기하면 참 좋은데.


알겠습니다. 지난 그 2018년 12월 19일에 김용민 브리핑 답정너 코너를 진행하고 계셔서. 답정너에서 이제 김성회 보좌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20대 남자들 지지율이 많이 떨어지는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시냐라고 말씀했는데 직접 워딩을 좀.. 어떻게 말씀을 하셨죠, 거기서?


아, 예. 제가 그때는 경제가 어려운 것이 첫 번째 이유라고 본다고 얘기를 했고요. 경제가 어려워 지면서 지지율이 하락한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고. 20대 취업률 뭐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에 기인한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좀 단편적인 분석을 했다가 호되게 혼이 났죠.


여기서부터 좀 이야기를 이어가보죠.


그때 그 프로그램 하시고 커뮤니티에서 좀 댓글 같은 걸로 많이 욕을 먹으셔가지고 김성회 선생님은 좋은 게 저한테 물어보셨어요. 제가 이런이런 발언을 했는데 뭔가 잘못된 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좀 조언을 해달라고. 우리가 뭐 잘못할 수 있죠. 그런데 이야기 하다 보면 잘못 생각한 것으로 합의점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건데 우리는 온라인 여론이라는 거는 어느 때나 막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다음은 없고 이러니까


제가 방송 전에도 ‘좀 오늘 괜찮으시겠어요’라고 했는데 진자 많이 배워가는 입장이라고 말씀을 하셔가지고 오늘 소탈하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 보니까 경제가 좀 안좋고 20대 지지율 남자의 지지율이 이제 좀 떨어지는 이유가 경제가 안 좋고 취업이 좀 안되어서다라고 말씀을 하신 것 같아요.


뭐 그런 취지가 있었죠.


그런데 왜 유독 남성 지지율만 폭락을 했느냐 이게 지금 문제기 때문에 경제 안 좋은건 똑같고 여성이 특별히 더 취업이 더 잘 되거나 더 안 되거나 이런 지표는 없잖아요. 왜 남자만 떨어지느냐.


너무 뭉뚱그려서 말씀을 하셨다?


왜 그러면 남자만 떨어져 이게 이상한거죠.


거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이 바뀌신 겁니까 아니면?


제가 고르는 주제는 제가 잘 알아서 이야기를 하는건데, 그 주에는 이제 이 이슈를 하자고 해서 사실 제가 준비가 덜됐던 탓이 좀 크고요. 그리고 최근에 벌어지고 있었던 여성 관련한 젠더 관련한 이슈들에 대해서 제가 관심있게 지켜보던 상태가 아니었고, 그리고 문제가 생기고 나서 여러 가지들을 살펴보고 내용도 보고 커뮤니티도 들어가서 내용들을 확인해보고 이러면서 저도 제 위의 세대 소위 386이라고 불리는 50대들에 대해서 현실인실과 동떨어져 있고 너무 옛날 얘기들을 하는거 아니냐.(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날 비판의 지점도 그러한 386들이 20대 남자들의 문제를 제대로 알고 경제문제도 이런 걸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20대의 정치참여가 필요하고 20대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조직들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런 얘기를 했던 저도 마찬가지로 전혀 20대의 정서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커뮤니티를 예전엔 많이 들어가서 보고 제가 실제로 클리앙 같은 경우는 초기 멤버들은 아실텐데 제가 싸이월드 시절부터 클리앙 멤버였거든요. 올해 들어서는 좀 발길이 뜸했던거 같아요. 특히 이재명 지사 이런 다른 문제들에서 너무 감정소모가 심해서 이제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최근에 벌어졌던 여러 흐름들에 대해서 놓치고 잘 모르는데 막 얘기를 한 케이스였어서 반성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저는 궁금한게 말씀하신 것 중에 하나하나 조목조목 이야기를 나눠봐도 될까요. 곤란하실 수도 있는데. 괜찮으십니까? 그럼 하겠습니다.
아니 문재인 정부의 친여성정책에 실체가 없다. 약간 그냥 범죄를 당하는 여성들에 대해서 보호를 해주는 취지만 있을 뿐, 친여성정책은 없다고 말씀을 이제 방송 중에 하셨어요.
(위에 링크된 2018.12.19. 답정너 영상의 4분 40초부터 발언)


페미니즘을 표방한 정부라던지 페미니즘과 관련해서 뭔가 대단한 정책들을 추진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라는 취지로 얘기를 했는데 그것도 제가 모르고 막 던진 얘기들이 화살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거죠.


근데 짧은 시간 안에 얘기하려다 보면 디테일한 얘기는 하기 쉽지 않죠. 저희도 사실 방송이 되게 기니까 그런 애기를 할 수 있었던 건데 전에
전에 탁현민은 죄가 없다 편에서 이 정부 들어서서 펴고 있는 친여성정책들에 대해서 얘기를 좀 했었어요. 그래서 이게 실체가 없는 분노냐라고 하면 그렇지 않다. 저희가 계속 얘기했던 거는 그 이슈가 관심이 되면 사람들은 그 이슈에 대해서 정부의 정책을 또 계속 찾아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큰 덩어리로 알고 있는 것과 디테일하게 들어가는 거가 달라요. 그런데 그 정보력이란게 보통 매체에서 접하는 거와 커뮤니티에서 접하는게 다르잖아요. 그런데 지금 젊은 세대들은 커뮤니티에서 훨씬 많은 정보를 접한단 말이죠. 사실관계 확인을 들어가면 약간의 오차는 있을 수 있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이 정부가 친여성정책을 펴고 있다고 봐요. 그래서 그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죠.

(자막 내용 - 이후에도 이 자막 내용을 바탕으로 방송 이어짐)

문재인 정부의 친여성정책 과연 실체가 없는 것일까?
  1. 병역 : 6월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헌법불합치로 대체복무제 도입. 11월 대법원의 첫 무죄 판결.
  2. 여성공동징병제에 대한 청원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 젠더 이슈에 대한 차별적인 대응, 온도차이.
  3. 난민 이슈는 일자리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20대 남녀 모두에서 난민에게 배타적이었음.
  4. 혜화역 시위에 대해 드러난 남성혐오, 경찰혐오, 정치혐오, 패륜적인 구호, 2차 가해 등을 광범위하게 인지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이에 대해 무조건 수용하고 이들을 공식 대화상대로 인정함. 행안부 발주 보고서. 7개 부처 공무원들과 여가부, 행안부, 경찰청의 수장들과 만남.
  5. 법무부와 대검찰청 내부 지침으로 성폭력 범죄에서 무고수사 금지 지침 적용.
  6. 몰카범죄 엄단 : 50억을 들여 공중화장실 몰카 탐지기 설치. 적발은 아직 없음.
  7. 음란물 유통 온상이라고 지목된 웹하드 업체 압수수색 실시. 2018년 9월. 엄단 공표.
  8. 성범죄자 벌금 100만원 이상만 받아도 공무원 퇴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 통과. 성범죄자 불관용 엄단 공표
  9. 수사만 개시해도 직장에 통보하는 등 철저하게 대응하라는 대통령의 발언
  10. 여성폭력기본법 여당 발의, 여당 주도로 통과.
  11. 여가부 장관의 발언과 정책 : 여성혐오 표현물 규제하겠다.
  12. 페미니즘 교육 청원에 답하며 바로 12억원을 배정해서 인권교육 실시하겠다.
  13. 미투지지조치 : 찾아가는 성폭력상담지원 17억 정도 예산 배정. 상담인원 136명 증원.
  14. 민간건물 452개에 남녀화장실 분리비용 지원 : 강남역 살인사건
  15. 여가부 산하 디지털성범죄피해 종합서비스 개설
  16. 여가부 미니 부처에서 1조원 이상의 예산을 쓰는 부처로 확대. 성범죄 관련 예산 증원.
  17. 여성안심귀가, 임산부석 배려, 여성인력 증원 등의 조치
  18. 여성가족부 장관, 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국가인권위원장, 표창원 의원, 박주민 의원 등의 발언들,. 그리고 메갈리아, 워마드, 페미니즘에 대해 일방적인 옹호 발언을 하는 정부 관료들과 진보매체들, 진보정당, 진보적인 운동단체들.
  19. 이수역 사건에서 신지예, 윤김지영, 한겨레 사설, 나임윤경 원장 등의 발언. 19명이 40일 동안, 국과수까지 동원. 행정력 낭비에 공권력 우롱.
  20. 취업시장에서 이공계 여성우대, 이공계 여성취업 우대, 여성임원 확대, 여성임원 많은 기업에 공적연금 집중투자하겠다는 여가부.
  21. 여성채용을 할당으로 늘리는데 여성은 내근직이나 안전한 업무, 남자는 고된 업무.
  22. 친정부 성향, 진보 인사들의 20대 남성에 대한 오진 발언.

(자막 끝)

 병역이라는 근원적인 불공정함 해소 안됐다 


크게는 저는 일단 본질적인 문제죠 병역. 20대 남성에게 병역문제가 젠더이슈하고 분리해서 볼 수가 없죠. 그런데 이 정부 들어서 뭐 사병인권 향상이나 뭐 임금인상 군대 내 여러 가지 그동안 잘못했던 정책들을 개선한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있어요. 그걸 부정하는건 아닌데, 병역에서 본질적인 것은 끌려가야 한다는 거죠. 애초부터. 강제성이 있는데 그것이 남성에게만 해당 하니까 이 20대 남성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근원적인 불공정함, 이게 해소가 좀 안되는거죠.


저도 26살에 입대해서 20살, 21살 애들에게 맞아가면서 26개월 군생활을 했는데, 그 2년, 제가 제대를 하고 나서 그전에는 뭔가 화가 날 때 물건을 부수거나 이래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제가 말년 병장때 가기로 되어 있는 휴가를 안보내주는 것에 분노해서 내무반을 돌아서 쓰레기통을 발로 차서 부셔버린 적이 있거든요.
이제 내면의 폭력성이 드러나게 됐고 2년 2개월동안 정말 배운 거라고는 화내는 거밖에 없었다라는 정말 어마어마한 상실감. 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군대를 늦은 나이에 가서 그러기도 했지만, 그 나이에 가서도 이렇게 괴로운데 이것을 20대 초반에 가서 남자들끼리 뭐 50명 100명씩 묶어놓고 사고 안나길 바라는거 자체가 말이 안되는 거니까.


군대는 딱 두 단어만 되잖아요. 인내와 분노. 이 두 단어가 계속 반복이 되는 그런 곳이죠.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해서 남성들이 가진 분노나 억울함이 있는데 박주민 의원 같은 경우에 국방의 의무는 여성도 하고 있다 이 시기에 불을 지르는 발언을 하셔서, 병역과 국방이 다르잖아요.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 청와대 청원에서 처음 굉장히 핫했던 남녀공동징병제를 하자라는 것에 대해서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허허 웃었다라고 해서 지금까지 그게 회자가 되고 있어요. 그냥 우습게 취급했다는 거죠.
그게 기본적으로 깔려있는데 이 정부 들어서 컸던게 남성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표면적으로 드러난게 10월인가 9월인가 그랬는데. 그때 이제 분석했던 근거가 6월 달에 헌법재판소에서 병역법에 대해서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리면서 대체복무제 도입을 하라고 판결이 내렸고, 11월 1일일거에요, 대법원에서 최초로 처음으로 양심적인 병역거부자들에게 무죄 판결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게 ‘사법부가 한 일을 왜 행정부에 분노하느냐’라고 말하기도 해요. 그런데 이 정권 들어서서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의 재판관들의 구성이 바뀌었단 말이죠. 그거는 사실 정치적인 거죠. 어떤 정권이든. 이 정부의 기조와 맞는 재판관들로 다수를 구성했고 그러면서 이런 판결이 나오니까 이게 사법부랑 행정부랑 정교하게 분리해서 비판할 수 없는 문제가 된거죠.
어쨌든 그리고 이 정부도 대체복무제나 이런 것에 찬성을 하고 있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이런 여당 의원의 발언, 이 정부 정책, 그리고 대통령의 어떤 행동이나 발언이 되게 총체적으로 이 남성들에게는 근원적인 불공정함에 대해서 관심이 없구나 이 정부는, 라는 분노를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어요.


남자들은 그렇게 느낄 수도 있죠.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 뭐 말씀 드렸던대로 특히 문재인 정부의 탄생을 놓고 보면 공정이란 키워드가 제가 보기엔 가장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어느 일에서도 다 공정하게 하겠다라는 것이었고 그것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이었고 그래서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돌아서서 지지를 하게 됐던 건데 그런 점에서 보면 병역이 대표적인 불공정의 사례인 거고,
그 불공정으로부터 파생되는 여러 가지 분노들에 대해서 정치권이 예민하게 그 목소리를 듣고 반응을 했어야 되는건데 저도 그러지 못했던 거고,
저도 이제 40대 중반이 되니까 ‘내가 옛날에 민주화운동 할 때 말이야’, 뭐 이런 식의 그 우리 고모부가 저한테 625전쟁을 풀던 그 서사를 제가 답습하고 반복을 하고 있더라고요.


친여성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군대 이야기는 여기서 정리하도록 하고, 계속해서 친여성정책의 실체를 좀 제가 설명을 해드리도록 할께요.
그리고 또 혜화역 시위에서 많이 느낄 수 있었죠. 남성혐오, 경찰혐오, 정치혐오, 패륜적인 구호, 2차 가해 등을 광범위하게 인지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이에 대해서 무조건 수용하고 이들을 공식 대화상대로 인정을 했어요.
그리고 행안부 발주 보고서, 7개 부처 공무원들과 여가부, 행안부, 경찰청의 수장들과 만남까지도 있었던 일이죠. 사실 이건 남자들이 만약에 시위를 한다 치면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대화가 무슨 말이예요. 오히려 손가락질 하죠. 저저저 남자들 저거 추하게 뭐하는 짓이냐. 창피하게. 그리고 여성혐오자들로 몰아갈 것이고.
단체 안에서도 조롱하는 영상이 또 올라왔는데 그것도 법적인 제재를 받은 적도 없고 이런 시절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집중적으로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혜화역 시위 측이) 과대표 됐다고 생각을 하고, 그 당시에 흐름이라는 것이 있고 이거는 같은 얘긴건데,
저희를 포함해서 저희 윗세대 쪽에서는 여성들의 분노도 이해 못하고 있는 거였던 거예요. 그런데 그게 현실적으로 드러나니까 갑자기 급한 마음에 이걸 어떻게든 해결해야 된다고 달려갔다고 생각하고요. 이것을 뭐 이선옥 작가님처럼 이 문제에 대해서 오랜 기간동안 꾸준하게 들여다본 사람들은 여기까지가 수위가 되지만 이 이상 넘어가면 대응을 해줄 가치가 없다는 판단들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정부가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기준이 없었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자기들이 전혀 모르던 목소리가 너무 크게 나오니까. 강남역도 그렇고 혜화역도 그렇고 너무 크게 나오니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집단의 크기에 비해서 과대하게 대응하게 된 측면이 있다고 봐요.
그런데 이거는 제가 지금 저지르고 있는 잘못과 똑같은 건데, 결국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저는 봅니다. 이런 문제는 좀 긴 기간 장기간동안 문제를 보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놔야 하는데, 목소리가 커지니까 가서 목소리를 덮으려고 하면서, ‘야 그러면 관련된 정책이 뭐가 있어? 정책좀 가져와봐’ 공무원들이야 쭉쭉 뽑아서 올리니까.


그 시위의 어쨌든 효과로 몰카 범죄 엄단하겠다라고 해서 지난 회에도 얘기했지만 50억을 들여서 공중화장실 몰카탐지기 다 수색했지만 적발은 안됐죠. 몰카 의심 구멍 이런거 적발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었는데 그거랑,
음란물의 유통의 산실이라는 웹하드 압수수색도 했고 성범죄자는 벌금 100만원 이상만 받아도 공무원에서 퇴출되고 국가공무원법 개정안도 통과했어요. 그래서 성범죄자에게 불관용 하겠다고 엄단하겠다고 공표를 하셨고,
문재인 대통령이 중요한 발언도 하셨죠. 성범죄에 한해서는 수사만 개시해도 직장에 즉각 통보해서 불이익한 처우를 해야 한다.이런 발언도 하셨고 그래서 지금 여성폭력기본법도 본회의 통과가 됐고요.
지금 보면 그 시위로 인해서 일련의 정책들이나 반응들을 여권이 다 내놨단 말이죠. 그런데 이런 것이 실체가 없다라고 하거나, 남성들 지지율 떨어진 것에 대해서 좀 전에 말씀 하셨지만 그 시위에서 화들짝 놀라서 이렇게 대응을 하셨는데 남성들의 지지율이 이제 이렇게까지 떨어지니까 화들짝 놀라서 뭔가를 했느냐 그게 아니라 ‘아니, 너네가 잘 모르고 있어.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라고 하거나 무시하거나 뭐 심지어는 비웃는 반응까지 보이니까 이게 지금 과연 여성들의 분노의 여론에 대응하는 것과 공정한 같은 태도를 보이는가.


그러니까 사실 이분들이 적당한 정책을 원하시겠죠. 사실 반발이 일어나는 이유에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과 공감하지 못한다는 거거든요. 기계적으로 법적인 항목을 뽑아내고 행정적으로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와 공감해주지 못하는데 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는 거죠.


그런 점에서 전적으로 동의하고 그런 여론들을 살피는게 사실 정치권의 일인건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방기한 죄가 있는거죠.


그래서 최근에 바른미래당 지지율이 2.6%인가 올랐어요. 그동안 계속 거의 변화가 없다가 가장 최근에 한 조사에서 바른미래당 지지율이 2.6% 약진, 최근에 없던 변화인데 이것이 젠더이슈 때문이다. 왜냐면 이준석 최고위원도 그렇고, 하태경 의원도 워마드 처벌해야 한다 이런 발언을 세게 하셨거든요. 20대 남성들은 지금 자기 의견에 반응할 정치세력을 찾고 있는 거예요. 그것이 바른미래당에서 이준석이든 하태경이든 거기에 대응하는 반응을 보여주니까 거기로 가는거예요. 그것이 단순한 개인에 대한 호오로 움직이는게 아니라는 거죠.
지금 민주당이 분명히 그 여론을 분명히 못 받아안고 있다는 거 저는 확실하다고 보고 어떤 정치 세력이든 그런 정도의 반응만 해줘도 지지할 의사가 있다라고 얘기하는 거죠. 표가 움직이는 것을 봐야되는데 이것을 그거 아닐거다라고 분석하는게 아직도...

 기성세대 남성 기득권부터 내려놓으시죠 



20대 남자들이 그래요. 우리 할머니 세대나 어머니 세대까지는 그런게 있을 수 있죠. 여성분들이 좀 불합리한 일을 많이 겪는 일도 많잖아요. 사실 20대 남자 학생들이 제가 봤을 땐 그렇습니다. 손해를 보면 손해를 봤지 그들 때문에 그들에게 불합리한 뭐 이런 상황이 우리가 피해를 주고 이런거는 없거든. 피해를 보면 봤지.
그러니까 성평등이 거의 이뤄진, 많이 이뤄진 세대라고 느끼고 있는데 정작 정책들은 본인들과 거의 반대되는 쪽으로 가고 우리 이야기도 들어주지도 않고 이렇다고 해서 커뮤니티나 이런 곳에서 항변하는 목소리들이 커지지 않았나.


저는 ‘바른미래당이나 자유한국당이 올바른 정당이냐’라고 민주당 지지자들이 ‘그래서 너네 뭐 자유한국당 찍을거야?’ 이런 식의 발언을 정말 하시면 안된다고 봐요. 그런 발언이 커뮤니티 같은데 보면 ‘니네가 20대 이슈로 들어와서 이 정권에 반대하는 분탕러들이다’ 이런 식으로 그런 의견에 대해서 묵살하거나 뭐라고 하는 의견들을 저는 보는데, 그럴 수도 있죠. 커뮤니티라는게 자기들 유리한 여론을 만들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우는 장이잖아요. 자유한국당 지지세력이 들어올 수도 있죠. 그런데 과연 그것만으로 이 광범위한 여론이 움직일 수 있다라고 하면 정말 똑똑한 세력인 거고, 저는 그정도 유능하면 정권 잡을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그게 이정도로 움직일 만큼 사소한 거냐 저는 아니라는 거죠. 그거를 읽으셔야 되는데..
그냥 정치공학적으로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실제로 우리 사회에 중요한 한 구성원들이 어떤 특정한 세대에서 저는 30대도 심각하다고 봐요. 20대 뿐만 아니라. 30대 남성들의 불만도 그들도 마찬가지로 취업해서 직장에 들어갔는데 지금 정부는 여성임원, 여성승진, 이런 거를 기계적인 비율을 계속 결과의 평등만을 중요시 하거든요. 그게 성격차지수 이런데서 한국의 순위를 올리려는 거예요.
그러면 저는 지금 여가부 장관께서는 단기 장관임을 스스로 출마를 얘기하셨기 때문에 단기간에 뭔가 업적을 내셔야 하는 정치인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결과적인 평등에 집착하실 수 있죠. 있는데 그것이 과정의 평등이 되게 중요한데, 그것에서 사람들은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이 결과의 평등에 승복하는데, 승복할 수 없는 방법을 쓴다는 거죠.
그리고 그거에 대해서 항의를 반동적인 움직임, 혹은 이것을 반동이라고 묵살한다는 거예요. 성평등 사회로 가는 것에 대한 반동이다라고 묵살해 버린다는 거예요. 이것이 지금 586세대가 가진 기본적인 정서예요. 지금 우리 여성은 약자야. 사회적 약자니까 이들을 평등하게 끌어 올리는 것이 우리 사회의 진보와 인권의 방향이야. 그런데 니네가 아직 그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라고 계속 얘기하는 거예요.
저희가 그 12회 때 문재인에 분노한 남자들편에서 제가 사다리 걷어차지 말라고, 당신들이 불평등한 시대에 살아서 여성들에게 그런 특혜를 입었으면, 그 여성들에게 갚으라고, 재산도 주고. 그렇게 말씀하시는(친여성정책 옹호하시는) 지식인들, 교수님들 이런 분들 저는 자기 자리, 그 시대에 못 배워서 똑똑하고 재능 있는데 못 배워서 한많은 여성들 있잖아요. 늦게 만학열 불태우는 분들, 그런 분들에게 자기 자리 주시라는 거예요.
저는 그랬으면 좋겠어요. 한명도 그런 사람 못봤어요. 자기 가진 것 내놓으면서 그 여성들에게 갚는 사람을 못봤는데, 그분들 오히려 나서서 지금 20대 남성,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고 혜택받은 것도 없는 남성들에게 왜 그 대속을 시킵니까. 그것에 대해서 전혀 돌아볼 줄을 몰라요. 계속 꼰대질이나 하고. 오늘 좀 약간 흥분했어요 하하.

(다음 편에 계속)





눈으로 듣는 유튜브 - 우먼스플레인 14화 - 여자도 반대하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 3부 눈으로 듣는 유튜브



‘우먼스플레인’은 젠더 이슈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방송입니다. 시사평론가 김용민씨의 유튜브 채널에서 전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전문 속기사가 아니기 때문에 발언 내용을 100%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중간중간 발언자의 말이 꼬였다고 느끼거나 할 경우에는 임의로 말이 되는 문장으로 수정한 경우도 있습니다만, 가능하면 100% 그대로 반영하려 노력했습니다. 괄호 안의 설명은 제가 임의로 넣은 설명이며 발언자가 말한 내용이 아닙니다.

눈으로 듣는 유튜브 - 우먼스플레인 14화 - 여자도 반대하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 1부
눈으로 듣는 유튜브 - 우먼스플레인 14화 - 여자도 반대하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 2부

**출연자 소개**
이선옥 작가(이), 황현희 개그맨(황), 김용민 시사평론가(김)
방송 일자 : 2018년 12월 19일

43분 44초 ~ 끝까지


명확성 원칙 위반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의 문제적 특성이라고 제가 제목을 붙였고, 첫 번째는 기존의 기본법 개념을 협소화했다. 그리고 기본법의 이상과 지향과는 좀 맞지 않은, 네거티브하고 협소한 개념을 기본법의 지위로 격상을 시켰다는 특성이 하나 있고요.
두 번째는 기본권을 훼손하는 위헌요소가 있다. 그건 뭐냐면 헌법 11조 1항과 2항이 평등권이고 특수계급을 만들지 않는다는 조항인데요, 이것이 권리의 단위를 개인으로 명시하면서도 여성이라는 특수한 범주의 집단을 특정함으로써 특수계급을 만들지 않는다는 헌법조항을 저는 위반한다고 봐요.


내가 봤을 때 헌법재판소 가면 위헌 받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데?


그거는 모릅니다. 왜냐면 지금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구성이 뭐 어느 정권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이것이 진일보한 인권의 관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형법과 특별법 등에서 이미 규율하고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더욱 특별한 범죄로 격상시켜서 여성 일반을 특수한 권리의 소유자로 격상시킨 법안이기 때문에 저는 헌법 11조 1항, 2항을 위반하고 있다고 보고요. 두 번째는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동등한 법률적 지위 보장에 대한 평등권을 위반하고 있다. 그것도 말씀을 드렸고.
세 번째는 명확성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명확성이란 것은 말씀대로 이런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 때는 국가는 법규범의 내용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될 의무를 집니다. 이게 뭐냐면 특히 형사적 처벌이 가능한 법조항에서는 이 법들은 지금 다 형사처벌 조항인 개별 법률들과 다 연관되어 있거든요. 그러면 그 규범의 의미 내용에서 무엇이 금지되는지, 그것을 무엇이 허용되는 행위인지 이것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공표를 해야 됩니다. 그것이 국가의 의무예요. 그리고 국가 기관이 이걸 설명할 의무를 지닙니다. 이것이 죄형법정주의의 기본 원칙이죠. 왜냐면 사회 구성원들이 이 법이 정확히 뭘 금지하는지, 뭘 허용하는지 알 수 없다면 국가가 그냥 자의적인 법 집행 기관이 자의적으로 이걸 해석해서 국민들에 대해서 부당한 권리침해를 할 수가 있고, 자의적 집행을 가능하게 하고 법집행 당국에 무한 권한을 위임하는게 되어서 이 명확성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는데, 중요하게 명확성의 원칙 위반 중에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별에 기반한 폭력’이란 모호한 개념입니다. 이것이 가장 이 법의 논의과정에서도 문제였어요. 이게 도대체 뭐냐는거죠. 젠더폭력이라는 규정을 대체할 용어가 없으니까 그냥 이걸로 해 달라고 계속 표창원 의원이나 여가부는 계속 읍소를 했습니다. 젠더폭력이 더 정확한 뜻인데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아직 국민들이 젠더폭력이란 용어는 낯설어서 무슨 뜻인지 모르니까 그냥 여성폭력 그리고 성별에 기반한 폭력으로 용인해달라라고 하니까 이 의원들도 그 개념을 내게 설명해 봐라 이거였어요. 근데 이 개념이 설명이 안되는 거예요. 이분들은 그게 이제 젠더라는 개념은 사회적 문화적으로 강요되고 규정된 성이라서 생물학적인 성별과 다르다. 그런데 그런 성별로 인한 폭력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이제 좀 더 한 차원 높은 인권과... 잘 모르시겠죠 (웃음)
그래서 법안소위에서도 이게 계속 제기가 됐어요. 성별에 기반한 폭력이라는게 도대체 뭐냐. 그게 있고요. 근데 표창원 의원이 가장 앞장서서 이 법을 통과시키는데 공헌을 하셨는데요, 여성들의 숙원사업이니까 그냥 넘어가 주십사.


에이, 설마 그런 식으로 했겠어요?


그랬습니다. 여러 차례 그렇게 발언 하셨어요.


이 표창원 의원이 회의 중에 이거 남성 중심의 커뮤니티에서 난리가 날 일이다. 그런 말을 또 했었다고 하더라고요.


여러 차례 하셨어요.
그다음에 명확성의 원칙을 위반한 두 번째는 혐오범죄나 2차 피해 등에 대한 법률적 정의가 없이 이거를 처벌할 수 있도록 개별법과 연관을 시켜놨다는 거죠. 혐오라는 개념 아까 말씀 드렸고, 2차 피해라는 개념도 개념 정의가 없습니다. 개념 정의가 없는 채로 수사, 재판 과정에서 겪는 사후 피해, 따돌림, 불이익 조치 이런 것들을 2차 피해라고 했는데 이거는 지금 개별법들에서 불이익한 처우를 금지하는 법조항들이 다 있습니다. 이 법에서 규정하는 2차 피해가 뭔지에 대한 법적인 개념정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돼요.
그러면 여기에서 중요하게는 저는 수사 재판 과정에서 겪는 사후피해라고 모호하게 말씀 하셨는데, 무고죄 적용유예지침이 지금 적용되고 있잖아요 이미. 남성 피해자들이 무고 수사를 요청할 때, 그것을 이미 금지하고 있단 말이죠. 대검찰청 지침으로

(주석 : 성폭력 피해 호소인이 가해 지목인으로부터 무고 혐의로 고소되는 경우 성폭력 사건의 수사가 종료될 때까지 무고 사건 수사를 중단하는 내용)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무고에 대한 수사는 하지 않는다?

( 사진출처 : 표창원 의원 홈페이지)


그건 한 회차로 다뤘으니까 한번 보시고요.
일반적으로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는 어떤 피의자나 피고인일 수도 있고 피해자일 수도 있습니다. 피의자나 피고인이 되는 신분으로써 겪는 절차상의 여러 상황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 필요한 절차들 이예요.
그런데 이런 2차 피해 개념을 이렇게 모호하게 집어 넣으면 그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다른 범죄와 똑같이 그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위해서 밟고 있는 조치들을 2차 피해로 그냥 규정해서


싸잡힐 수 있단 얘기잖아요


예. 다른 피의자라면 혹은 피고인이라면 그 해당 상대방에 대해서 동등한 재판과 수사를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한쪽 일방에 대해서만 이것을 보장하는 이것을 2차 피해라고 규정 되면서, 되게 모호한 개념을 설명 없이 넣어 놨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런 절차들을 이제 배제하면서도 우리가 무고죄에서도 얘기 했듯이 배제하면서도 이것이 위헌적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없는 상태고 가게 되요 사회가. 수사 기관이든 재판 기관이든. 이런 인식 자체가 흐려져서 우리가 기본권이나 헌법에 대해서 명확하게 일관되게 지켜야 할 원칙에 대한 경각심을 흐리게 만듭니다.


기본권이나 헌법 위에 있는 건 없지 않아요? 근데 이게 잘못하면 한쪽의 기본권을 완전히 침해해 버릴 수 있다고 지금 지적을 해주시는 거고.


그런 우려가 이미 농후하고, 이런 2차 피해 개념을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뭉뚱그려서 수사 재판에 그걸 이 법에 근거해서 요구할 수 있는거죠. 이것은 2차 피해에 해당하니까 여성에게 적용하지 말라고 하면 이 법에 근거하면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매우 많은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어요.
제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좀 전에도 강조했듯이 이런 절차들이 이런 법률로 그냥 두루뭉술하게 명확한 법적 개념이 없이, 개념 정의가 없이 시행될 경우에 이것이 위헌이면서도 이것을 감지하는 감각을 사회적으로 후퇴시킨다는 거예요. 그 더듬이가 살아 있지 않으면 이 사회가 그런 헌법이 사회 최고 규범으로써 존재하는 기반이 무너지게 되는 거죠. 제가 위험하게 생각하는건 바로 그거고요.
세 번째는 근본적인 물음이 없는 포퓰리즘적 법안이라는 거예요. 표창원 의원의 발언에서 단적으로 드러나죠. 그런 문제점 충분히 이해하고, 뭐 제가 다 알지만 여성들이 얼마나 갈급하고 있습니까. 통과시켜 주십시오. 갈급하고 있으니까. 여성들의 이런 처절한 목소리를 우리가 이제 국회와 정부가 응답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계속 읍소하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가부가 이 법은 개별법이 모호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여성폭력 피해로 포괄해서 조치하는 법이라고 했는데, 여성폭력이 이 법안에 따라서도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지속적 괴롭힘 행위,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폭력으로 규정했습니다. 이거 다 현행법에서 처벌과 보호가 가능합니다. 그게 좀 미진하다면, 그걸 보완하면 되요. 새 조항을 만들거나, 개정을 해서 보완하면 되는데, 그게 아닌거죠.
여성폭력의 정확한 개념도 지금 여기에서 논의과정에서 말했듯이 여가부나 발의자가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고요, 폭력이라는 법적인 개념, 동의에 의하지 않은 신체 유형력 행사, 이게 폭력이예요. 법적 개념으로. 근데 여기에서는 신체 유형력 행사를 넘어서서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것. 그 다음에 친밀한 관계라는 것도 법적 개념이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친밀한 관계라고 하면 가족 연인 뭐 직장 동료 어디까지 포함된다고 생각했겠어요. 다 생각이 다르잖아요. 명확성의 원칙을 이것도 위배하고 있죠, 친밀한 관계라는 것은 완전히 새롭게 제시한 개념이예요. 이 법안에서.
그래서 개념을 확장하려는 포석입니다 이것은 명백하게.


작가님과 저정도 관계면 친밀한 관계입니까?


(웃음) 제가 주장하면 친밀한 관계가 되죠.


아.. 여성이 그것을 주장하면 친밀한 관계다?


우리가 주 1회 만나서 방송을 같이 하고 방송 전후로도 매우 친밀한 대화를 나눠 왔다라고 하면 되죠. 그럼 얼마나 안 친밀했는지를 입증하실 수 있겠습니까.


통화기록 같은건 하나도 없는데 하하하


얘기했다잖아요 제가


아, 여성이 얘기를 하면?


제가 방송 전후로 늘상 대화를 나눴고,


은밀한 눈빛을 보냈다? 이런 식으로


그렇지. 그렇게 할수 있죠 얼마든지.

여성만 스토킹 피해자인가


그리고 중요하게는 왜 이 범죄에 대해서는 다른 피해자에게 지원하지 않는 제도들이 필요한가. 이것도 설명하지 않는거죠. 그런 논의과정을 거친 일이 있는가. 다른 특수한 범죄나 강력범죄 피해자들에게는 왜 적용하지 않는 이런 지원제도를 강력한 지원과 보호 제도를 왜 이 법의 피해자들, 왜 여성폭력의 피해자인 여성에 대해서만 지원해야 되는가에 대한 설명이나 논의과정이 없죠. 그래서 제가 포퓰리즘적인 법안이라고 하는 거고요.
세 번째가 권리 단위를 개인으로 상정하지 않고 특정 성별 집단으로 규정한 이 법이 가진 구멍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라는 거죠. 다른 성별의 구성원을 권리의 대립항으로 상정되어 있는데 어떤 법도 이렇진 않습니다. 아까 말한 개별법들도 다 성별 명시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떤 피해든 성별 구분하지 않고 처벌이든 보호든 할 수 있는데, 이 법은 성별을 한정해서 명시함으로써 다른 법들과 다른 취급을 하는거죠.
그러면 이 부작용이나 불합리에 대해서 예측과 대안이 없습니다 이 법은. 처음 제기할 수 있는건 무죄 추정의 원칙. 그 다음에 말씀드렸듯이 데이트 폭력의 남성 피해자는? 가정폭력의 남성 피해자는? 그 다음에 남성이 남성을 강간하면? 아동학대가 성별에 기반한 범죄일까요?
여러분이 스토킹을 지금 남녀 사이에서 여성이 피해자인 범죄로 규정하는 자체가 저는 이상한게 아까 남성 연애인이 스토킹 당하듯이 스토킹은 정말 그냥 성별 불문하고 일어나는 범죄예요. 남성이 남성에게도 하고, 여성이 여성에게도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성별에 기반한 폭력으로 규정하는 자체가 저는 안 맞아요. 데이트 폭력도 성별에 기반한 폭력인가? 그것은 관계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이죠. 이런 불합리한 거나 설명할 수 없는 구멍들에 대해서 이 법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아요.
그 다음에 성매매 같은 경우에도 여성만을 피해자로 규정할 수 있는가, 지금 현행법은 성매매 특별법은 동의에 의한 성매매도 사회적 법익의 측면에서 둘 다를 범죄의 주체로 봅니다. 그런데 이 법에 의해서 만약에 여성만을 피해자로 본다면 현행법하고 명시적으로 어긋나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금지되어 있어요. 현행법과 명시적으로 어긋나는 다른 법률을 만들 수 없어요. 이것도 그런 개념을 도입하면서도 이에 대한 해명이나 조정이 없고요.
이 법 자체에서 이런 설명이 전혀 없습니다. 이 구멍 어떻게 메울 것인가. 이게 없어요. 당장 이렇게만 얘기해도 도대체 그러면 어쩌자는 거야. 아니, 스토킹이 여자한테만 일어나? 여자만 피해자야? 다른 남성 스토킹 피해자들은 형사처벌 받는데 여성 피해자는 그와 달리 특수한 보호와 강력한 지원을 받고 더 강력하게 처벌하라는거야? 안되잖아요. 이게 특수계급인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 법은 정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왜 기본법의 형태로 만들었는가. 아까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여성운동 세력이 원하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발들이기 전략이라고 봅니다. 문턱을 쉽게 넘기 위한. 개별 법안에서 뭔가를 관철할 때는 그게 이해4관계 당사자들이 갈등하기 때문에 힘들어요. 그런데 기본법은 하위법과 제도를 추진하고, 정책을 만드는 근거가 됩니다.


아니 이분들 안에 뭔가 세력이 있나요? 뭔가 판을 짜는? 잘 짜요 되게.


여성운동의 성과죠. 여성운동의 성과입니다.
설명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서 이 법안이 이제 통과가 됐잖아요. 그러면 이거는 힘이 있고 정치세력의 구조가 유리할 경우에 가능한 전략입니다. 그걸 이번에 십분 활용한 거고요, 만약에 노동 관련한 법안이라고 예를 들어 봅시다. 그러면 노동자에게 불리한 어떤 법이 발의가 되고, 그것이 논의가 진행된다, 그러면 노동계에서 당장 반발 하잖아요. 그것을 인지하고 견제할 수 있는 조직적인 세력이 있어요. 그러면 소위 심의 과정이던 법사위 과정이던 집회도 할 수 있고 의원들에게 압력도 행사해서 법조항이 통과되거나 개정하도록 압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법안의 특성은 견제 세력이 없어요. 조직적인 견제나 비판 세력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그냥 일사천리로 통과가 돼도 그것을 보통은 이게 정부입법, 저는 본질적으로 정부입법이라고 보는데 정부입법인 경우에는 야당 측에서 그러한 비판 여론이나 문제인식을 가지고 이 법을 조목조목 따져볼 수 있는데, 지금 이 법안에 대해서는 그럴만한 견제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 그래서 이것이 이렇게 통과될 수 있는 기반이 된 거죠.


자, 오늘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안될까요? 다음 주에 한분 또 나오십니다. 2탄도 하면서 여기에 대해서 법을 전공하신 분이 또 나오십니다.


누가 나옵니까?


한남충장 정영진씨라고, 미국의 로스쿨.


정총장님 나오십니까?


네 정충장님 나오십니다. 충장, 충장.


아, 충장입니까?


그래서 그 얘기, 마저 하시면서 아울러 또 우리 정충장의 인생간증도 듣고, 나는 왜 이렇게 충이 되었는가.


오늘 사실 설명을 햇던 거는 되게 개괄적으로 문제점들이었고, ㄱ9ㅐ별 법률조항은 사실 들어가지 못했어요. 개괄적으로 이야기할 것 중 하나 남은 것은 이 여성운동 관련한 영역에서 지성이라는 장, 지성인이 죽었다. 사회적 논의나 지성의 역할이 죽었다. 이 이야기를 타이틀로 말씀드리고 다음 시간에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안가져야 할 문제가 아니네요. 다들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문제네요


이거는 법안의 어떤 파급력, 파장, 이걸 떠나서 지금 젠더와 관련한 이슈가 그냥 댐이 무너졌습니다. 이제 밀실에서 어떻게 적당히 넘길 문제가 아니고, 공론의 장으로 나온 만큼 이것을 차별없이 소외없이 다같이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해야 되요. 그 사실 젠더갈등 이게 심각한 문젭니다. 이거 그냥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예요.


진짜 아무것도 안하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아무도 문제제기하지 않으면 당연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간다는게 좀 중요한 것 같아요.


지난 회차에서 저희가 성평등이나 성폭력 방지 매뉴얼 학교 교육 공공기관 등에서 실행하고 있는 매뉴얼에 대해서 좀 제보해 달라고 제가 이선옥닷컴 지메일 닷컴으로 띄워드렸는데요, 제보가 들어오고 있어요. 그런데 기업이나 공공기관 교육 매뉴얼이 있으면 제보해 주시고요, 저에 대해서 책이 있느냐 혹은 후원할 방법이 있느냐 이런 것도 많이 물어보시던데, 제가 운영하는 이선옥닷컴이라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거기 오시면 제가 쓴 글들 보실 수 있고요, 구독과 후원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으니까 필요하신 분은 이선옥닷컴에 들어오셔서 구독, 후원하시면 되고요.
이거 하느라고 글에 좀 소홀했는데요, 여성폭력방지 기본법에 대해서 제가 글을 하나 쓰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많이 관심 가져 주시고요, 저희 짧은 클립 화면 영상 계속 제작해서 보급하고 있잖아요. 짧게 만든 영상 등 참여하시는 각종 커뮤니티나 여러 곳에 많이 홍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래요. 여러분. 우리 인사를 드리도록 할까요


네. 우먼스플레인은 여기서 인사드리고, 다음주에 2탄으로 또 정영진씨를 모실 수 있으면 한번 모셔서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주도 라이브로 하는 방송 기대 많이 해주시고, 우먼스플레인 여기서 인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다음주에 역시 인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먼스 플레인이었습니다.

(우먼스플레인 14회 끝)

참고자료

이선옥 작가가 직접 올린 스페인 젠더폭력법 시행 8년 분석자료 번역본

이선옥 작가 이메일 주소 leesunok.com@gmail.com

국회 회의록 검색 페이지)에서 여성폭력방지 기본법 관련 표창원 의원 발언 검색해본 내용. 검색 페이지에서 발언자를 ‘표창원’으로 놓고 내용에서 검색하면 찾을 수 있는 내용들임.

2018년 9월 12일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

> “그런데 이게 실제로 법사위 가거나 사회의 반응은 여성폭력 이래 버리면 아마 일단의 남성커뮤니티에서 또 다시 논의를 제기할 우려가 있어서……”

2018년 12월 3일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

> 그래서 혹시라도 제명에 대한 수정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것으로라도 한번 논의를 해 보자는 것이지요. 만약 그것이 또 추가적으로 시간이 많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면, 정말 죄송하지만 ‘여성폭력’을 받아들여 주시는 그러한 방향 결정을……


눈으로 듣는 유튜브 - 우먼스플레인 14화 - 여자도 반대하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 2부 눈으로 듣는 유튜브



‘우먼스플레인’은 젠더 이슈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방송입니다. 시사평론가 김용민씨의 유튜브 채널에서 전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화에서 30분 정도의 분량을 올렸는데 스크롤 압박이 너무 쎈 것 같아서 1회당 15~20분 정도 분량으로 생각하고 올리겠습니다. 1시간 짜리면 대충 20분씩 3회차로 나눠질 듯 합니다.

전문 속기사가 아니기 때문에 발언 내용을 100%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중간중간 발언자의 말이 꼬였다고 느끼거나 할 경우에는 임의로 말이 되는 문장으로 수정한 경우도 있습니다만, 가능하면 100% 그대로 반영하려 노력했습니다. 괄호 안의 설명은 제가 임의로 넣은 설명이며 발언자가 말한 내용이 아닙니다.

눈으로 듣는 유튜브 - 우먼스플레인 14화 - 여자도 반대하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 1부 링크

**출연자 소개**
이선옥 작가(이), 황현희 개그맨(황), 김용민 시사평론가(김)
방송 일자 : 2018년 12월 19일

30분 46초~ 43분 44초

흉악범죄 피해자 89%가 여성? 통계의 착시


직장 상사가 있는데, 좋은 분들이 있어요. 좋은 분들 중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겠죠. 똑같이 갑질을 했어. 공평하게 갑질을 했어. 여성은 이걸 갖고 문제제기할 수 있는데 남성은 문제제기할 수 없고, 그렇습니까?


남성은 문제제기 할 순 있죠. 그렇지만 그 문제제기에서 처벌하는 과정이나 보호조치를 받는 과정이 여성과 좀 다를 확률이 높죠.


여성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지만 남성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맨 처음에 입법 취지, 제안 이유라고 배경을 가지고 좀 말씀을 드릴께요. 하나하나 좀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얘기할 주제는 여성폭력 방지 기본법의 3조까지 해당되는 얘기에요. 개별 법조항까지는 제가 들어가지도 못했어요. 법안을 보니까 문제가 굉장히 많은데 개별 법조항 하나하나까지 따니는 거는 아마 다음 시간에 하던지 하도록 하고요,
그 자유한국당은 그래서 어쨌든 젠더 이슈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습니다. 없는게 기본이고요. 우리가 보수정치세력이 여성운동과 만난다는 얘기를 했듯이, 어 그래 여자 보호 우리 동의해. 이거에요. 여자 보호한다면 해줄게. 여성표 받고 나쁠게 없다는거죠.
그래서 맨 처음에 제안이유 및 주요 이유를 보면 입법의 취지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제안 이유 및 주요 내용이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인한 여성폭력 살해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음’ 이렇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성에 대한 차별화 혐오가 어떤 것이냐는 거죠. 우리가 여성혐오에 대해서도 얘기한 적이 있었잖아요. 여성혐오는 되고 남성혐오는 안된다?


여성혐오는 있고 남성혐오는 없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꽤 많더라고요.


근데 여성혐오라는 개념이 우리는 아직까지 정립되지 않았어요. 여성들이 여성운동계가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여성혐오 개념이 있죠. 우리는 동의한 바 없습니다. 동의라는게 사회적인 논의 과정을 거친 적이 아직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여성혐오라는 개념을 막 얘기하기 시작했고, 차별금지법에서 그 혐오라는 개념을 어떻게 취급할 거냐 이걸 법적인 처벌조항으로 갈거야 이런 논의를 이제 막 시작한 단계에요. 우리 사회의 현 주소는. 그런데 여기에 선언적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인한 폭력과 살해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라고 해서 개념을 일단 혼용하고 있고요.
그다음에 ‘검찰청 자료에 의하면 성별이 확인된 강력 흉악범죄 피해자 중에 여성의 비율이 89%’라고 얘기합니다. 이건 맞습니다. 팩트인데 이 통계는 착시가 있습니다. 그 강력 흉악범죄가 살인, 강간, 상해 등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여성 비율이 89%라는 것은 대검찰청의 범죄분류에서 성범죄가 강력, 흉악범죄로 카테고리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성범죄에는 강간도 있지만 강간 강제추행이 다 들어가 있어요.
강제추행의 범위가 예전보다는 지금 인정 범위가 굉장히 넓어지는 추세예요. 사법부가 여성폭력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그래서 이 강력 흉악범죄라는 통계에 여성피해가 89%가 예를 들면 이 카테고리 안에서는 내가 기습적으로 어떤 남성이 여성을 껴안았어, 이것도 강제추행이예요. 이 껴안은 것과 살인이 동등한 강력 흉악범죄 카테고리에 다 묶여 있는 거예요.
거기에서 성범죄가 느니까 성범죄 피해는 90% 이상이 여성이니까 이 강력흉악범죄 피해대상자가 여성이 89%라는 통계가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이 통계 자체가 여성이 강력 흉악범죄의 일방적인 피해자로 노출되어 있다 이렇게 읽히잖아요. 그렇지 않다는 거죠. 왜냐하면 살인이나 폭행 살인미수 이런 것들은 남성 피해자 비율이 높아요. 그런 강력범죄 피해자는 남성 피해자율이 높고, 그리고 남성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성범죄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 이 통계의 착시효과를 주는 거죠.

(주석 : 여성폭력방지 기본법 제정이유에 나온 검찰청 2015년 자료는 2015년 검찰청 범죄분석으로 보임 해당 자료의 범죄통계표의 4번 ‘피해자 특성 및 피해결과’를 보면 성별 피해자 분류가 나와 있음. 흉악 강력범죄의 경우 총 3만4126건에서 성별이 확인된 것 중 남성 피해자는 3552명, 여성 피해자는 2만8920명으로, 여성이 89.06%임.
다만 범죄별로 살펴보면, 살인 피해자는 남 511명, 여 404명, 강도 피해자는 남 768명, 여 789명, 방화 피해자는 남 898명, 여 598명임. 성폭력 피해자는 남 1375명, 여 2만7129명으로 큰 차이를 보임.
반대로 폭력 강력범죄의 경우 총 피해자 23만3655명에서 성별이 확인된 피해자 중 남성이 13만3222명, 여성이 6만7935명으로 남성 피해자가 더 많았음. 대부분의 유형에서 남성 피해자가 더 많았고, 여성 피해자가 더 많은 범죄는 체포와 감금(722명 대 467명), 약취와 유인(12명 대 77명)이었음)


그러면 통계의 오류라고 볼 수가 있겠네요?


오류는 아니고, 통계는 사실 어떻게 분류하냐에 따라서 우리가 해석의 여지가 매우 넓은데,


카테고리를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서


예전에는 성범죄가 강력범죄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어느 시점부터 이거를 분류하면서 아까 단적으로 말했듯이 살인범과 뒤에서 강제추행 이런 신체적인 접촉을 했다는 이런 범죄가 똑같이 강력 흉악범죄로 묶인거죠.
그런 통계에 대한 착시, 그리고 ‘여성에 대한 각종 범죄로 여성의 51%가 일상생활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이런 통계 근거를 제시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잘 모르시는데요, 제가 전에 무고죄 적용에 관한 우리가 3회 때 다뤘었죠. 그때도 다뤘듯이 이 무고죄 예외적용을 원래 입법으로 처리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때 입법 발의하면서 그 제안 취지로 제시했던 여성가족부의 통계가 그 통계를 제가 들어가 보니까 그 입법 내용과 관련 없는 통계였어요. 그러니까 이게 우리가 예의주시해서 보지 않으면 사실 우리 국회 수준이 높지 않다는 거를 저는 늘상 확인 합니다.

(주석 : 여성의 51%가 일상생활에서 불안감을 느낀다는 통계자료가 구체적으로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제정이유에서 소개하지 않음.
최근 나온 자료 중 ‘51%’가 명시된 것은 2017년 2월 20일 인권위가 발표한 ‘혐오표현 실태와 규제방안 실태조사’가 있음. 보도자료를 보면 여성의 51%가 온라인 혐오표현으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고 답한 반면, 남성은 14.9%만이 불안을 느꼈다고 답함.
다만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정이유에서는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성희롱, 지속적인 괴롭힘 행위와 그 밖에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데이트폭력, 디지털폭력, 묻지마 폭력 등 여성에 대한 각종 범죄로 여성의 51%는 일상생활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음’이라 밝히고 있어서 인권위 자료가 과연 제정이유가 인용한 소스가 아닐 수도 있음.)


아니 나는 이 통계내서 자료 가져오시는 분들이 계시단 말이에요. 토론하거나 이야기 해보면. 근데 전부다 보면 자기 이야기에 유리한 설문조사 통계 여론조사만 뽑아오더라고요. OECD 몇위에 뭐 예?


저는 유리한 거만 뽑는 거는 이해할 수 있는데, 그때 당시에 그 입안자가 근거로 제시했던 통계는 그 주제와 맞지 않는 통계였어요. 다른 주제의 통계를 거기 가져다 넣으면서


그야말로 아전인수.

여성의 주체성을 사법부 판단에 종속시키는 법안


그래서 그 애기를 자세하게는 그때 못했는데 이번 통계는 통계문항을 어떻게 짰느냐에 따라서 이 통계는 다를 수 있죠. 51%가 어떤 유형의 안전에 대해서 위협을 느끼느냐는 통계 문항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그렇지만 여성이 최근 들어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범죄를 모든 매체에서 강력하게 높은 빈도로 다루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사회적인 공포가 여서들에게 확산될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고 보고, 이미 실제 이상의 폭력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저는 생각은 합니다.
그 다음에 보면 ‘그동안 국가는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해 가급적 개입하지 않았고,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왔다’ 이거는 뭉뚱그려 말하기죠. 국가가 어떻게 개입하지 않아 왔습니까. 개입해 왔죠. 개입해 왔고, 기존에 법률에서 보완하지 못했다고 얘기해서 성폭력이나 이런 것들을 특별법으로 제정해서 여성계의..


아니 개입하지 않았다는 워딩이 뭔소리예요? 법으로 다 제재를 했잖아요.


그동안 무관심해 왔다.


이런거 있죠. 이 말의 사례로 들 수 있는 것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부부싸움을 신고 했는데 경찰이 와서 ‘아이, 그냥 둘이 잘 화해 하세요’ 뭐 이런 거. 이런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심각하게 취급하지 않고 친밀한 관계에서는 특히 그렇게 취급해 왔다는 건데 그것이 예전에는 저는 그런 사항이 많았다고 봐요.
그런데 요즘은 아닙니다. 최근에 이것이 그런 항의와 비난이 계속 제기가 되니까 경찰들도 엄격하게 그거를 폭력신고가 들어오면 이런 조치보다는 이제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해요. 그런데 개입하지 않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왔다고 말하는 것은 뭉뚱그려 말하는 거죠. 뭉뚱그려 말해서 사실관계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 작전이죠. 어쨌든 이렇습니다.
그래서 이 법안 취지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게 여성과 남성을 포괄하느냐 마냐 이런 논란이 무의미할 정도로 입법 취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어요. 여성에 대한 폭력을 특수하게 취급해서 이것을 방지하고 강하게 처벌하고 보호조치를 확실하게 마련하겠다.


그러면 이게 예를 들어서 혹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남성이 여성을 폭력하는 범죄, 물론 처벌을 받아야죠. 나쁜 놈이고 미친 놈이고 쓰레기 같은 놈이죠 범죄를 저지르면 안되는데,


개같은 새끼지.


개같은 새끼죠 진짜. 근데 일부의 개같은 새끼 때문에 전체가 욕먹는 거잖아요. 어쨌든 그런 새끼가 여자가 남자를 때렸을 때 처벌과 다르게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위반 이런 식으로 죄를 더 붙이게 되는 겁니까 그러면?


지금 이 상태로는 그렇진 않다고 보고요 예를 들어 양형 조항은 개정의 여지가 많이 있습니다. 실제 다른 관련 법안들에서 양형조항을 바꾸려는 이른바 ‘미투법안’들이 여러 개 대기하고 있어요. 이것도 미투법안의 하나입니다.


이걸 만들기 위한 전초전이다, 밑밥 던지기다.


그래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더 특수하게 취급하면 인제 양형도 그것이 여성을 향한 이런 성별에 기반한 폭력일 때는 더 강력한 처벌조항을 만든다던지 현행, 지금도 여성들은 요구하고 있어요. 더 강력하게 처벌해라, 벌금형이던 것을 징역형으로 올리고, 지금 이런 일들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실 법이라고 하는 것이 약자 소수자, 취약한 사람, 공적 보호로부터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만들고..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보호를 해주는 역할이죠.


그런 맥락이 있는건데 여성을 약자로 설정해 놓고 여성에 대한 범죄는 가중처벌함으로써 여성을 보호하려는 그런 정부의 의지가 읽혀지는 부분이 있어요. 근데 그 부분에 대해서 이 작가님은 여성을 그렇게 약자로 만들어 버리면 인류의 반인 여성을 약자로 만들어 버리면 이거는 또다른 불필요한 차별을 만들 수 있다.


저는 사회적인 약자로서 여성을 보호하려는 조치에 반대하는게 아니예요. 제가 말씀드렸듯이 법적 약자와 사회적 약자에는 여성 뿐만 아니라 법적 약자로 그것을 규정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고요. 이렇게 되면 사회 구성원들에 대해서 특수한 계급이 만들어 지는 거예요.
저는 그래서 모두가 똑같이 적용받아야 할 기본권, 보호받아야 할 권리, 권리를 행사하고 피해를 입지 않을 권리에서 특수하게 보호받고 특수한 권리를 가지는 존재가 만들어지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그걸 정부는 하지 않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 법은 없어야 하지 않습니까.


생성되지 않아야 하죠. 위헌입니다. 우려되는 것은 이것이 과연 사회 구성원들의 조화로운 삶을 고무시키는가, 이것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이예요.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어떤 재난상황, 위기상황에서 여자와 아이들 노인들을 먼저 보호하는 이런 것들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통적으로 인식된 규범이잖아요. 문화적인 규범으로 존재하는데, 이런 법안이 만들어지고 정부가 특수한 계층을 만든다는 신호를 주면 그렇게 보호하는 것이 무의미하고, 심지어 내가 왜 그래야 돼 하면서 여성은 이미 약자로 취급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남성들에게 방금 말씀하신 대로 반감을 더 키우는 거죠. 그래서 여성을 오히려 약자의 지위에서 끌어 내리면서 조화로운, 그리고 상호 협력하고 연대하고 사랑을 나누고 이런 관계를 과연 이것이 고양시키는가 이것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이고요.
또 한가지는 여성 자신의 주체성을 과연 이것이 고무시키는가.


여성 쪽에 스스로 여쭤보고 싶어요. 어떻게 생각하시나.


이런 데이트 폭력이나 뭐 성희롱도 마찬가지고요, 관계에서 일어나는 어떤 유형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유형의 행위들 있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여성이 물리적인 폭력은 당연히 형사처벌 받도록 해야합니다. 그 조치를 하고 그 외에 다른 것들이죠.
아까 말했듯이 정서적인 혹은 불쾌감들. 뭔가 찝찝함. 무언가 물리적인 행위는 아니지만 내 기분이 나쁜데 이 상대방에게 계속해서 그걸 느껴, 그렇다고 할 때 여성들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있잖아요. 연인 관계면 헤어지면 됩니다. 헤어지면 되고, 헤어지기 싫으면 상대에게 교정을 요구 해야죠. 이것은 우리 관계의 상호작용에서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모든 그런 행동 영역에서 사법적인 판단에 기대고 사법적인 처벌의 영역으로 가져간다는 거예요.
여성의 주체성이 계속 사법적인 판단에 종속되는, 그래서 저는 이런 종류의 법안에 대해서는 저는 여성으로서 반대합니다. 여성을 굉장히 비주체적인 존재로 자꾸 만들어요.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고립되게 만드는,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도.
예전에 여성운동은 그런 여성의 주체성을 고무시키는 전략을 많이 취했는데, 지금의 여성운동은 그것이 상당히 퇴색될 뿐만 아니라 방향이 완전히 여성에 대한 과보호나 여성을 피해자로만 상정하고 모든 제도를 요구하거나 이런 법안까지 요구하는 거가 저는 이 방향이 여성을 위해서 좋은 가 이런 회의를 여성으로써 늘 갖습니다.
지금 한 시간 됐는데 아직 3분의 1도 못나갔어요. 오늘 좀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편에 계속)

눈으로 듣는 유튜브 - 우먼스플레인 14화 - 여자도 반대하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 1부 눈으로 듣는 유튜브



‘우먼스플레인’은 젠더 이슈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방송입니다. 시사평론가 김용민씨의 유튜브 채널에서 전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시작 ~ 30분 46초까지 다룹니다.

전문 속기사가 아니기 때문에 발언 내용을 100%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중간중간 발언자의 말이 꼬였다고 느끼거나 할 경우에는 임의로 말이 되는 문장으로 수정한 경우도 있습니다만, 가능하면 100% 그대로 반영하려 노력했습니다. 괄호 안의 설명은 제가 임의로 넣은 설명이며 발언자가 말한 내용이 아닙니다.

**출연자 소개**
이선옥 작가(이), 황현희 개그맨(황), 김용민 시사평론가(김)
방송 일자 : 2018년 12월 19일


대통령의 공약 : 젠더폭력방지 기본법



우먼스플레인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이선옥 작가님, 김용민씨 그리고 저는 황현희입니다.


황현희씨 너무너무 기쁜 일입니다. 우리 황현희씨가 이제 아주, 예쁜 아이를 얻으셨습니다.


제가 이틀동안 잠을 못잤어요. 그래서 헛소리를 할 수 있으니까 제재좀 부탁 드립니다. 지난주에 저희가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면서 보수정치가 이제 페미니즘과 손잡는 손잡는 이야기를 잠깐 했었는데 수정할 부분이 있다고요?


수정은 아니고요, 제가 잠시 본론 시작하기 전에 지난 회차에서 보수정치와 여성운동 세력이 손잡는게 뭐 특별한게 아니다 얘기를 하면서 미국 사례 애기를 하다가 설명이 충분치 않은 채로 넘어간 대목이 있어서 미국이 기독교 기반한 보수적인 분위기가 있는 국가잖아요. 그래서 성매매나 포르노 같은 영역에서 가족주의자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상당히 많습니다.
성매매나 포르노를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규정하는 여성 운동과 페미니스트들과 만나서 입법운동을 하기도 하고 반대 운동을 벌이기도 해서 그런 접점이 있다. 그 얘기를 충분히 하고 넘어갔어야 됐는데 못해서 그냥 약간 보완하는 얘기로, 예예.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좀 나눠볼까요


지금 난리가 났어요. 여성폭력방지 기본법. 이게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근데 이게 보니까 어 많은 남성들에게 알려지기로는 밤에 카톡을 여러 번 못보낸다, 그리고 집 앞에서 기다리면 잡혀간다. 뭐 이렇게 인식이 되어 있더라고요.


우리가 잘못 받아들이고 있는건 지 정확히 어떤 워딩인지 궁금해요.


여성에 대한 스토킹을 방지하는 건데 남성에 대한 스토킹에 대해서는 뭐 전혀 그걸 방지해주는 법이 아니에요.


남자는 스토킹이 아니다?


이번 법안에 대해서 그런 문제제기가 있는 게 당연한 게 보편적으로 일어날 수 있지만 그 한 어떤 구성원 집단에게 조금 더 빈도가 높게 발생하는, 그렇지만 본질적으로는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범죄를 이제 한 구성원들에게만 특별히 적용하는 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 문제가 되고 있죠.


근데 여성운동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이 남녀의 구분은 화장실과 목욕탕에서만 구분짓자 이거 아닙니까? 근데 왜 이 이법을 만들면서 남녀 구분을 지어요. 남성 스토킹 범죄에 대해서도 처벌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럼 여성 피해자 남성 피해자 모두 공히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면 그 법 취지도 좋고 서로에게 공평하게 다가가는 부분도 있고요.


페미니즘의 이념 자체가 기본적으로는 남녀평등 아닙니까.


우리가 몇 회차인지 가부장제 얘기한적 있었죠. 페미니스트들이 얘기하는 남녀 평등과 성평등의 개념이 우리가 보편적으로 얘기하는 성평등의 개념과 다르다. 그 기준은 가부장제라는 프리즘을 통과해야 가능하다는 얘기를 했었죠. 그 얘기를 깊게 하기는 오늘은 어렵고요. 오늘은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대해서 조금 조목조목 해부하면서 우려되는 점과 문제점 들을 낱낱이 얘기해 보도록 할께요. 이런 내용은 아마 저희 방송에서만 할겁니다.


대통령 공약 중에 젠더폭력 기본법 제정이 있었잖아요.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 공약집 280쪽에 '젠더폭력방지기본법(가칭) 제정 추진 및 국가행동계획 수립 )


원래 있었죠. 경과를 간단히 말씀을 드리면 원래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여성 공약으로 있었습니다. 젠더폭력 방지 기본법이라는 제정 공약이 있었고요. 그걸 사실상 지금 이제 구현한 법안이라고 보시면 되는데, 이게 의원입법의 형태로 발의는 됐지만, 실제로는 정부입법으로 보시는 게 맞습니다.
보통 의원입법과 정부입법의 차이가 의원입법은 10인 이상 의원만 서명해서 발의를 하면 입법 추진을 할 수 있고요, 그 정부 입법은 여러 가지 단계를 거쳐야 돼요. 일단 전문가나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경청하는 과정 공청회 같은 것을 거쳐야 하고, 그 다음에 총리실, 총리 산하의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 심사도 통과해야 하고, 법제처의 심의도 받아야 하고 차관회의도 열어야 하고, 법안 입법 공표도 해야하고 이런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행정부의 입법이 가능해요. 그런데 그것에 비교했을 때 의원입법은 그런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법안 심사할 때도 자유한국당의 이완영 의원이 이건 청부입법이다 이런 말을 했는데 그건 사실 양쪽 당이 비난할 수는 없어요. 왜냐면 자유한국당이 집권했을 때에도 정부가 이런 것들을 다 정부입법으로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같은 당에 의원들을 통해서 입법을 합니다. 그래서 그걸 뭐라고 하기보다는 의원입법 형태로 추진을 했고요.
올해 2018년 2월달에 더불어민주당에 비례대표, 여성의 전화 대표같은 경력을 가진 대표적인 여성운동가 출신의 비례대표 의원인 정춘숙 의원이 대표발의자로 해서 입안을 했고요. 그리고 이제 상임위 심사소위나 법사위를 거쳐서 이제 12월 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입법절차는 국회 통과하면 그다음에 대통령이 이제 그걸 법안으로서 법령공표를 해야돼요. 그 기간이 아마 15일 일겁니다. 그러면 지금은 이 법안 절차에서 남은 과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싸인, 그담에 공표, 6개월 후부터 시행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고, 그래서 어떤 여론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행사해라 이런 요구를 하고 있기도 하는데요 그 가능성은 저는 거의 업다고 봅니다. 어차피 공약사항이셨고, 이 문제에 대한 남성들의 분노나 문제제기에 대해서 여전히 저는 잘 못 읽고 있지 않은가,


이제 잘 못읽고 있다. 근데 그럴 수는 있어요. 이거 이거를(특정 조항을) 좀 뺄 수 있다. 빼야 한다. 대통령으로써 이렇게 권한이 있습니까.


그런 법조항에 대한 권한보다는 그런 이유로 이 법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죠. 거부권을 행사하면 다시 이제 어떤 절차를 밟던지 그걸 다시 해야 되는데,


그래서 이런 문제 제기를 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세부적인 내용으로 좀 들어가 볼가요


들어가기 전에 간식좀 먹고 할까요.

(광고타임 6:30~9:00)

여타 기본법과는 다른 여성폭력방지 기본법



우선 이 법의 이름이 여성폭력방지 기본법인데요, 기본법이라는 법 형태를 택한 것이 좀 특수한 특성이죠. 기본법이라고 하면 보통은 일반 다른 여러 법의 기본이 되는 법이에요. 그래서 개별 법률의 영향을 끼치는 근거가 되고, 보통 정부가 혹은 국가가 어떤 해당 분야에 대해서 발전 방향, 혹은 지향하는 가치, 그 다음에 보호해야 될 권리, 이런 것들에 대해서 포지티브하게 보통은 그 내용을 담는 것이 보통 기본법들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그 기본법에 의거해서 다른 법률들을 개별법들을 제정할 때, 그런 방향성과 원칙에 의거해서 정책들을 마련하고 법률을 제정하게 되는 근거가 되는, 그런 위상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기본법들은 포지티브합니다. 협동조합 기본법, 건강가족 기본법, 사회보장 기본법, 청소년 기본법, 교육 기본법 등등, 양성평등기본법 등등 기존의 기본법들이 여러 개가 있어요. 그런 법들은 대부분 다 해당 분야에 관련한 다른 개별법들에서 어떤 조항이든 정책을 설계할 때 이제 근간이 되는 것이고요, 기본법의 특성은 처벌조항은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이름부터도 굉장히 포지티브하고 약간 광범위해요.
근데 이 법안의 특성은 제가 지금까지 본 기본법에는 없던 특성, 이름부터. 왜냐면 여성폭력방지 기본법이라고 해서 여성폭력이라는 협소한 개념, 거기에다가 폭력이라는 바로 형사적인 처벌되는 연관되는 용어잖아요. 폭력이라는 이름을 씀으로써 여성폭력이라는 개념을 기본법이라는 지위에 둬야되는 것만큼 큰 개념으로 격상을 시킨 거죠. 매우 특수하게. 굉장히 베이직한 법인데 여성폭력이라는 어찌 보면 협소한 개념, 특수한 개념을 기본법이라는 법을 제목에 달면서 폭력 금지잖아요. 그래서 이거는 네거티브거든요. 이런 유형의 법은 지금까지 기본법상으로는 제가 알기로 존재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성평등 기본법은 있잖아요. 양성평등기본법 있죠.


포지티브와 네거티브의 차이를 설명하자면 포지티브는 뭐뭐는 된다 뭐뭐는 된다, 그렇지만 나머지는 안된다 이거고, 네거티브는 뭐뭐 빼고 나머지는 다 된다 이거죠. (포지티브 규제와 네거티브 규제를 설명하는 부분인데, 이선옥 작가가 말한 포지티브 법안, 네거티브 법안의 이야기와는 딱 맞지 않아 보임)


근데 기본법들은 가치지향을 많이 담고 있고요, 어떤 권리가 있고 어떤 권리를 보호해야 되고, 보통 해당 사안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어떤 정보를 제공할 것인가 이런 것들이 보통 기본이에요. 그런데 이제 이번 여성폭력방지 기본법은 네거티브하고 협소하고 약간 기본법의 이상과는 기존 기본법들의 이상과는 맞지 않는, 그래서 여성폭력이라는 것을 굉장히 사회적으로 특수하게 취급해야 될 범주로 격상을 시켜놓은 거죠. 그런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것이 그렇기도 하지 않습니까?(사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중요한 사회 문제 아니냐)


그래서 제가 여성폭력이 물론 중요한 사안이예요. 이 법이 문제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제가 얘기하는 이유는 이 법에서 사실 제안하고 있는 내용들은 기존의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양성평등 기본법이 있습니다. 거기에 포함되지 않을 사항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법에 근거해서 다 추진할 수 있는 법들이예요. 그리고 현재 이 여성폭력방지 기본법에서 언급하고 있는 성폭력 방지,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가정폭력 방지, 성매매 방지, 그담에 정보통신망법, 성폭력 처벌법, 그리고 형법 이런 것들로 다 포괄해서 처벌하고 보호조치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하고 있는거죠.


실제로 국가보안법이 불필요한 이유는 형법으로 다 처벌할 수가 있어요. 굳이 국가보안법을 둬서 생각했다는 이유로 옥죌 이유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양성평등 기본법이 원래 1994년에 제정이 됐어요. 그래서 20년 동안 처음에는 여성발전 기본법이였어요, 그 이름이. 그러다가 이제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해서 이제 성평등, 그리고 양성평등을 지향한다는 의미로 그 법안의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양성평등 기본법으로. 그래서 오늘날에도 기능을 하고 있는데요.
제가 그 법(여성폭력방지 기본법) 조항들을 보면 양성평등 기본법으로 포괄할 수 있는 범위가 없습니다. 지금 이번에 입안한 이 법에서는. 그래서 이번에 중요하게 말하고 있는게 데이트 폭력 및 스토킹 등 신종여성폭력이라고 규정을 했습니다. 그런 여성폭력으로 피해가 발생하는데 현행 법체계가 이런 피해자에 대한 보호나 지원이 곤란해서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라고 여가부에서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발의자의 지적은 사실과 다르죠. 왜냐하면 기존의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형법부터 이미 다 처벌 가능합니다. 그런데 신종폭력이라는 개념을 추가하고 싶었다면 저는 양성평등 기본법에 추가할 수 있었다고 봐요.


개정안을 통과시키면 된다?

'데이트 폭력'에 대한 법적 규정도 없다


예. 추가를 해서 우리가 그동안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상 폭력적일 수 있다라는 얘기를 할 수 있다고 보는데 저는 그걸 또 법조항까지 가야될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어쨌든 데이트폭력 같은 경우에도 폭력이라는 것은 명확한 법적 개념이 있습니다. 동의에 의하지 않은 어떤 유형의 행사라는 법적 개념이 명확한 용어거든요. 이번 법안에서 여성폭력의 개념을 굉장히 모호하게 다뤄놨어요


데이트 폭력 예를 들어서 말씀드리는건데 이 데이트폭력의 범주가 엄청나게 넓더라고요. 저는 남자가 여자의 핸드폰을 이렇게 보고 비밀번호 알려달라고 이런 것도 데이트 폭력에 속하고, 옷입는 것을 제재를 걸고 이것도 데이트 폭력으로


옷 입는건 또 뭐가 문제야?


‘너 왜 치마입고 왔어’ 이런거 있잖아요.


예를 드는게 다 남성이 여성에 대해서 간섭하고 지적하는 것을 예로 많이 드는데,


데이트 폭력은 그러면 남자도 엄청 당하는 거예요.


지난 회에도 말씀 드렸지만 데이트 폭력은 가해자가 쌍방이 모두 가능성이 매우 높은 폭력 중에 하난데, 저는 그런 것들을 데이트 폭력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 그 자체에 대해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런데 그게 우리가 사회운동을 할 때 운동세력이 운동적인 용어로 계몽이나 캠페인용으로 저는 쓸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면 그게 사실은 정서적으로 충격을 주고 상대방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데 미처 깨닫지 못할 수가 있으니까, 친밀한 관계에서 지나친 사생활 간섭이나 이런건 안된다 라고 할 수 있죠.


‘그게 데이트 폭력이예요’라고 말할 순 있다. 그런데 이게 법으로 일단 제정이 되는 순간에는..


데이트 폭력 자체도 그 개념은 어느 법조항에도 규정된게 없습니다, 없고요. 지금 우리가 흔히 데이트폭력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여성단체가 만든 데이트 폭력안이 경찰에도 통용되고 그러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 주제로 한 회를 다뤄도 될 만큼 할 얘기는 많이 있는데 오늘 일단 이 법안 관련해서 얘기할 것은 그런 식으로 기존의 법들로 과연 포함할 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렇다면 이 법으로 해서 상대방에 대해서 ‘너는 왜 치마가 짧아’ ‘오빠는 왜 옷을 그렇게 못입어’ ‘츄리닝좀 입고 나오지마’ 이런걸 폭력으로 규정해서 처벌할 건가. 그 말을 발언을 당한 대상자 그것이 여성일 경우 여성을 특별한 보호조치가 필요한 피해자로 분류할 건가, 이런 문제가 있죠. 그런 문제에 대해서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 법입니다 일단은 그런 문제가 있고요.


근데 여성폭력방지 기본법을 이제 우리가 구체적으로 얘기를 할텐데 이런 내용은 다 담겨 있다는 얘기잖아요.


그런 내용의 법안을 마련할 근거가 되는거죠.


근간을 만들어 놓는 법이다.


그래서 이 법안에 대해서는 문턱을 너무 쉽게 넘어서 발들이기 전략이라고 저는 표현을 할거에요. 왜냐면 우리가 이런 일들을 사실 개별법이나 어떤 사회 운동으로 제도화하기는 힘들어요. 힘들죠. 그리고 과정을 거쳐야 되죠. 사회적으로 이게 공개되었을 때 뭐 논박도 있을 수 있고 항의도 있을 수 있고 이해 당사자 간에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되잖아요. 그런데 이게 법으로 기본법으로 제정이 되면 그런 법들의 그런 폭력에 대해서 강력히 처벌해라라고 요구하는 세력들이 쉽게 이 문턱을 넘어서 다른 사회적인 소모과정이 없이 쉽게 발을 들일 수 있는거죠. 그 법에 의거해서 이런 정책을 해. 이걸 해. 라고 할 수가 있는거예요.


정책까지 파생될 수가 있다?


기본법은 그래서 만드는 거예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의거하여 라는 조항에 근거가 마련되는거죠.


일부 주장하시는 분들 중에서 양성평등기본법이라고 원래 있잖아요. 이것도 이름을 왜 양성이냐라고 주장하는 분들 계시더라고요.


있죠. 반동성애적인 관점 때문에 성평등이라고 할 때는 남성과 여성에 포괄되지 않는 성소수자나 사회적인 약자라고 주장하는 성소수자들의 주장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거죠. 이거는 여성운동계와 인권운동계에서 계속 강력하게 주장해서 양성평등이 아니라 성평등으로 가야한다고 말을 하고 있고, 그 조항 때문에 동성애자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된다라는 그 공포나 반감 때문에 기독교 쪽에서는 매우 그걸 민감하게 취급하고 계속 그걸 많이 딴지를 걸죠.


그래서 양성평등으로 가자.


양성평등으로 하면 남성 여성이니까 그건 시비걸 게 없는데, 이번 법안에서도 그런 논쟁이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그 논쟁이 있었어요. 성별에 대한 문제 때문에 원래 이 법의 제일 초안 원안에는 성별에 기반한 폭력을 여성폭력이라고 규정을 했습니다. 성별에 기반한 폭력이라고 하면 거기에는 해당 피해자나 가해자가 남성이나 여성으로 특정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성별에 기반한 여러 형태의 폭력들을 우리가 새로운 폭력의 개념으로 정의하고 그것에 파생되는 권리침해와 피해보호를 좀더 중점적으로 할 수 있다 이런 취지가 있었는데.


아니 그러면 궁금한게, 예를 들어서 트랜스 젠더인데 남성이었다가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분들에 대해서는 뭐 아까 얘기했던 여성폭력방지 기본법이잖아요 여기에는 그분들이 해당을 하는 겁니까?


최종 통과된 법안의 내용은 생물학적인 성별이 여성일 경우, 그 규정이 들어간게 아니고요,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이렇게 문구가 수정이 됐어요. 여성이라는 피해자로 한정이 될 경우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거죠.
중요하게 그 개념 때문에 여성가족위원회, (여성폭력방지법을 담당하는) 상임위인 여성가족위원회와 법사위원회에서 계속 논쟁을 벌였습니다. 원래 여가부의 원안은 성별에 기반한 폭력이었다가 최종 지금 법안의 자구 수정은 제가 확인할 수가 없어요. 본회의를 통과한 최종 법안은 국회가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게 저도 국회의 시스템의 문제 중 하나라고 보는데요, 법률이라는 것은 조항 하나 글자 하나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있거든요.
등을 어느 위치에 붙이느냐, 여성 ‘등’에 대한 폭력이냐, 여성 폭력 ‘등’에 대한 이렇게 등이라는 문구 위치, 여성 폭력이냐 여성에 의한 폭력이냐, 여성에 대한 폭력이냐 이런 식으로 자구 수정을 최종 법사위에서 명했고 전문위원이 하기로 했어요. 그 다음에 본회의에 올라온 최종안을 제가 확인을 못합니다. 누구도 지금 확인할 수가 없어요. 그걸 확인하기 전까지는 제가 정확한 법률, 법적인 용어를 말씀드리긴 어려운데 어쨌든 법사위를 통과한 최종안, 본회의에 올려진 최종안에서는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 이렇게 수정된 것으로 압니다. 언론 기사도 그렇게 났고요. 결론은 그 성별에 여성 남성을 모두 포괄하려다가 법사위나 논의 과정에서 그것을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한정된 채로 통과된 상황이죠. 그래서 제가 이제 남성들의 반발도 심한 거고요.

자유한국당 때문에 이상한 법이 됐다? 팩트체크에 대한 팩트체크


자유한국당이 손댔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이 젠더 갈등은 사실 현 정부에게 악재거든요.


자유한국당은 지금 최종 결과로 보면 어제 난 뉴스인가요, KBS 기자가 팩트체크해서 여성만을 법안 누가 만들었냐 누구 때문에 만들어졌냐고 해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반대를 해서 결국은 이게 남성을 보호하지 않는 법으로 됐다라고 썼는데, 자유한국당이 반대해서 그 자구를 수정한건 맞아요.
그런데 그 팩트체크 기사는 저는 사실과는 조금 달라요. 저도 본회의와 상임위 소위원회 회의록을 다 봤습니다. 그런데 일관되게 논쟁이 되었던 거는 여성가족부가 법안의 제목에 여성폭력이라는 문구를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끝까지 이렇게 통과가 됐어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기본 입장은 이게 양성평등이라거나 성폭력이라거나 그담에 여성폭력이라거나 셋 중에 하나 우리 다 용인할 수 있어. 젠더폭력도 용인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제목으로 가면 법안의 내용과 법 제목이 일치하니까 동의하겠다였어요.
그런데 여성가족부는 여성폭력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된다고 계속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법의 취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지금 심각하고 그 문제를 우리가 사회적으로 환기시켜서 특수하게 더 보호해야 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여성들이 이거에 대한 요구가 굉장히 높은데 우리 정부가 응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표창원 의원이 계속 주장하셨어요. 이대로 받아들여 달라. 이 제목 받아들여 달라. 그래서 논쟁의 과정에는 사실상 자한당 의원들 입장은 ‘여성만을 보호해도 오케이, 대신 법안과 법안 개념 정의를 맞게 일치를 시켜’ 이거였어요. 그러면 여성을 보호하면서 성별에 기반한 폭력이라고 애매한 문구를 넣어서 이 개념을 혼란하게 만드느냐. 여성 보호한다고 하면 우리는 동의 해줄께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여가부나 표창원 의원 같은 경우에 그렇게 남성 여성의 문제로 가면 어차피 지금 현행법들에서도 이미 다 그게 커버가 된다. 이 법만의 고유한 취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이 법은 여성폭력에 대한 정부의 특별한 조치와 (웃음터짐) 정부의 특별한 조치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법안 취지가 있으니까.


여성 이거는 모르겠고 난 아동을 넣어야 한다고 보는 사람인데.


양해해 달라고 계속 요구를 하면서 결국 그 자구 수정, 성별에 기반한 폭력을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피해자를 여성으로 한정하면서 그렇다면 자유한국당은 제목과 맞으니까 오케이 이렇게 해서 통과가 된겁니다.
그래서 이거를 팩트체크라고 하면서 마치 자유한국당이 남성을 결국은 버렸다 이런 프레임으로 기사를 쓰시던데 제가 볼 때는 여성가족부가 이 새로운 젠더폭력의 개념을 입안하려고 했어요 사회적으로. 젠더폭력은 사실상 꼭 여성만 포괄하고 있지 않다 라고, 여성운동이 그동안 주장해온 어떤 신종폭력의 개념을 법적으로 좀 만들고 싶은 의지가 있었어요 분명히. 그게 국회상임위랑 법사위를 통과하면서 자유한국당이 그 여성운동의 개념 자체가 익숙하지 않고 보편적으로 우리도 사실 개념이 잘 이해 안되잖아요. 성별에 기반한 폭력이라는게 뭐지? 젠더 폭력이 뭐지? 이러니까 왜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를 쓰느냐 그런 선에서 항의를 한거고,
그 다음에 법 조항중에 성평등이라고 나온 조항이 있어요. 그걸 이제 자유한국당에서 문제를 삼았죠. 성평등이라고 하면 정확히 뭐냐 이거는 좀 반동성애주의적인 관점에서 문제제기를 한거라고 저는 보고요.


이제 이 정부가 당장 대통령부터 페미니스트가 되겠다고 이야기한 정부 답게 뭔가 여성을 위한 가시적인 그런 법안을 만들었다. 이거를 이제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 천명하기 위해서 여성폭력 방지법.


아니 그렇게 따지면 우리가 약자들을 위한방지법 보호를 위한 법이라면 장애인 폭력 방지법 아동폭력 방지법 이런 것도 다 만들어야 되요. 오히려 그게 선행되야 되는 거 아닙니까. 오히려 그분들이 더 약자에요


탈모자를 위한 기본법


그분들도 약자죠


(웃음터짐) 그 얘기가 나왔으니까 제가 한 가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법적 약자와 사회적 약자의 개념을 많이 혼동합니다. 이 법안도 이 여성폭력으로 인해서 피해를 입는 압도적인 수의 여성에 대해서 보호를 하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이렇게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법적 약자와 사회적 약자의 다른 점은 법적 약자는 법 자체가 불평등해서 그 법으로 인해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존재들이 있을 때 그 존재를 법적 약자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그 법적 약자를 구제하는 방법은 그 불평등한 법조항을 개정해야죠. 그런 방법인데
사회적 약자는 법이 불평등한게 아니라 법은 이미 있는데 그 법에 의해서 보호를 받을 자원이 없거나 기회를 모르거나 이런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을 사회적 약자라고 하는거예요. 예를 들면 노인의 경우 노인이 노인이기 때문에 신체적인 능력이 이제 상실돼서 그것 때문에 어떤 보호를 받을, 폭력에 노출되었을 때 더 많이 다칠 수 있고 이런 위험들이 존재하잖아요.
이 노인들에게 당신이 그런 폭력을 당했을 때 경찰에 어떻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느냐 얼마 전에도 쪽방촌에 여성 노인 두 명이 성폭력 당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그럴 경우에 이 노인들은 저항할 수 있는 신체적인 능력이 젊은 사람들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지잖아요. 그러면 바로 경찰과 연결할 수 있는 통로 그 도구를 만들어 준다던지 이런 식으로 노인은 법 안ㅍ에 법적 권리자로서 평등해요. 그렇지만 사회적으로 그런 보호를 받을 자원이 부족해, 그럴 경우에 이 법과 제도가 그걸 보완하는 기능을 해서 사회적인 약자를 보호하라는게 사회적 약자라는 개념이예요
그런데 여성은 법적인 약자가 아닙니다. 이 법안은 여성을 법적인 약자로 규정을 하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이 법안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동등하게 법률적 지위를 보장받을 권리를 이거는 위반하고 있는 법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래서 그런 문제가 하나 있고요.
이럴 경우에는 성별에 기반한 그런 여러 폭력,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그 다음에 데이트 폭력, 스토킹 이런 것들을 주로 예로 드셨어요. 이런 폭력은 어떤 성별이건 공히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법은 어떻게 기능해야 되냐면, 보편적으로 그 해당폭력 행위를 규제하거나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을 만들고 그 다음에 그 권리의 적용 단위를 개인으로 명확하게 받을 수 있게 해야 된다는 거죠. 그렇지 않고 이런 경우에는 실업이 모두에게 문제인데 여성 실업만 해결하겠어. 이런 법인 거에요. 이 법은.
그래서 이 법의 문제 하나가 권리의 단위를 개인으로 두지 않고 특정한 성별, 특정한 정체성을 가진 성별 집단, 그 정체성은 그리고 고유해서 평생 갑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가는 정체성이예요. 그 특정한 정체성을 가진 집단에게만 이 법을 적용한다는 자체가 권리의 단위를 개인으로 상정하고 있는 법과 맞지 않고요.
그래서 매우 위험한 거죠. 왜냐면 개인에게 벌어진 일은 어차피 이 법으로 해결돼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폭력이든 그 폭력의 피해자는 개인이잖아요. 개인을 구제할 수 있는 게 법제도의기능이예요. 그런데 이것을 개인이 아닌 그렇게 집단으로 만들어 버리면 그 개인이 권리의 단위가 아니라 그 개인이 어디에 속하는지에 따라서 구성원들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된다는 거죠. 내가 여성이냐에 따라서. 같은 폭력을 당해도 내가 여성이냐에 따라서 그 법의 보호를 받고 그런 결과로 나타난다는 거죠. 그래서 이것은 동등한 법률적인 지위를 보장하는,


동일범죄 동일 처벌이 아니네요 그러면은.


그렇게 될 확률이 높죠.


그분들이 항상 주장하는 거는 동일범죄 동일처벌인데 이법이 통과한다면 훨씬 여성이 약자로서 같은 일을 당해도 더 보호를 받는다 이렇게 정의를 내릴 수가 있겠네요.


여성폭력이란 개념을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정의하는 기본법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특수한 일이예요.

(다음편에 계속)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증언자료 당사자 증언 원문자료

위안부 할머니들 증언자료 있는 곳들
- 우선적으로 언론에 언급된 적 있는 분들 증언을 중심으로.




* 여성가족부 위안부 피해자 증언 (언제 어떤 이가 증언 채록한 것인지가 불분명)

'제국의 위안부' 둘러싼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 교수 논쟁 - 끝 + 약평 박유하와 '제국의 위안부'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의 논쟁 1회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의 논쟁 2회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의 논쟁 3회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의 논쟁 4회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의 논쟁 5회

50번부터 이어짐. 밑줄과 강조는 박유하 교수가 올린 파일에 되어 있던 것.
채권자 - 위안부 할머니들(이옥선, 김군자김순옥유희남강일출정복수박옥선김외한김정분)
채무자 - 박유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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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4부 2장-3 310쪽 3줄

정대협은 '아시아'의 '위안소'가 똑같이 여성들을 '강제로 끌어간' 곳으로 생각해서 이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이겠지만, 당시에 싱가포르에 가 있었던 조선인 여성은 '일본 제국'의 일원이었다. 태평양 전쟁 때의 조선인이란 '일본인'이고 자국을 침략한 적국의 여성일 뿐이었다.

채권자 이유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들을 전쟁범죄의 가해자의 지위에 있다고 단정하여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조선인 위안부가 침략지 국민들에게 적국의 여성으로 보였다면 이 역시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침략 전쟁의 피해자임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할 것입니다.

채무자 해명
위안부가 <일본 제국의 일원>이었음은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이 표현은 현지 여성에게 그렇게 간주되었다는 것입니다. 조선인 위안부들이 <대체 일본인>이 되어 피해자가 되었지만, 동시에 그렇게 부여된 <일본인>의 지위에 안주하기도 한 것은 <사실>입니다. 실제로 당시 현지인을 차별했음을 볼 수 있는 자료를 9월 3일 답변서에 제시했습니다.

법원 판단
해당 문구 유지

51. 4부 2장-3 310쪽 16줄

조선인 위안부들은 일본인 위안부들에게 차별당했지만, 냄새난다는 이유로 대만인을 싫어했던 조선인 위안부들이 '현지' 여성들을 차별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채권자 이유
막연한 추측을 통해 허위 사실을 적시하고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않은 채 피해자인 조선인 '위안부'에 대해 다른 나라의 여성을 차별하는 가해자의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나한테 오는 민간인들은 대개 대만사람이었다... 일본사람보다 검고 냄새도 나니까 대만사람인 줄 알았다. 옷은 보통 민간인이었다. 추잡했다.> 150~151.
자료에서 보듯 위안부들은 "전쟁에 동원된 일본인"으로 현지에 있었습니다. 일본 군인들도 위안부들을 "일본인"으로 보고 있었음을 <일본 사람이 외국 나라 와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려구>하는 걸 모르고 현지 사람에게 심하게 대한 경우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채권자는 <조선인 위안부가 침략지 국민들에게 적국의 여성으로 보였다면, 이 역시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 침략 전쟁의 피해자임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바로 그것이 바로 본서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런 <모순> 자체를 일본의 책임으로 말한 것입니다.

법원 판단
해당 문구 유지

52. 4부 2장-3 310쪽 22줄
'위안부'의 피해는 보상되어야 하지만, '조선인 위안부'는 한국이 바라는 방식으로 '기림'을 받기에는 모순이 없지 않은 존재다.

채권자 이유
채권자를 포함한 조선인 위안부가 요구하는 것은 일본의 법적책임 인정과 사죄, 손해배상이 전부이지 기림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들에 대하여 모순이 없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과 다른 표현을 사용하면서 조선인 위안부들의 존재에 대해 왜곡을 하고 있으며 조선인 위안부의 가해자성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기림이란, <기억하는 일>입니다. 소녀상이 그런 <기림>을 위한 상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법원 판단
해당 문구 유지

53. 4부 2장-3 311쪽 4줄
한국의 욕망이 투영된 '피해자이자 투사'로서의 '민족의 딸'을 보는 일은 우리가 아시아에서 '적의 여자'이기도 했던 일을 잊는 일이기도 하다.

채권자 이유
조선인 위안부인 피해자를 전쟁범죄 가해자이자 아시아의 적의 위치에 있었다고 단정하여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의 주장대로라면 일본군에게 강간당하고 위안소 생활을 했던 현지인 여성들 역시 "적의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채무자는 채권자를 포함한 조선인 위안부의 피해자성에 대하여 심한 왜곡을 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적의 여자>란 그들에게 그렇게 간주되었다는 것입니다. 침략자와 같이 들어와 그들과 함께 행동하는 한, 현지인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법원 판단
해당 문구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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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에 걸쳐 박유하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논쟁' 자료를 모두 업로드했다. 자료를 타이핑하며 직접 읽어 봤다. 이 자료대로라면 법원은 채권자들의 53개항 삭제요구 중 19개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삭제된 문구들은 하나하나가 논란이 될 만한 표현을 담고 있다. "군인의 전쟁수행을 자신의 몸을 희생해가며 도운 '애국'한 존재",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이 일본인 창기의 고통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군인들을 정신적·신체적으로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역할", "일본군과의 관계가 기본적으로는 동지적인 관계" 등등이 그렇다.
그 외에 조선인 위안부가 중국, 동남아의 위안부와 같은 위치가 아니었다라던지, 일본의 시각을 소개해주는 대목 등에 대해서 법원은 대체로 문구 유지 결정을 내렸다.
박 교수의 해명을 읽어보면 53개항의 표현 모두 나름의 이유와 문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20번 항목에 나오는 '매춘적 강간', '강간적 매춘'이란 표현을 예로 들어 보자.(법원에서는 해당 문구 삭제 결정) 박 교수는 위안부들이 일본군의 조직적인 강간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돈을 받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성매매와 강간이란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에 대해 채권자들은 매춘이라는 표현 자체가 '심각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박 교수의 주장은 틀린 것이 아니다. 1944년 미육군이 작성했다는 보고서에도 위안부들이 매달 1500엔을 벌고, 최소 750엔을 떼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위안부들이 '성을 사고 판 것'은 사실로 볼 수 있다. 60~70년대 신문기사를 보면 위안부라는 표현 자체가 '성매매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에 대해 실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불쾌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채권자의 대리인들이 "채권자를 비롯한 조선인 위안부들에 대하여 수입이 예상되는 매춘을 했다는 것은 심각한 명예훼손이 될 것입니다"라고 쓰는 것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성매매 여성들은 자발적이니까 괜찮고 위안부들은 강제니까 문제다라는 시각이 깔려 있다고 느낀다.(박 교수도 해명자료에서 같은 느낌을 언급했다) 일부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방지법 폐지를 외치고 있지만, 실제 성매매 여성들의 대부분이 '자발적'인지는 알 수 없다. 일단 '자발적'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부터가 문제다. 스스로 '자발적'이었다고 말하는 성매매 여성들도 과연 그들이 다른 여성들과 동등한 사회, 경제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성매매를 선택할 것인지 누가 답할 수 있겠는가.
삭제당한 '제국의 위안부' 문구 중에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이 일본인 창기의 고통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부분이 있다. 이 뒤에 이어지는 문구는 "위안부의 불행을 만든 것은 민족 요인보다도 먼저, 가난과 남성우월주의적 가부장제와 국가주의였다"다. 내가 보기에 박 교수는 위안부들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이 문구를 썼다기보다, 위안부가 아닌 성매매 여성들의 비참한 현실에 주목했기에 이런 문구를 쓴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민족문제이기보다는 여성 문제로 보자는 시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도 왜 그런 표현을 썼는지 갸우뚱한 부분도 있다. 47번 항목의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는 이미지를 우리가 부정해온 것"이란 표현이다. 박 교수는 해명에서 "<채권자를 포함한 조선인 위안부의 대다수는 자발적 매춘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려면 그렇다는 증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채권자들 포함한 조선인 위안부의 대다수는 자발적 매춘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가 <더불어 자발적 매춘을 한 사람이 존재한다고 하여 일본군의 필요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동원이 된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와 일본군의 책임은 전혀 희석되지 않는다>는 서술은 모순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이야말로 모순이다. 조선인 위안부 중 자발적으로 간 사람이 일부 있었다는 것은 양측 모두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대다수가 자발적인지, 일부만 자발적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에 불과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아니라 연구자인 박 교수가 규명해야 할 부분이다.
박 교수의 위 표현은 '자발적인 위안부도 있었다'는 정도의 표현에 불과하다. 그런데 해명자료에는 "대부분의 증언은 돈을 받았다고 합니다"라며 '돈을 받은 것'이 곧 자발성의 증거인 것처럼 말하고 있으며, 이를 근거로 박 교수는 위안부의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간 것으로 보는 것 같다. 강제로 위안부 생활을 하더라도 먹고 살려면 일본이 주는 돈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을텐데, 돈을 받은것과 자발성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일제시대를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을 친일파로 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먹고 살기 위해 일제가 주는 돈을 받았다고 해서 위안부 생활을 '자발적'으로 했다고 단정할 순 없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렇게 해명했어야 했다. '자발적으로 일본군 위안부가 된 사람도 있었고, 이러이러한 증언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되어 있는게 문제다'. 이 문구에 한해서 보자면, 잘못된 해명 때문에 삭제되지 않아도 될 문구가 삭제된 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위안부의 '대부분'이 자발적이었다는 것을 증명했어야 하는데 그런 증명은 제시되지 않았다.

끝으로 나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박 교수를 상대로 명예훼손 민사소송을 한 것에 대해서는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박 교수의 진의와 달리 그의 표현들이 당사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줬다면, 이를 '2차 가해'로 생각하고 민사소송을 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대단한 권력자도 아닌 이상, 그들에겐 민사재판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다만 아무리 당사자라 하더라도 학자가 쓴 책에 대해 판매금지를 신청하고, 종국적으로 34곳 내용삭제를 이끌어낸 것에 대해서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일본 우익도, 김일성주의자도, 사이비종교 교주도 자신의 생각을 자유로이 출판물을 통해 밝힐 수 있어야 하고, 일단 이들의 언로는 열어둔 채 비판을 하건, 명예훼손 소송을 걸건 하면 될 일이라는게 내 입장이다.
박 교수 책에는 동의할 수 있는 내용도, 동의가 도저히 안되는 내용도 있지만 한국 사회의 금기를 깼다는 것만으로도, 위안부 문제의 숨겨진 가해자인 조선인 협력자들의 존재를 환기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다. 아무리 당사자라 하더라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 하더라도, 타인의 언로를 아예 막으려는 시도까지 지지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위안부 피해자들과 그들의 대리인들이 의도했건 아니건, 법원이 '제국의 위안부'의 내용 중 34곳을 삭제하라고 결정한 것은 명백한 검열이다.

'제국의 위안부' 둘러싼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 교수 논쟁 - 5 박유하와 '제국의 위안부'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의 논쟁 1회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의 논쟁 2회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의 논쟁 3회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의 논쟁 4회


36번부터 이어짐. 밑줄과 강조는 박유하 교수가 올린 파일에 되어 있던 것.
채권자 - 위안부 할머니들(이옥선, 김군자김순옥유희남강일출정복수박옥선김외한김정분)
채무자 - 박유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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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부 4장-1 246쪽 7줄

1996년 시점에 '위안부'란 근본적으로 '매춘'의 틀 안에 있던 여성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채권자 이유
성노예 생활을 하면서 피해를 입은 조선인 위안부들을 근본적으로 매춘을 한 여성으로 치부해 사실과 다르게 표현하여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임노동이었다는 점은, 9월 3일에 제출한 1992년의 정부 보고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위안부가 국가에 의해 관리된 매춘 행위였음은 본서에 쓴 것처럼 유엔보고서에도 적시되어 있습니다.

법원 판단
해당 문구 삭제


38. 3부 4장-1 247쪽 14줄

그러나 당시 위법사항이 인신매매뿐이었던 이상 위안소 설치와 이용을 "일본국의 범죄"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군이 한 일을 범죄시하려면 오히려 개인적인 강간이나 폭행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채권자 이유
인신매매만 위법사항이 아니라 인신매매나 강제력 행사를 통해 위안부를 동원하고 동원한 위안부를 계속 위안소에 감금하고 성노예 생활을 강요한 것은 모두 범죄행위입니다.
채무자는 위안부가 되는 과정과 위안소로 가는 과정 또는 위안소에서 강간을 당한 이후 계속적으로 성노예 생활을 한 위안부들의 실정을 외면하고 위법사항이 인신매매뿐이라고 범죄행위를 축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범죄행위에 모두 일본정부와 일본군이 적극적으로 관여되어 있으므로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동원과 성착취는 일본국의 범죄이지 결코 개인의 범죄로 치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채권자들은 자신들이 당한 성노예 생활에 대하여 일본군과 일본정부의 책임을 지속적으로 제기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존재하는 객관적인 자료는 이를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그럼에도 채무자 박유하는 위안소 설치와 이용을 일본국의 범죄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여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감금>(무임금) <성 노예 강요>에 관한 인식이 다른 이상,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위안부들의 실정을 외면>한 바도 없습니다.
<일본국의 범죄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근거가 없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법원 판단
해당 문구 유지

39. 3부 4장-5 254쪽 23줄
게다가 동원이 인신매매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군이 알고도 지시한 것이 아닌 한 설사 방관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묵인이 의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한 강제연행이나 인신매매의 주체를 일본군으로 상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채권자 이유
일본군은 위안부 동원의 적극 가담자이며 지시자입니다. 위안소에 도착한 조선 여인들에 대한 강간 주체는 대부분 군인입니다. 위안부 동원의 가장 큰 원인은 일본군의 위안소 설치 방침과 조직적 실행입니다.
단순히 인신매매 묵인이 아니라 강간의 주체인 일본군의 행위가 명백함에도 그 책임에서 일본군을 제외하는 것은 허위 사실을 기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법적 책임의 주체 역시 일본정부와 일본군이지 하수인에 불과한 업주나 포주가 법적 책임의 유일한 주체가 아닙니다.

채무자 해명
<위안소에 도착한 조선여인들에 대한 강간>이란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말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10월에 제출한 영화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는 그것을 보여줍니다. 당시의 조선인 학도병이 제작한 영화이므로 왜곡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거듭 말해온 것처럼 채무자는 <그 책임에서 일본군을 제외>한 바 없습니다.
<법적 책임의 주체 역시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도의적 책임의 주체가 일본군이라고 말한 채무자의 의견이 어떻게 <명예 훼손>이 되는지 근거가 필요합니다.

법원 판단
해당 문구 유지

40. 3부 5장-2 265쪽 2줄

조선인 위안부는 같은 일본인 여성으로서의 동지적 관계였다.

41. 3부 5장-2 265쪽 19줄
식민지배하에서 동원된 '제국의 피해자'이면서, 구조적으로는 함게 국가 협력(전쟁 수행)을 하게 된 '동지'의 측면을 띤 복잡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채권자 이유
피해자를 일본군과 함께 전쟁을 수행한 '동지'로 표현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있어서는 가장 끔찍한 명예훼손입니다.
채무자는 피해자인 조선인 위안부를 일본군인과 함께 전쟁을 수행한 동지적 존재라고 반복하여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채권자를 포함한 조선인 위안부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반복하지만 이러한 역설을 인정하고 들어갈 때, 비로소 그 피해가 어떠한 형태를 띤 삶이었는지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채권자의 지적은 본질적으로 모순적이고 불가피하게 불완전한 '식민지인의 삶'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데서 기인한 것입니다.

법원 판단
40번 삭제
구조적으로는 ~ 복잡한 존재 삭제

42. 3부 5장-2 272쪽 22줄

한국의 위안부들이 기금을 위로금으로 받아들이고 반발한 이유는 과거에 받았던 차별 경험과 기억 때문이다.
식민지의 위안부들은 자신들이 그 곳에 있게 된 이유가 가난한 여성이었기 때문이었고 그 가난이 피지배민족이라는 계급성이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한번 모욕당하는 일을 경계했고 그 결과로 반발과 저항이 강했던 것이다.

채권자 이유
채무자는 진상규명을 정확히 요구하는 채권자들이 기금을 받지 않은 것이 차별 경험과 기억 때문이라는 사실과 전혀 다른 주장을 하며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권자들은 일본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원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일본 정부가 법적인 책임을 인정하는것이 선행되어야합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법적인 잘못을 명백하게 인정하지 않았고 애매한 성격의 기금으로 책임을 무마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채권자들은 반발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채무자들은 마치 열등의식 때문에 채권자들이 기금을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여  채권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차별 경험과 기억 때문>이 <사실과 전혀 다른 주장>이라고 말하려면 증명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는 받아들인 기금을 <동정금>이라고 오해하게 만든 것이 과거에 식민지였던 경험에 따른 자존심임은 채무자의 판단입니다.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는 본서 187~191쪽에 쓴 바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법적인 잘못을 명백하게 인정하지 않았던> 것은 1965년의 협약 때문입니다. 이는 본서에 쓴 바 있습니다.
지원자들이 기금을 받지 못하게 했다는 것은 <여성 지도자들이 받지 못하게 했다>는 말로 부산 정대협 김문숙 회장이 증언한 바 있습니다.

법원 판단
해당 문구 유지

43. 4부 2장-1 291쪽 6줄
'조선인 위안부'란 이렇게 해서 조선이나 중국의 여성들이 일본의 공창제도의 최하층에 편입되었고, 아시아 태평양전쟁기의 '위안소'의 최대 공급원이 되면서 생긴 존재였다.

채권자 이유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수행하는 방안의 하나로서 일본정부와 일본군이 조선인 여성을 일본국가적 차원에서 성노예로 동원한 것이 본질임에도
채무자 박유하는 자발적 성매매를 전제로 한 일본 공창제도에 조선인 위안부를 계속 포섭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시종일관 조선인 위안부를 매춘을 한 여성으로 표현하고 있어 일본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희생양인 조선인 위안부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이는 원고측도 쓴 바 있습니다.
공창을 <자발적 성매매를 전제로 한> 장소로 보는 시각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공창의 의미는 국가가 허용한 매춘 장소라는 뜻입니다. 당연히 자발적으로 온 이도 있고, 속아서 온 이도 있습니다. 위안소가 일본의 공창이 근대 이후 이식된 조선의 위안소와 이어져 있다는 것은 이미 다수의 연구자들이 말해 왔습니다. 위안소는 전쟁을 위한 국민 동원의 형태로 점령국인 일본이 국가적으로 시행하였으며, 그런 동원은 <무상>을 법으로 규정하지 않는 한, 무상으로 이뤄질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러한 구조를 이용한 것은 업자나 포주입니다. 다만 근로정신대도 위안부도 <국가에 대한 애국>이라는 인식을 먼저 심어놓고 이루어진 정책이었습니다. 반복적으로 말한 것처럼, 물리적 강제성은 식민지 조선에서는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일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 전쟁의 희생>임을 부정한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자료 :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5>,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이 자료에서는 가난한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위안부로 나섰고 계약에 응했다는 사실, 위안소에 따라 착취도가 달랐던 사실, 그리고 국가적 체제 내에서 체념해 버린 개인의 무력함과 그 안에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며, 때로는 위안부 생활에서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움직이곤 했던 업자와 위안부들의 모습도 엿보입니다. 이러한 개인들의 비극을 총체적으로 살피는 일을 시도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작업은 꽉 막힌 위안부 문제를 풀기 위한 시도-공익을 위한 것입니다.

법원 판단
조선인 위안부란~편입되었고 삭제

44. 4부 2장-1 294쪽 5줄
그들이 그렇게 전쟁터까지 함께 가게된 것은 똑같이 '일본 제국'의 구성원, '낭자군'으로 불리는 '준군인'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45. 4부 2장-1 294쪽 16줄
그녀들이 '낭자군'이라고 불렸던 것은 국가의 세력을 확장하는 '군대'의 보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46. 4부 2장-1 294쪽 22줄 
'조선인 위안부'는 피해자였지만 식민지인으로서의 협력자이기도 했다.

채권자 이유
채무자 박유하는 일본 가라유키상과 조선인 위안부를 동일시하면서 가라유키상의 역할을 설시한 후 조선인 위안부가 가라유키상과 마찬가지로 일본 침략전쟁의 협력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선인 위안부가 어쩔 수 없이 성노예 생활을 하며 일본 군대에 수동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었음에도 마치 자발적인 협력자인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는 채권자들이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인식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으로 심각한 명예훼손에 해당합니다.
채무자는 제국의 위안부를 통하여 반복적으로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를 동지이자 협력자로 규정하고 조선인 위안부를 침략전쟁 수행자와 동일시하여 일본군 전쟁 수행의 큰 피해자인 조선인 위안부의 명예를 현저하게 침해하고 있습니다.
채무자의 주장대로라면 일본식민지 시대 적극적인 독립운동과 저항을 하지 못하고 식민시대를 견뎠던 모든 조선인들은 식민지인으로서 협력자가 됩니다.

채무자 해명
조선인 위안부가 식민국 백성으로서 점령국의 전쟁에 동원된 것은 분명 점령국의 논리에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으로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해자인 일본과 <동일시>된다는 채권자의 지적은, 개인의 삶과 국가적 이념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채권자의 사고를 보여줍니다. 개인은 국가라는 큰 틀 속의 존재이기에 국가적 강제라는 틀 내에서 행동할 수밖에 없는 무력한 일면을 지닌 존재이기도 합니다. 국가적 강제의 틀 속에서 삶을 살아내는 개인의 모습은 각양각색이기에 식민지인으로서 '협력자'라는 커다란 틀 속에서 개인은 각자도생하고자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살아냈던 것입니다. 채권자의 지적은 이러한 구조적 주체와 개별 주체를 완전히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본서 291쪽에서 294쪽에 이르는 이 부분들은 점령국 일본의 통치하에 위안부들이 어떠한 존재였는지를 설명한 부분입니다.
<적극적인 독립운동과 저항을 하지 못하고 식민 시대를 견뎠던 모든 조선인>과 전쟁터에 나간 위안부는 다릅니다. 그들은 싫든 좋든 그러한 위치에 떠밀려졌던 것입니다. 첨부하는 자료는 전시 일본의 점령지 주둔군 관리를 위하여 군에서 주도적으로 위안소를 관리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다시 말해, 당시 위안부들이 국가적 관리 하에 놓여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국가정책"이라는 형식 속에서 위안부들이 "제국의 세력 확장"에 복무했던 위치에 놓여있었다는 것은, 싫든 좋든 <사실>입니다.

법원 판단
해당 문구 모두 삭제

47. 4부 2장-1 296쪽 19줄
그리고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는 이미지를 우리가 부정해온 것 역시 그런 욕망,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채권자 이유
채무자의 주장처럼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가 일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조선인 위안부에 대해 일반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채무자 박유하는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자발적 매춘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해야한다는 취지로 본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나
이는 가해자이면서도 여전히 가해사실을 부정하며 반성과 사과를 꺼리고 있는 현재의 일본정부의 주장과 동일한 주장입니다.
채권자를 포함한 조선인 위안부의 대다수는 자발적 매춘을 한 것이 아닙니다. 더불어 자발적 매춘을 한 사람이 존재한다고 하여 일본군의 필요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동원이 된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와 일본군의 책임은 전혀 희석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채무자 박유하는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는 이미지를 채권자를 포함한 조선인 위안부의 이미지에 덧씌우고 있습니다.
채무자 박유하의 주장대로 자발적 매춘부가 존재한다는 것과 일본의 위안부 동원에 대한 법적 책임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에도 마치 자발적 매춘부를 인정하지 않아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채권자는 위안부는 <자발적으로 한 매춘부>가 아니었다고 해놓고도,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가 일부 있었다고 하더라도>라고도 말합니다. 이는 본인의 주장을 인정했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증언은 돈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채무자는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자발적 매춘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없습니다. 자발이든 아니든 그러한 구조 속에 놓이도록 만든 것 자체를 일본의 책임으로 환기시키려 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채권자를 포함한 조선인 위안부의 대다수는 자발적 매춘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려면 그렇다는 증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채권자들 포함한 조선인 위안부의 대다수는 자발적 매춘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가 <더불어 자발적 매춘을 한 사람이 존재한다고 하여 일본군의 필요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동원이 된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와 일본군의 책임은 전혀 희석되지 않는다>는 서술은 모순입니다.
채무자의 시도가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는 이미지를 채권자를 포함한 조선인 위안부의 이미지에 덧씌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본서를 정확하게 읽은 기존의 서평이나 기사가 말해 줍니다.
더구나 <자발적 매춘부가 존재한다는 것과 일본의 위안부 동원에 대한 법적 책임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말은 자발적 매춘부가 존재한다는 것을 채권자와 주변인들이 인정한 채권자가 말입니다. 정신대를 위안부로 착각하던 시절의 이미지-12살짜리 소녀까지 강제로 끌고 갔다는 이미지에 지원 단체는 2014년 현재가지도 기대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위안부의 평균 나이는 25세라는 보고서가 있고 설사 20세라 하더라도, 현재의 십대 전반의 소녀 이미지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소녀를 팔아넘긴 주체가 부모이거나 업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이 역시 본서의 도처에 기술하였습니다. 

법원 판단
자발적으로 ~이미지를 삭제

48. 4부 2장-1 298쪽 5줄
문제는 네덜란드 여성과 '조선인 위안부' 역시 '적'의 관계였다는 점이다.

채권자 이유
조선인 위안부를 일본군과 동일시하여 일본군들에게 강간을 당하였던 네덜란드 여성 피해자의 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명백한 사실 호도로 피해자인 채권자를 포함한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합니다.

채무자 해명
당시 <국가>라는 틀 속에서 조선인 위안부와 네덜란드 여성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었는지를 지적한 대목입니다. 일본이 침략한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고 그에 따라 네덜란드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를 일본군은 <강제 매춘>시켰는데, 그러한 그들에게 <일본인>이었던 <조선인 위안부>가 <적>일 수밖에 없었음은 자명한 일입니다.

법원 판단
해당 문구 유지

49. 4부 2장-2 306쪽 10줄
중국이나 네덜란드와 같은 일본의 적국 여성들의 '완벽한 피해'의 기억을 빌려와 덧씌우고, 조선 여성들의 '협력'의 기억을 벗겨낸 소녀상을 통해 그들을 '민족의 딸'로 만드는 것은, 가부장제와 국가의 희생자였던 '위안부'를 또 다시 국가를 위해 희생시키는 일일뿐이다.

채권자 이유
조선인 위안부나 네덜란드 등 다른 나라 여성들이 입은 피해는 궁극적으로는 일본군에 의한 성범죄 피해로 동일함에도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와 다른 나라 여성들을 구별하고 심지어 조선인 위안부가 "완벽한 피해"의 기억을 덧씌우고 "협력"의 기억가지 벗겨냈다는 허위사실을 기재하여 조선인 위안부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들의 피해를 상징하는 소녀상 건립에 대해 "완벽한 피해"의 기억을 덧씌우고 "협력"의 기억을 벗겨낸다는 표현으로 매도를 하고 있어 현재의 위안부 피해자들을 피해를 덧씌우고 협력의 기억을 벗어낸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녀상은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것이며 일본군 피해를 극명하게 표현하는 일환으로 제작된 것이지 협력의 기억을 벗겨내는 노력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채무자 해명
<"완벽한 피해"의 기억을 덧씌우고, "협력"의 기억까지 벗겨냈다>는 것은 위안부가 아니라 지원 단체에 대해 한 말입니다. 그럼에도 채무자가 위안부를 비판한 것처럼 쓰고 있습니다.
소녀상의 이미지는 실제 대다수의 위안부를 대표하지 못할 뿐 아니라, 여성에 대한 순결주의적 의식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여성 문제'이기도 한 위안부 문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정대협의 남성 본위적 시각>을 결정적으로 드러내는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위안부 피해자들의 피해를 덧씌우고, 협력의 기억을 벗겨낸 사람들>로 한 것은 오히려 지원 단체라 해야 할 것입니다.

법원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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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 둘러싼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 교수 논쟁 - 4 박유하와 '제국의 위안부'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의 논쟁 1회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의 논쟁 2회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의 논쟁 3회


28번부터 이어짐. 밑줄과 강조는 박유하 교수가 올린 파일에 되어 있던 것.
채권자 - 위안부 할머니들(이옥선, 김군자김순옥유희남강일출정복수박옥선김외한김정분)
채무자 - 박유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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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3부 1장-6 190쪽 5줄

한 개인으로서 위안부의 또다른 기억이 억압되고 봉쇄되어온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일본 군인과 연애도 하고 위안을 애국하는 일로 생각하기도 했던 위안부들의 기억이 은폐된 이유는 그녀들이 언제까지고 일본에 대해 한국이 피해민족임을 증명해주는 이로 존재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위안부들에게 개인으로서의 기억이 허용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녀들은 마치 해방 이후의 삶을 건너뛰기라도 한 것처럼 언제까지고 15살 소녀 피해자이거나 싸우는 투사 할머니로 머물러 있어야 했다.

채권자 이유
조선인 위안부들이 느끼고 판단한 것과 무관하게 사실과 다른 기술을 하고 있습니다.
채권자를 포함한 조선인 위안부들이 과거 성노예 생활을 하는 동안 그들이 애국하는 일로 생각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채무자는 위안부들이 위안을 애국하는 일로 생각하기도 했다고 단정하면서 위아 같은 기억이 은폐되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채권자들은 자신들을 15세 소녀 피해자이거나 투사 할머니로 각인시키기 위하여 과거의 기억을 은닉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채무자 박유하가 주장하고 있는 소위 "연애"나 "애국"의 기억은 성노예 생활의 본질을 밝히는 것과는 무관하거나 그런 기억 자체가 없거나 있어도 위안부 생활을 대표하는 기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채무자는 조선인 위안부들의 기억이 수동적으로 은폐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타의에 의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연애한 위안부가 실제로 존재함에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채권자들 혹은 주변인들이 다른 위안부의 경험을 억압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 것이 본서의 집필취지 중에 하나입니다.
채권자는 <"연애"나 "애국"의 기억은 성노예 생활의 본질을 밝히는 것과 무관하거나 그런 기억 자체가 없거나, 있어도 위안부 생활을 대표하는 기억이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본질을 규정하는 것은 연구의 몫입니다. 무엇보다 <위안부의 본질>을 연애나 애국이라고 한 바 없습니다. 총체적인 이해를 위해 보이는 사실을 모두 일단 보고 일본 우익들에게 이용되지 않도록 재의미화를 시도하였을 뿐입니다.
<위안부 생활을 대표하는 기억>이라고 한 바 없으며, 위안부의 본질은 비참한 것임을 충분히 기술했습니다. 채권자들의 지적은 이제까지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는 일이 피해를 축소시키고 일본을 면죄하는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어판이 나온 이후의 일본의 반응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법원 판단
일본 군인과 ~ 때문이다 삭제

29. 3부 1장-6 191쪽 8줄 

그러나 국가가 군대를 위한 성노동을 당연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에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았던 이상 그것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강제연행과 강제노동 자체를 국가와 군이 지시하지 않는 이상(일본군의 공식 규율이 강간이나 무상노동, 폭행을 제어하는 입장이었던 이상) 강제연행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일본 국가에 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시 말해 위안부들에게 행해진 폭행이나 강제적인 무상노동에 관한 피해는 1차적으로는 업자와 군인 개인의 문제로 물을 수밖에 없다.

채권자 이유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 동원의 가장 상층에 일본정부와 일본군이 존재한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왜곡하고 있습니다.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은 국제법적으로도 금지되어 있었고 일본 형법으로도 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채무자 박유하가 법적인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잘못된 기술입니다.
채무자의 주장대로 위안부 동원이 아무런 법적 위배가 없는 것이었다면 일본 내에서 일본 여성을 동원을 하면 되었을 것입니다.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에게 행해진 폭행이나 강제적인 무상노동에 대하여 1차적인 책임을 업자와 군인 개인에게 돌리고 있는 바 이는 일본 정부와 일본군의 1차적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조선인 위안부의 실상을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채무자 박유하의 이와 같은 사실과 다른 표현은 소위 일본 우익이라고 지칭되는 자들의 주장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채권자들이 그동안 위안부 '피해자'로서 일본의 사죄와 법적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하며 주장하고 있던 것을 부인하는 행위라 할 것입니다.

채무자 해명
<위안부 동원의 가장 상층에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존재한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왜곡>한 바 없습니다. 본서는 일본의 책임을 묻는 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제 연행>을 부정하던 일본 측에서 이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는 반응들이 나온 것입니다.
<일본 형법으로 범죄>라는 것은 지원자들의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에 대한 비판을 시도했음에도 여전히 같은 자료로 채무자의 생각을 비판하는 것은 이 고소 자체의 정당성 자체가 의문시되는 일입니다.
지원 단체들이 <법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해온 근거는 <강제 연행>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후 강제 연행이 중심이 아닌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인신매매나 유괴를 일본군이 지시하거나 알고도 의도적으로 방치한 것으로 간주하고 <법적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실제로 강제 연행이라고 주장했던 일본의 양심적인 신문을 대표하는 아사히신문이 2014년 8월, 강제연행 기사를 취소했습니다.
일본의 공식 방침은 그러한 사기나 유괴가 없도록 하는 것이었고, 이는 당시에 유괴범들이 처벌받았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유괴범들이 직업소개소에 팔고, 이를 통해 위안소로 가게 된 경우는 다음 자료의 첫 행에도 나옵니다. 또한 군은 위안부와 업자들 간의 계약서를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공식적으로는 폭행 등도 금했습니다. 따라서 군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업자와 군인 개인의 책임>을 물은 것은 <국가 책임>을 묻는 현재의 논리가 중간 단계에서의 책임자들을 면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 국가로서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누차 설명한 바 있습니다. 당시 일본의 강제 연행과 강제 노동 및 폭행 등에 대한 금지 지시 관련 자료를 9월 3일의 답변서에 제시하였습니다. (자료 : <전시체제기 조선의 사회상과 여성동원>, 국무총리실 소속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2007년)

법원 판단
강제연행과 ~ 않는 이상 부분 삭제

30 3부 3장-1 205쪽 16줄
그러나 실제 조선인 위안부는 국가를 위해 동원되었고 일본군과 함께 전쟁에 이기고자 그들을 보살피고 사기를 진작한 이들이기도 했다. 대사관 앞 소녀상은 그녀들의 그런 모습을 은폐한다.

채권자 이유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가 국가를 위해 동원되었고 일본군과 함게 전쟁에 이기고자 그들을 보살피고 사기를 진작하였다고 하여 강제로 성노예 생활을 하였던 조선인 위안부의 실상과 전혀 다른 사실을 기재하여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국가를 위한 동원>과 <사기 진작>은 기존 연구자도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법원 판단 
일본군과 ~ 사기를 진작한 삭제

31 3부 3장-1 206쪽 8줄
그녀들이 해방 후 돌아오지 못했던 것은 (중략) 단지 성적으로 더렵혀진 기억만이 아니다. 일본에게 협력한 기억, 그것 역시 그녀들을 돌아오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말하자면 더럽혀진 식민지의 기억은 해방된 한국에는 필요하지 않았다. (중략)
그러한 피해자 소녀에게 목도리를 둘러주고 양말을 신겨주고 우산을 받쳐주던 사람들이 그녀들이 일본 옷을 입고 일본이름을 가진 일본인으로서 일본군에 협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똑같은 손으로 그녀들을 손가락질 할지도 모른다.

채권자 이유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에 협력한 기억 때문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정적 표현을 통해 조선인 위안부들이 성노예로 성을 착취당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왜곡하고 있으며
동시에 조선인 위안부 중 돌아오지 못한 분들과 그 이유에 대하여 객관적인 근거도 전혀 제시하지 않으면서 일본에게 협력한 사실 땜누에 돌아오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고 조선인 위안부들을 일본에 대한 자발적인 부역자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인으로서 일본군에 협력했다는 사실이 있는 것처럼 표현하여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하였던 조선인 위안부들의 실상을 사실과 다르게 표현하여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조선인 위안부들의 처한 상황과 고통에 가슴아파할 것이지 위안부들이 일본군들에게 협력을 했다고 판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채권자를 포함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적극적으로 일본 옷을 입거나 일본이름을 가졌다는 것보다는 수동적으로 주어진 상황에 따랐음이 드러납니다.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들을 일본인으로서 일본군에 협력하였다는 허위의 사실을 기재하여 채권자를 비롯한 조선인 위안부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권자 해명
위안부가 일본군에게 협력을 요구당한 존재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본서와 9월3일 답변서에 제시한 각종 자료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 부분은 기존 연구가 위안부가 대부분 <학살당했다>고 한 주장에 대한 반론입니다.
그것을 두고 <조선인 위안부들의 처한 상황과 고통에 가슴 아파하지 않은 것>으로 단정하는 것은 채권자들의 정의/도덕의 독점행위입니다.
<일본 옷을 입거나 일본 이름을 가졌다는 것>을 두고 <적극적>으로 했다고 쓴 적이 없고, <자발적인 부역자 취급>을 한 적도 없습니다. 협력을 강요당했다고 썼을 뿐입니다.

법원 판단
일본에게 ~ 아니었을까 삭제
일본 옷을 ~ 협력했다는 삭제

32. 3부 3장-1 207쪽 10줄
협력의 기억을 거세하고 하나의 이미지, 저항하고 투쟁하는 이미지만을 표현하는 소녀상은 협력해야 했던 위안부의 슬픔은 표현하지 못한다.

33. 3부 3장-1 208쪽 1줄
홀로코스트에는 조선인 위안부가 갖는 모순, 즉 피해자이자 협력자라는 이중적인 구도는 없다.

채권자 이유
조선인 위안부에 대하여 일본군의 동지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성적 권리를 박탈당하고 신체를 유린당한 피해자들에 대한 명백한 허위사실이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들이 협력의 기억을 거세하였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 바 채무자는 조선인 위안부들이 실질적 강간을 지속적으로 당한 것이 객관적인 사실임에도 이러한 일본군의 강간행위를 계속하여 부정하면서 강제적 성의 제공을 위안부들의 협력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채무자는 홀로코스트와 조선인 위안부를 비교하면서 피해자이면서 협력자라는 이중적인 구도가 홀로코스트에는 없다는 황당한 기술을 하고 있는 바
채무자의 시각이라면 유태인들은 독일군에 붙잡혀 극렬히 저항하지 않고 복종을 하며 가스실에서 처형당해 제국주의 독일의 침략전쟁에 소극적으로 협조를 한 것에 다름이 아닙니다.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를 일본군의 동지라고 표현하며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군에 협력한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협력자라는 사실과 전혀 다른 이미지를 덧씌워 위안부들의 명예를 현저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의 시각이라면 강간을 당한 피해 여성은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사회 부적응자인 강간범에게 성적 위안을 제공하고 그에게 정신적 위로를 제공했던 '동지'이자 '협력자'라고 표현될 수 있습니다. 심각한 인식부재이며 채권자들에 대한 명예훼손입니다.

채무자 해명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엿음은 실체적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성적 권리를 박탈당하고 신체를 유린당한 피해자>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노예이면서 동지였다는 서술은 <식민국 백성으로서의 노예>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통치 구조에 병합되어 군인과 함께 전쟁에 동원된 백성>으로서의 동지였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기존 서평들이 올바르게 이해한 이런 부분을 채권자와 대리인들이 보려 하지 않는 것은 식민지라는 모순을 보지 않으려는 맹목의 결과입니다.
채무자는 <일본군의 강간 행위를 계속하여 부정>하긴 커녕, 강조했습니다.(본문 147~148쪽)
홀로코스트는 일방적 민족 말살이므로 위안부 문제와는 다릅니다. 유태인의 대부분이 <나치> 혹은 <독일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강요당했다면 같다고 할 수 있으나, 유태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식민지 문제와 다른 점입니다.
9월 3일 답변서에 이처럼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위안부들이 감내했던 모순된 삶의 비극과 그러한 기억들을 되살리는 일에 부지런하지 못했던 우리의 현실, 그리고 그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제시했습니다. (자료 :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3>,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법원 판단
협력의 ~ 거세하고 삭제
홀로코스트에는 ~ 구도는 없다 삭제


34. 3부 3장-1 215쪽 21줄

그러나 일본정부는 사죄했고 2012년 봄에도 사죄를 제안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정대협이 주장하는 국회입법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없다. 그 이유는 1965년의 조약, 그리고 적어도 강제연행이라는 국가폭력이 조선인 위안부에 관해서 행해진 적이 없다는 점, 있다고 한다면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사례이어서 개인의 범죄로 볼 수 밖에 없고 그러한 국가범죄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채권자 이유
채무자는 향후에도 일본의 국회입법을 통한 해결은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고 일본의 국가폭력이 조선인 위안부에게 행해진 적이 없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채무자가 말하는 국가폭력은 협의의 강제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본군인의 직접적인 물리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위안부 대다수는 강제력에 의하거나 사기로 인한 기망에 의하여 위안소에 끌려갔으며 끌려가서는 공통적으로 강간을 당하였고 이후부터는 의사에 반해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조선인 위안부들은 끌려가는 동안이나, 위안소에 머무는 동안 지속적인 국가폭력에 희생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조선인 위안부 동원 방침과 위안소 설치가 일본군에 의하여 주도되었고 위에서 언급한 강제력이 행사되었으므로 조선인 위안부 동원과 유지는 국가폭력의 극명한 예이며 이를 부정한다면 도대체 어떤 국가폭력을 국가폭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채무자 박유하는 강제연행이라는 국가폭력이 조선인 위안부에 관해서 행해진 적이 없다고 단정하여 국가폭력의 범위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는 바, 채권자들은 그 동안 일본제국주의의 국가폭력에 대하여 법적 책임을 지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채무자 박유하의 이러한 주장은 허위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채권자들의 명예를 현저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일본의 국가 폭력이 조선인 위안부에게 행해진 적이 없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문제 제기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채무자가 부정한 것은 물리적 <강제 연행>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가장 양심적으로 보도해 온 아사히신문도 본서의 발간에서 1년 지난 2014년 8월, 강제 연행기사를 취소했습니다. 조선 반도의 경우, 위안부에 대한 <강제력>의 주체는 업자였고 강제성은 구조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조선인 위안부 동원과 유지는 국가 폭력의 극명한 예>를 채무자가 <부정한다>고 간주하는 채권자의 의식은, 그동안 주장해 온 <법적> 책임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수년 전 근로정신대를 위안부로 착각하여 <강제연행>당한 것이라고 생각한 때의 주장 - <불법>을 저질렀으니 <법적 책임을 지라>는 - 이 이후 업자에 의한 인신매매 사실 등 새로운 연구가 다수 나왔음에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틀을 바꾸는 것은 일본의 책임을 희석하는 것이 되는 것으로 생각한 채권자와 주변인, 일부 연구자, 대리인들의 두려움에 기인한 것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법원 판단
강제연행이라는 ~ 적이 없다 삭제

35. 3부 2장-2 218쪽 10줄
그것은 위안부를 필요로 한 군이 위안부 모집을 조선이나 대만 총독부 등에 부탁을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중략) 사기나 속임수를 써가며 모집하는 일까지 일본군의 의도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군의 수요를 알게 된 업자들이 사기나 속임수까지 써서 모집했던 것이 대부분이었고 일본군은 그런 상황을 묵인하기도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단속했다.
그리고 단속한 이상 단속 쪽이 일본군의 인신매매에 대한 자세를 나타내는 것일 수밖에 없다.
위안부들이 가혹한 노동을 하게 된 것은 분명 일본군이 그런 시스템을 허용하고 묵인하고 이용했기 때문이지만, 그에 따른 처벌을 일본군에게만 돌릴 수 없는 상황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한 위안소 이용이 국가범죄가 될 수는 없다.

채권자 이유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 동원과 관련해 속임수 등이 사용되었다고 하여도 이를 일본군의 의도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일본군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느냐는 책임을 규명하는 데 있어 본질이 아닙니다. 일본군이 위안부 동원을 조장하고 이를 장려하였고 그 과정에서 강제력이나 속임수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면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후 이러한 방법으로 동원되는 것을 저지하거나 방지하지 않은 책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업주나 포주가 자발적으로 군위안소를 설치하고 운영한 것이 아니라 일본군에 의하여 먼저 조직적으로 군위안소 설치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실제로 위안부 동원이 이루어진 이상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불법행위에 대하여 일본군의 책임이 없다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마치 들키지 말고 도둑질을 하라고 지시한 사람과 관련하여 들킨 사람만 책임이 있다는 것이며 독려한 사람은 책임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주장입니다.
채권자를 포함한 조선인 위안부들의 진술은 강제 혹은 기망으로 위안소에 끌려가 강간을 당하였다는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강간의 대부분은 일본 군인이었습니다.
일본군이 공식적으로 사기 모집을 단속하였다고 법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채무자는 위안소에서 이루어진 최초 강간이 거의 일본군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이러한 방법으로 동원되는 것을 저지하거나 방지하지 않은 책임>은 채무자인 본인도 묻고 있습니다. 다만 <도의적 책임>으로 물었을 분이고 이는 저의 판단에 의거한 것이므로 원고 측과 판단이 다르다 해서 명예훼손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업주나 포주가 자발적으로 군 위안소를 설치하고 운영한> 경우의 예를 본서에 적어두었습니다.
<독려>란 마치 일본군이 인신매매를 독려한 것처럼 생각하도록 만들지만 그렇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위안소에서 이루어진 최초 강간>이라는 표현에는 모든 위안부가 강간을 당했다는 전제가 있지만 증언들은 오히려 이송 도중에 업자에 의한 강간이 많아 보입니다. 어느 쪽이든 채무자는 일본을 향해 사죄와 보상이 필요하다고 썼습니다.

법원 판단
문구 유지

36. 3부 3장-2 219쪽 16줄

조선인 위안부가 군수품이었다면, 강간당한 네덜란드 여성이나 중국은 전리품이었다.

채권자 이유
점령지의 피해 여성을 전리품이라고 표현하는 방식도 문제 있지만, '위안부' 피해자를 군수품이라고 표현하는 것 역시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입니다.
더불어 채무자 박유하는 반복하여 조선인 위안부와 점령지 여성들을 구별하고 있는 바 조선인 위안부나 점령지 여성들이나 본질적으로 일본군의 성적 욕구 해소에 희생당한 사람들임을 고려해볼 때 타당하지 않는 구별입니다.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를 군수품이라고 표현하며 피해자인 위안부들이 침략전쟁에 도움을 준 협력자라는 의미로 사용하여 침략전쟁의 공범으로 몰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이 부분은 여성에 대한 일본의 시각을 설명함으로써, 당시 일본이라는 국가가 얼마나 폭력적이었으며 반인권적이었는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부분입니다.
채무자는 근대 이후의 국가 체제에서 여성을 주체적으로 여기지 않는 남성 본위주의에 의해 핍박받고 수탈당한 여성의 문제로써도 위안부 문제는 중대한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군수품>이란, 채무자가 아니라 '제국 일본'이 위안부들을 <물건 취급>하였음을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성노예>였음을 주장하면서 인간을 오로지 수단으로만 사용한다는 의미의 <물건화>를 부정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조선인 여성을 군수품 취급했던 것은 이동을 <우선적>으로 하기 위해서였음을 보여주는 자료도 존재합니다.
국가의 행위에 의해 발생한 피해자라는 점을 위안부 할머니 스스로 인식하는 사례도 존재합니다. 여기서 할머니는 <나라를 위해> 나가야 햇고, <같은 일본사람 취급>을 했다고 분명히 말한 자료를 9월 3일 제출서면에 제시하였습니다.
(자료:<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4 :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5>,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제국의 위안부' 둘러싼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 교수 논쟁 - 3 박유하와 '제국의 위안부'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의 논쟁 1회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의 논쟁 2회

16번부터 이어짐. 밑줄과 강조는 박유하 교수가 올린 파일에 되어 있던 것.
채권자 - 위안부 할머니들(이옥선, 김군자김순옥유희남강일출정복수박옥선김외한김정분)
채무자 - 박유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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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2부 1장-2 111쪽 15줄

'조선인 여성'은 일본의 식민지가 된 반도 출신 일본 여성-제국 치하 국민의 자격으로 군인에 대한 성의 제공을 요구당한 존재였다.

17. 2부 1장-2 111쪽 18줄

위안부에 '조선 여성'이 많았던 것은, 다른 이유도 있지만 우선은 '조선'이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한 여성들이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채권자 이유
채무자 박유하의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시각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채무자 박유하는 강제합방을 무효라고 하는 일반인들의 상식과 달리 조선인들을 모두 일본인이라고 전제하고 있으며 조선여인들이 일본인으로서 성의 제공을 요구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조선인 위안부를 일본여성이라고 단정하고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인 위안부가 위안부가 되는 과정이 근본적으로 틀림에도 불구하고 조선인 위안부가 더 많은 것이 일본에 비해 가난한 여성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사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가난때문이 아니라 일본은 일본여성을 통해서는 불법적인 위안소 유지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식민지 여성을 강제적인 방법으로 동원을 했던 것입니다.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인 위안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위안부가 되는 과정에 있어 강제성 여부이며 조선인 위안부의 경우 현실적으로 물리적 강제력이 동원되지 않은 경우가 있더라도 그 이면에는 구조적인 강제력이 동원되고 있었다는 점이며 현실적인 강제력 행사 외에 기망, 유혹 등에 의하여 위안부가 되었으며 이러한 구조를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뒷받침하였다는 점입니다.
일본정부와 일본군은 위안부를 동원함녀서 일본 여성을 조선 여성에 사용하였던 방법으로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도 일본인 위안부와 마찬가지로 돈을 벌기위하여 매춘을 한 것이며 매춘을 통해 애국을 했던 일본인 위안부와 조선인 위안부는 서로 같은 상황이었다고 사실을 왜곡하여 조선인 위안부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당시 한반도가 일제하의 식민지였다는 것은 <사실>로서 부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조선어 금지는 <일본인>이 되기를 요구받은 대표적인 정책입니다. 현장에서도 <황국신민서사>를 외워야 했던 것 역시 그런 문맥 소겡서의 일입니다. 채권자의 지적은 조선이 <한일합방>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본인이 <조선 사람이 일본 제국의 국민>이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려 하는 이유는 이 문제를 <제국>의 통치술의 문제로 보려 하기 때문입니다. 채권자의 반발은 오래도록 <전쟁>의 틀로 이해하고 단순한 가해/피해의 틀로만 생각해 온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여성을 통해서는 불법적인 위안소를 경영할 수 없었다>는 것은 조선인과 일본인이 같이 있었던 위안소가 많았다는 것은 위안부들의 증언집에서 드러납니다. 채권자와 그 주변인들은 오래도록 <물리적 강제성>이 있었던 것처럼 강조해 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오히려 문제해결을 방해해 왔습니다. 이제야 <물리적 강제성에 의해 동원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을 소극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이러한 기만이 문제해결을 지연시켰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피해의 양상을 정확히 보려 하지 않았던 이러 자세야말로, 20년 이상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구조적 강제성>이란 채무자인 본인이 이미 9년 전 책 <화해를 위해서>에서 지적한 개념입니다. 채권자는 채무자가 만든 개념을 사용해 채무자를 비난하는 아이러니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채무자는 당시 상황을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살피고자 했을 다름입니다. 그렇게 할 때, 일본의 식민지배가 내부적으로 얼마나 많은 모순과 병폐를 낳았는지를 드러낼 수 있기 대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의 제공을 요구당한>, <조선이 일본에 비해 가난한 여성들이 많았다>, <일본인 위안부를 대체한 존재>였다는 기술은 모두, <제국 일본의 문제>를 묻기 위한 기술입니다.
<일본 정부와 일본군은 위안부를 동원하면서 일본 여성을 조선 여성에 사용하였던 방법으로 동원하지 않았다>고 말하려면 그 증거를 대야 할 것입니다.


법원 판단
해당 문구 유지

18. 2부 1장-2 112쪽 15줄

조선인 여성이 위안부가 된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른 경제활동이 가능한 문화자본을 갖지 못한 가난한 여성들이 매춘업에 종사하게 되는 것과 같은 구조 속의 일이다.

19. 2부 1장-2 112쪽 21줄

위안부 중에 조선인 여성이 많았던 것은 식민지의 빈곤과 인신매매조직의 활성화 등 전체 사회구조의 결과이다.

채권자 이유
위 표현과 마찬가지로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들이 강제나 기망, 허위, 유혹 등에 의하여 위안부가 된 특수성을 무시한 채,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가난하여 자발적으로 매춘업에 종사하는 여성과 조선인 위안부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동일시를 통해, 저자는 일본 정부 및 일본군의 적극적인 개입과 책임을 배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결국 채무자의 시각이라면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군의 전쟁범죄 피해자가 아니라 가난을 타개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매춘을 한 매춘여성과 동일합니다.
채무자의 표현이 옳다고 하려면 일본의 조직적이고 대규모적인 위안부 동원전에도 조선의 백성들은 가난한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므로 조선에서 위안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시설이나 위안부들이 많이 존재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존재하지 않으며 일본군의 조직적이고 대규모적인 동원 이후부터 채권자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양산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채무자 해명
<전체 사회구조의 결과>라는 것은 채권자들의 주장과 정반대로, 오히려 그러한 사회구조를 만든 일본에 가장 크고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문구입니다.
본서의 120쪽에서 채무자는 <태평양전쟁 때 일본이 '위안부'를 필요시하고 위안부의 효과적인 공급을 위해 '관리'를 했던 건 분명하다. 그러한 일본이 이 문제에 대한 '남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책임'을 지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그 '죄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서술하였습니다.
채무자는 당시 한반도를 점령했던 일본이라는 국가가 어떤 통치를 행했으며, 그 통치에 의해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의 피해가 존재했는지를 상세히 밝히고자 한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 정부 및 일본군의 적극적 개입과 책임을 배제하려 했다>는 기술은 이러한 문맥을 도외시하고 왜곡한 지적입니다.
<조선에서 위안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시설이나 위안부들이 많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채권자들의 억측에 불과합니다. 물론 <대규모적인 동원 이후부터 채권자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맞고 그 사실을 부정한 적은 없습니다.
해외로 <이동>한 위안부란 이동당한 군인을 위해 모집된 <국가에 의한 성노동 동원>으로 보는 것이 채무자의 시각입니다.
채권자들은 지속적으로 일본인 위안부나 가난 때문에 떠난 이들과 조선인 위안부를 구별하려 합니다.
일반 매춘업에 종사하던 이들이 <위안부>가 되는 경우는 많았습니다. 1970년의 서울신문에서도 <처음에는 화류계 여성들이 갔다>고 분명히 쓰고 있습니다. 나눔의 집에 계시던 배춘희 할머니도 자신이 있던 집이 유곽이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일반 매춘과 위안부는 함께 <가난과 남성 우월주의적 가부장제>가 만듭니다. 거기에 <국가주의(본서 33쪽 10줄)>가 개입할 때 <위안부>가 만들어집니다.

법원 판단
가난한 ~ 구조 속의 일이다 삭제
19번 문구는 유지

20. 2부 1장-4 120쪽 19줄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이들은 '위안'을 '매춘'으로만 생각했고 우리는 '강간'으로 이해했지만, '위안'이란 기본적으로는 그 두 요소를다 포함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위안'은 가혹한 먹이사슬 구조 속에서 실제로 돈을 버는 이들은 적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수입이 예상되는 노동이었고, 그런 의미에서는 '강간적 매춘'이었다. 혹은 '매춘적 강간'이었다.

채권자 이유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의 행위가 매춘과 강간이 혼재되어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강간적 매춘이나 매춘적 강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조선인 위안부들이 기본적으로 수입이 예상되는 노동에 종사하여 매춘을 동반한 일을 하였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조선인 위안부들이 위안부가 되는 과정과 위안소에 감금되어 위안부 생활을 했던 동안 경험했던 바와는 다른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채권자를 비롯한 조선인 위안부들에 대하여 수입이 예상되는 매춘을 했다는 것은 심각한 명예훼손이 될 것입니다. 채무자는 성노예 생활을 했던 채권자들을 포함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끊임없이 "매춘"의 굴레를 씌우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위안부가 임노동이었음은 본서의 증언(본문 89~90쪽)이 말합니다. 또한 매춘에 대한 기술은 <매춘부>라고만 하는 위안부를 부정하는 일본인들을 향해 쓰여 졌던 부분입니다. 즉 위안부를 단순한 <매춘부>라고 말해온 이들을 향해 그것이 강간적인 구조를 가진 것이었다고 말하기 위해 사용한 것입니다. 즉 성매매를 하였다 하더라도 이것이 국가의 조직적인 강간행위였음을 말하는 부분입니다. 채권자의 지적은 그런 문맥을 무시하고 단어 자체에만 집착한 지적입니다.
위안소에서의 <감금>은 기본적으로는 업자가 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위안소가 부대 안에 있을 경우에 자유 외출이 불가했던 것은, 군인과 마찬가지로 정보유출 등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법원 판단
위안이란~ 것이었다
기본적으로는 ~ 매춘적 강간이었다 삭제

21. 2부 1장-5 121쪽 16줄

돌아오지 못하거나 이미 사망한 이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돌아왔다'고 한다면, 그 대부분은 우리가 생각하는 비참함과는 조금은 다른 상황으로 자신들을 인식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채권자 이유
정확한 근거도 없이 가정적  상황을 전제로 하여 사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박유하의 기술에 의하면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온 조선인 위안부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지 않았거나 비참함과는 다른 상황으로 자신들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참으로 무책임한 주장으로 박유하가 반복하고 있는 "즐거운 기억"이라는 표현이 의도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위안부로서의 삶이 비참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은 비참한 성노예 생활을 마치고 겨우 살아 돌아온 채권자를 포함한 조선인 위안부들의 실상과 경험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과 차별하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비참함을 부인하는 것으로 심각한 명예훼손에 해당합니다.

채무자 해명
채무자는 <고국으로 돌아온 조선인 위안부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쓰지 않았습니다.
거듭 말한 것처럼 <위안부의 비참성>은 채무자도 거듭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런 부분을 도외시한 채권자의 주장은 허위에 불과합니다.
또한 위안부 생활은 다양해서 모두가 채권자들이 생각하는 경험을 한 것은 아닙니다. 지난 6월 작고한 고 배춘희 할머니는 위안부는 <강제로 끌려가지 않았다>, <위안부는 군인을 돌보는 존재였다>, <왜 이제 와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까지 말한 바 있습니다. 그 생각의 정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그러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것은 그동안 채권자들이 다른 목소리르 묵살하거나 억압해 왔기 때문입니다.

법원 판단
해당 문구 유지

22. 2부 3장 130쪽 17줄
(아편을) 군인과 함께 사용한 경우는 오히려 즐기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채권자 이유
채무자 박유하는 성노예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군인과 즐기기 위하여 군인과 함께 아편을 사용하였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 직전에 통증을 잊거나 없애는 방편으로 아편을 사용하였다는 증언이 있는 등 아편을 통해 통증을 완화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증언되어있음에도 이러한 고찰 없이 그저 피상적으로 아편 사용의 실상을 왜곡하여 인용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박유하는 위안부들의 실상을 직시하지 못하고 성적 쾌감을 위하여 아편을 사용했다는 주장으로 위안부들의 일상을 왜곡시키며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당시의 만주에서 조선인들 중에 아편의 판매와 사용자가 많았다는 것은 여러 자료에서 보입니다. 위안부의 아편 사용은 그 일환으로 봐야 할 것이며, 진통을 위한 것이든 쾌락을 위한 것이든 고통스러운 생활을 완화시켜주는 것이었을 것으로 이해합니다. 고통을 잊기 위한 사용도 있으나, <나도 한번 찔러 보니 세상이 내 세상이여,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라는 말에 대해 <쾌감> 이외의 해석은 불가능합니다. 채권자들의 이야기는 아편을 쾌락을 위해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채권자(대리인)들의 일방적인 판단입니다.
참고
<중국인, 조선인 장사들이 몰래 와서 파는데 나도 한번 찔러보니 세상이 내 세상이여,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중략) 군인들이 몰래 몰래 찔러줬는데, 같이 아편으로 찌르고 그걸 하면 그렇게 좋다고 하면서 여자도 찔러주고 자기들도 찌르고, 그렇게 했어요> - 130쪽

법원 판단
해당 문구 삭제

23. 2부 4장-1 137쪽 3줄

일본인·조선인·대만인 '위안부'의 경우 노예적이긴 했어도 기본적으로는 군인과 동지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24. 2부 4장-1 137쪽 6줄
그들은 성의 제공은 기본적으로는 일본 제국에 대한 '애국'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채권자 이유
'위안부'를 군인과 동지적인 관계라고 하여, 피해자인 '위안부'를 가해자와 동급의 지위로 보는 것은 사실을 호도한 것으로 위안부의 명예를 현저히 훼손하는 것입니다.
위안부는 군인과 동지적인 관계가 아니라 군인들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도구로 사용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동지라는 것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목표 달성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인데 조선인, 대만인 위안부가 일본의 승전을 기원하며 일본군과 함게 노력을 했고 그들의 성의 제공을 애국으로 본다는 것은 본인의 의사에 반해 성을 착취당한 위안부들의 명예를 현저히 훼손하는 것입니다.

채무자 해명
인용된 문구에는 <다시 말해 같은 '제국 일본'의 여성으로서 군인을 '위안'하는 것이 그녀들에게 부여된 공적인 역할이었다>는 문장이 뒤따라 붙습니다. 다시 말해 군인들과 동지적인 관계라는 것은 <제국 일본>의 통치 구조 내에서 전쟁을 위해 동원된 집단으로서 군인과 위안부는 같은 목적에 복무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도한 본서에서는 위안부가 가해자라는 서술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것은 채권자의 오독에 따른 자의적 해석에 불과합니다. 당시 위안부들이 국가의 정책에 의해 모집된 존재였으며, 전시에 간호부로 일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추가 자료를 9월 3일 제출한 답변서에 제시하였습니다. (자료 :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법원 판단
기본적으로는 ~ 맺고 있었다
일본 제국에 ~ 지니고 있었다 삭제

25. 2부 5장-4 158쪽 7줄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그런 유의 업무에 종사하던 여성이 스스로 희망해서 전쟁터로 위문하러 갔다"든가 "여성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위안부를 하게 되는 경우는 없었다"(기무라 사이조)고 보는 견해는 '사실'로는 옳을 수도 있다.

채권자 이유
직전의 표현에서 채무자 박유하는 위안부에 대한 강제연행은 전쟁터에서만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제한 후
조선인 위안부는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위안부를 자원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기재하여 채권자들의 명예를 현저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박유하는 여성이 스스로 희망해서 위안부가 되었거나 여성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위안부를 하게 된 경우는 없었다고 보는 견해가 사실로 옳을 수 있다고 하면서 강제적으로 위안부 생활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인 위안부의 실상을 왜곡하여 마치 조선인 위안부들이 자발적인 매춘을 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박유하는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도모한다고 책을 저술한 취지를 밝혔는 바, 채무자의 시각에서 보면 조선인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을 한 것이므로 일본에게 더 이상 법적책임 인정이나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채무자 해명
명백한 채권자의 악의적 편취가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이들의 글을 비판을 위해 인용했을 뿐입니다. 바로 아래의 단락에서 채무자인 본인은 다음과 같이 반박하였습니다.
<하지만 설사 '자발적'으로 '희망'했다 하더라도, 그녀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추업(醜業)'이라고 불리던 일을 선택하도록 만든 것은 그녀들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사회적 구조였다.(본서 158쪽 13줄)>
채권자들은 <조선인 위안부들이 자발적인 매춘>을 했다고 주장한 것처럼 간주하지만 자발성의 의미에 따라 달리 판단할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무엇보다 위안부의 체험은 같지 않습니다. 채권자의 인식대로라면 자신의 발로 간 경우는 어떤 처참한 생활을 했어도 위안부로서 옹호받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는 채권자들과 대리인들의 매춘차별의식이 만든 주장이라 하겠습니다.

법원 판단
그런 유의 ~ 옳을 수도 있다 삭제


26. 2부 5장-4 160쪽 10줄

오히려 그녀들의 '미소'는 매춘부로서의 미소가 아니라 병사들을 '위안'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애국처녀'로서의 미소로 보아야 한다.

27. 2부 5장-4 160쪽 18줄

식민지인으로서, 그리고 '국가를 위해' 싸운다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있는 남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민간인' '여자'로서, 그녀들에게 허용된 긍지 - 자기 존재의 의의, 승인 - 는 "국가를 위해 싸우는 병사들을 위로해주고 있다"(기무라 사이조)는 역할을 긍정적으로 내면화하는 애국심뿐이었을 수 있다.

채권자 이유
조선인 위안부들을 애국처녀라고 묘사하여 성노예 생활을 한 위안부들의 실상을 왜곡하고 동시에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채무자는 원하지 않는 전쟁범죄의 피해자이자 성노예였던 조선인 위안부들이 긍지를 느끼면서 병사들을 위로한 역할을 하였다는 식으로 사실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채무자는 조선인 위안부들이 국가를 위해 싸운다는 대의명분을 가진 일본군을 위해 최선을 다한 민간인 여자로서 가진 긍지에 의하여 성노예 생활을 견뎠을 것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으로 조선인 위안부의 심정과 실상을 왜곡하여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이 역시 <매춘부>라 폄훼하는 일본의 우파들을 향해, 그렇게 보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설명한 대목입니다. 일본 제국에 의해 <애국 처녀>의 역할을 부여받았던 것이라는 본인의 의견은, 일본에 대한 비판일진대, 이 서술이 채권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인용대목 직후에 <그녀들이 일본이 식민지 지배구조 속에서 병사들을 위안하기 위해 동원한 이상 그녀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썼습니다.
<채무자는 원하지 않는 전쟁범죄의 피해자이자 성노예였던 조선인 위안부들이 긍지를 느끼면서 병사들을 위로한 역할을 하였다>고 썼다고 하지만, 그 직후에 <그것은 일본 국가가 그런 애국을  식민지인들에게까지 내면화시킨 결과였을 뿐이다>(160쪽)라고 썼습니다.
정작 그렇게 말한 일본의 우익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면서 그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비판을 시도한 채무자의 글을 명예훼손이라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빈다. 채무자 본인의 기술의 의미는 일본의 통치 체제에 의한 주입 그리고 통치 체제라는 거대한 구조 앞에서의 체념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 앞에서 무력한 개인을 설명함으로써, 국가에 의해 희생당한 개인의 삶의 모습이 어떠하였는지를 보여주려 한 것입니다. 자살하고 싶을 정도의 고통과 사회적 차별 속에서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의 하나로 말했을 뿐입니다.

법원 판단
26번 삭제
남성들을 위해 ~ 애국심뿐이었을 수 있다 삭제


'제국의 위안부' 둘러싼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 교수 논쟁 - 2 박유하와 '제국의 위안부'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의 논쟁 1회

6번부터 이어짐. 밑줄과 강조는 박유하 교수가 올린 파일에 되어 있던 것.
채권자 - 위안부 할머니들(이옥선, 김군자김순옥유희남강일출정복수박옥선김외한김정분)
채무자 - 박유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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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38쪽 18줄

그러나 '위안부'들을 '유괴'하고 '강제연행'한 것은 최소한 조선 땅에서는, 그리고 공적으로는 일본군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수요를 만든 것이 곧 강제연행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채무자 이유
조신인 위안부는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수행하는 일본군의 성적욕구해소를 위한 방편으로 동원되었고 그 동원은 일본군에 의하여 관리되거나 용인되었습니다. 위안부 동원 담당의 최상층에는 당연히 일본정부와 일본군이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일본군의 요구에 의하여 조직적으로 위안부가 강제 혹은 기망, 유괴 등에 의하여 동원되었음에도 마치 일본군은 위안부 조달의 강제성에 잘못이 없다는 식의 사실과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채무자는 직접적인 강제력 행사만을 강제연행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사기를 통한 기망과 유혹 등 진정한 의사에 반한 동원 역시 강제연행이라고 할 것입니다.
채무자의 주장처럼 일본군의 강제성을 배제하기 위하여는 위안소에 속아서 끌려간 조선여인들은 자발적으로 위안소에서 퇴거를 할 수 있었어야합니다. 그러나 채권자를 비롯한 조선인 위안부들은 위안소에 가는 과정이나 위안소에서 강간을 당합니다.
식민시대 조선은 현역 일본 육해군대장이 조선총독을 담당하였고 총독은 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육해군까지 통수한 것에 비추어 당시 조선은 일본정부와 일본군의 통치를 받았음이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조선 내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위안부 동원과 이후 위안소 유지는 당연히 일본군의 책임이며 이는 객관적인 자료로 사실로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채무자는 일본군이 공적인 책임이 없다고 하여 일본군의 공적 책임 인정을 증언하는 채권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권자 해명
<조달의 강제성>이라는 단어는 대단히 애매합니다. 그것이 <구조적 강제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조달의 강제성에 잘못이 없다>고 쓴 적이 없습니다. 채권자들의 기술은 본서의 내용을 교묘히 왜곡하거나 제대로 된 독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문 27쪽) 일본군에 의한 강간이 있었다는 것도 본서에서 충분히 기술한 바 있습니다. 직접적인 강제성만을 강제성이라고 할지 여부는 학문적판단의 문제일 수 있지만 <사실>의 문제는 아닙니다.
조선인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위안소에서 퇴거 가능>했습니다.(관리인 일기 227쪽) 불가능한 경우는 대부분, 일본군에 의해서가 아니라, 업자에게 빚을 많이 진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강간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강제 연행해 위안부가 되었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위안부 모집은 신문지상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본문 25~26쪽)
채권자들은 전쟁터에서의 강간과 같은 상황이 식민지에서의 위안부 모집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진 것처럼 간주합니다. 또한 한국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 왔습니다. 본서는 그런 부분을 문제시하고 검증한 책입니다.

법원 결정 : 위안부들을~아니었다 삭제

7. 1부 2장-1 57쪽 6줄

'주둔부대의 일원'이자 '부인같은 느낌'이었다는 위안부들. 사실은 이것이 조선인 위안부에게 요구된 역할이었다. 남자들로만 구성된 군대에 투입되어, 회사에서 일하는 남성을 여성이 집에서 일하며 다시 회사에 나갈 수 있도록 보살피는 역할을 맡았던 것처럼, 군인들이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거기에 필요한 갖가지 보조작업을 하도록 동원된 것이 위안부였다.
그런 의미에서도 전쟁터에서의 강간의 대상이 된 '적의 여자'와 위안부는 군과의 관계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중략) 위안부들이 군인들과 휴일의 '평화로운' 한때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구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채무자 이유
일본군은 조선인 위안부와의 성행위를 통해자신들의 성적욕구를 해소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었지 조선인 위안부에게 부인과 같은 역할을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설령 일본군인 일부가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전적으로 가해자의 시각이지 이를 피해자인 위안부에게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은 옳지 않을뿐더러 사실도 아닙니다.
전쟁터에 끌려가 원하지 않은 상대들과 하루 수차례 혹은 수십차례씩 성행위를 강요당했던 조선인 위안부들의 역할에 대하여 확인되지도 않는 일부 일본군의 시각인 "부인같은 느낌" 운운하는 것은 피해자인 조선인 위안부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일본군은 성적요구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위안부들을 이용햇던 것이고 조선인 위안부들은 그 피해자입니다.
일본군은 전투를 진행하는 현지에서는 저항을 포기하지 않은 여성들에게는 강간을 하였고 조선에서 끌고 간 위안부들은 이미 저항을 포기한 상태였으므로 강간을 위한 폭력을 행사할 필요 없이 실제적인 강간행위를 꾸준히 반복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지에서 강간을 당한 여성이나 조선인 위안부는 궁극적으로 일본군에 의한 동일한 피해자인데 채무자 박유하는 같은 피해자를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라고 단정하여 조선인 위안부의 피해자성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부인>을 단지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도 있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위안부와 연애하고 결혼한 일본군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군인이 위안부를 <부인>에 비유한 것은 성적 대상으로서이건, 사랑의 대상으로서이건 거짓일 수 없습니다. 채권자는 <강간>만이 <피해자>의 요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부부간 강간>도 성립하는 만큼, <부인>이라는 표현이 문제될 수는 없습니다.
위안부는 처음에는 성욕을 풀기 위한 장소로 마련되었지만, 점차  심신의 안정 효과를 노리게 되었습니다.(요시미 요시아키, <종군위안부 자료집>, 205쪽)
그러한 관계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은 본서에 제시한 증언과 자료에서 보이고 있으며, 이는 군인들이 전투에서의 압박감을 풀고 오랫동안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현지에서 강간을 당한 여성이야기를 일본군이 조선인 위안부에게 하는 장면은 적지와 식민지의 위치차이를 보여 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라 함은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그러한 사실이 <조선인 위안부의 피해자성을 훼손>하는 일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채권자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법원 판단
해당 문구 유지

8. 1부 2장-1 58쪽 3줄
조선인 위안부가 한 일은 성적 욕구를 받아주는 일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간호도 붕대감기도 배웠고 심지어는 총쏘기(총조립?)까지 배워 군인들과 함께 전쟁을 지탱했다.
전쟁에 나갔다 오면 기모노에 에프론 차림으로 맞아들이고 축하연에 참석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채권자 이유
조선인 위안부가 성노예 생활을 한 것이 자발적인 것이 아니었듯이 그들이 총쏘기를 배웠다면 이 역시 일본군에 의한 강제 교육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채무자 박유하는 마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붕대감기와 총쏘기를 배운 것처럼 서술하고 심지어는 군인과 함께 전쟁을 지탱했다고 까지 기술하여 전쟁 범죄의 피해자이 조선인 위안부들을 전범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채무자는 위안부에 대한 정확한 실상을 알려야 위안부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채무자 박유하가 밝히는 실상은 위안부 문제의 지엽적인 부분으로 위안부의 실상과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위안부로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한 것도, 총쏘기를 배웠다면 배운 것도 위안부들의 자발적인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채무자는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군과 함께 전쟁을 수행하고 지탱한 것처럼 기술하여 채권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당연히 강제교육입니다.
이야 말로 <구조적 강제>입니다. 일본은 <식민지>인을 <일본인>으로 만들어 그러한 일을 강요했습니다. 본인은 드러나지 않았던 그러한 상황을 기술했을 뿐, 이에 대해 <자발적>이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전쟁을 지탱>했다 함은 결과적/구조적으로 그랬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의 패전 이후 연합군이 조선인까지 포로로 잡아 두거나 본서에 쓴 거처럼 일본인 전범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위안부가 있는 것은 그러한 구조의 결과입니다.
<위안부로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한 것도, 총쏘기를 배웠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그러한 구조를 문제시했을 뿐 <위안부들의 자발적인 의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곡해는 채권자(대리인)의 독해력의 문제로 판단합니다.

법원 판단
해당 문구 유지

9. 1부 2장-1 61쪽 18줄

그녀들이 '황국신민서사'를 외우고 무슨 날이면 '국방부인회'의 옷을 갈아 입고 기모노 위에 띠를 두르고 참여한 것은 그래서였다.
그것은 국가가 멋대로 부과한 역할이었지만 그러한 정신적 '위안'자로서의 역할-자기 존재에 대한 (다소 무리한) 긍지가 그녀들이 처한 가혹한 생활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채권자 이유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군이 진행하는 행사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왜곡하고 있으며 채권자 개개인의 경험과는 너무 동떨어진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자기 존재에 대한 긍지 운운하면서 위안부들이 긍지를 느끼면서 가혹한 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다는 억측을 하여 피해자이자 희생자인 위안부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하고 있습니다.
위안부들이 과연 일본군의 승전을 기원하며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성을 제공하고 일본군의 행사에 참여하면서 긍지까지 느꼈는지에 대한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근거없는 허위사실로 위안부들의 입장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채무자는 <그녀들이 '황국신민서사'를 외우고 무슨 날이면 '국방부인회'의 옷을 갈아입고 기모노 위에 띠를 두르고 참여한 것>에 대해 <국가가 멋대로 부과한 역할>이라고, 이 다음에 이어지는 부분에서 명확히 쓴 바 있습니다.(본문 61쪽)
<일본군 위안부들이 정신적 위안자로서의 역할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과 <긍지를 느꼈다>는 것에 대해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은 채권자들의 인식일 뿐입니다. 그러한 인식은 위안부들 자신이 <긍지>를 말하는 부분에서 찾을 수 있고, 그러한 긍지가 요구되었다는 것입니다. 채무자는 이 글에서 <다소 무리한 긍지>, <국가 멋대로 부과>라는 표현을 통해 그러한 긍지가 외부에서 강요된 것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법원 판단
정신적~있었으리라는 부분 삭제

10. 1부 2장-1 62쪽 12줄
"응모했을 때도 그랬지만, 이런 몸이 된 나도 군인들을 위해 일할 수 있다. 나라를 위해 몸바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네들은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대문에, 자유로워져서 내지에 돌아가도 다시 몸 파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성들은 군인들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중략) 물론 이것은 일본인 위안부의 경우다.
그러나 조선인 위안부 역시 '일본제국의 위안부'였던 이상 기본적인 관계는 같다고 해야 한다. 

채권자 이유
일본인 위안부가 자기 조국의 승전을 기원하면서 기뻐하면서 위안부 일을 하였다고 하며 조선인 위안부 역시 일본인 위안부와 기본적으로 같은 입장이라고 동일시하여 허위사실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인 위안부는 서로 처한 입장과 출발점이 전혀 다름에도 기본적인 입장이 동일하다고 단정하고
마치 조선인 위안부들도 일본인 위안부들처럼 "이런 몸이 된 나도 군인들을 위해 일할 수 있다.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위안부 역할을 수행한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여 채권자들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9월3일에 제출한 답변서에는 여성들이 '애국'의 기치 아래 헌신을 요구당했고, 그에 응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표시된 부분에서 위안부가 <국방부인회에 가입해 띠를 두를 수 있었던 것이 기뻤다>고 말하는 것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사회에서 천대받은 이들에게 당당한 <국민>의 역할이 주어진 것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국방부인회>란 1932~1942년 사이에 존재한 일본의 단체입니다. 출정 군인을 위해 전송을 나가거나 위문주머니를 만들거나 하면서 <후방 국민으로서 전쟁을 돕도록 조직되었습니다. <국방은 부엌체서부터>라는 표어를 만들어 여성의 전쟁지원이 요구되어 이들은 일본식 앞치마를 두르고 전쟁 수행을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실제로 위안부들의 사진 중에는 이 국방부인회의 띠를 두른 사진이 존재합니다. 마음이 담겨 있는지 여부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거듭 말했듯 본서는 그러한 역할을 요구했던 일본을 문제시한 책입니다.
9월3일에 제출한 답변서중 두번째 이미지의 끝에 "기생이나 창녀와 달리 군인 위안을 위해 동원된 애국봉사단"으로 자신들을 의식하는 목소리가 실려 있습니다. (자료 : <여자의 병기> 또한 <위안부는 군인을 돌보는 존재였다>고 저자에게 말한 위안부할머니도 계십니다.)

법원 판단
조선인~같다고 부분 삭제

11. 1부 2장-1 65쪽 11줄
가족과 고향을 떠나 머나먼 전쟁터에서 내일이면 죽을지도 모르는 군인들을 정신적·신체적으로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역할, 그 기본적인 역할은 수많은 예외를 낳았지만, '일본제국'의 일원으로서 요구된 '조선인 위안부'의 역할은 그런 것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사랑도 싹틀 수 있었다.

채권자 이유
조선인 위안부들이 자신의 역할을 일본군에게 정신적, 신체적 위로를 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하였는지에 대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그런 역할이었다고 단정하고
극히 예외적인 일부 상호아을 조선인 위안부들과 일본군의 기본적인 관계에서 파생된 것처럼 왜곡하고 있습니다.
조선인 위안부는 원하지 않은 곳에 강제적으로 끌려간 것이고 원하지 않은 성노예 생활을 오랜 기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일본군은 그 직접적인 가해자입니다.
채무자 박유하가 주장하는 것처럼 서로 사랑햇던 위안부와 일본군이 발견된다고 하여 이러한 상황을 마치 조선인 위안부의 역할이 채무자의 주장과 같은 것이었으므로 비롯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조선인 위안부의 처지를 심각히 왜곡하는 것입니다.
조선인 위안부는 자발적으로 군인을 위로하러 간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위로하러 갔다면 훨씬 많은 순애보가 있었을 것입니다.
채권자들은 기본적으로 강제적인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하였고 일본군의 성욕해소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서로 사랑을 했던 남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조선인 위안부의 기본적인 역할 때문이라고 단정하여 적시하는 것은 위안부의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채무자 해명
위의 인용문은 위안부의 증언입니다. 모든 근거는 본서 안에 있습니다. 채권자들은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기본의 생각틀로 이 책을 오독하고 문제시하고 있습니다. 군인에게 <살아서 돌아오라>는 말을 한 사람이 <예외적인 일부 상황>이라고 단정하려면 그 근거를 대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황을 보는 일이 위안부의 비참성을 희석시키는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채무자는 그렇게 말하는 모습 자체가 자신들을 노예화한 국가를 위해 복무해야 하는 구조 속에 있었던 위안부들의 삶의 모순과 아픔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썼습니다.(본서 160쪽)
<조선인 위안부는 원하지 않은 곳에 강제로 끌려간 것이고, 원하지 않은 성노예 생활을 오랜 기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일본군은 그 직접적인 가해자>라는 인식을 부정하기는 커녕, 일본을 비판하는 부분에서 강조하고 있음에도, 위안부의 피해자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채권자들의 독해력의 문제입니다.
<자발적으로 군인을 위로하러 간 것>이든 아니든, 채무자는 그러한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훨씬 많은 순애보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세상에 나온 것만이 역사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만든 말입니다.
<성욕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이 책에서는 부정한 적이 없고 오히려 강조했습니다.(본문 219쪽)

법원 판단
정신적~역할, 조선인~싹틀 수 있었다 부분 삭제

12. 65쪽 17줄
"(우리에 대해서는) 무조건 옷 벗기고 그러지 않지"( 강제5, 133쪽)라는 말에서처럼, 중국인 여성과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군에게는 명확히 다른 존재였다.

채권자 이유
일본군은 식민지 여성 뿐만 아니라 점령지에서도 현지 여성을 강간하거나 위안소에 동원하여 성노예를 강요하기도 하였습니다.
채무자 박유하는 중국인 여성과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군에게는 명확히 다른 존재였다고 하면서 강간을 당한 중국인 여성과 조선인 위안부를 구별하여 조선인 위안부의 피해자성을 약화시키고 있으나 이는 채권자들을 비롯한 조선인 위안부들이 겪은 반복적인 성노예 생활의 피해자성을 왜곡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채무자 박유하는 일본군이 점령지에서 중국인 여자를 강간하였지만 조선인 위안부는 강간하지 않아 중국인 여자와 조선인 위안부는 다른 존재라는 주장을 하나
일본군이 조선인 위안부를 끌고 가 강제적인 성행위를 반복하였고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조선인 위안부가 저항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임을 고려해보면
중국인 여성과 조선인 위안부를 구별하는 것은 조선인 위안부들의 피해자성을 의도적으로 약화하는 것에 다름아닙니다.
만약 강간을 당한 중국인 여성을 조선인 위안부처럼 일본군이 위안소에 구금하고 계속 성노예 생활을 강요하였다면 그 중국인 여성은 죽음으로 저항하거나 조선인 위안부들과 마찬가지로 일본군의 강간에 대하여 무기력해졌을 것이며 실제 일본군 점령지에서 점령지 여성으로 구성된 위안소가 존재했던 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현지에서 강간을 당한 중국인이나 강제, 기망에 의해 위안부가 된 조선인 위안부는 궁극적으로 차이가 없으며 일본군 전쟁범죄의 피해자입니다.

채무자 해명
채권자들은 이 책이 <조선인 위안부의 피해자성을 약화>시키는 것이 된다고 간주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이들은 대부분 위안부의 슬픔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반복하지만 성노예적 생활을 부정하기는커녕, <몇 천번이고 성교를 강요당했다>고 생각하는 군인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인 위안부를 강간하지 않았다>고 쓰기는커녕, 오히려 강간한 내용의 자료를 상세히 인용하였습니다.(본문 143-146쪽)
<현지에서 강간을 당한 중국인이나 강제, 기망에 의해 위안부가 된 조선인 위안부는 궁극적으로 차이가 없으며 일본군 전쟁범죄의 피해자입니다>라고 보는 것은 이제까지 이 문제를 단순히 전쟁범죄로 간주한 채권자들의 인식일 뿐입니다. 그에 대해 조선인 위안부는 식민지 범죄로 보는 것이 채무자인 저의 시각입니다. 어느 쪽이 옳은 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이 할 것입니다.

법원 판단
해당 문구 유지

13. 1부 2장-1 67쪽 12줄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식의 사랑과 평화가 가능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기본적으로는 동지적이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녀들에게는 소중했을 기억의 흔적들을 그녀들 자신이 "다 내삐렸"다는 점이다. "그거 놔두면 문제될까봐"라는 말은, 그런 사실을 은폐하려 한 것이 그녀들 자신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채권자 이유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동지적인 관계에 있었다는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며 조선인 위안부의 명예를 매우 심각히 훼손하는 것입니다.
조선인 위안부들에게 위안부 생활은 절대 소중했을 기억이 될 수 없음에도 채무자 박유하는 지나치게 미시적인 시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있으며 극히 특이한 일부의 사실을 전체인 양 일반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군과 대등한 수단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 사이에 채무자 박유하가 말하는 소위 사랑과 평화가 존재할 수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박유하의 주장처럼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이 동지적 관계 때문에 소위 사랑과 평화가 유지된 것이 아니며 저항할 수 없는 위안부가 가해자인 일본군에 온전히 지배당하였기 때문에 강요된 평화가 유지되었을 뿐입니다.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들이 기본적으로 원하지 않은 곳에 끌려가 원하지 않은 성행위를 끊임없이 강요당했던 여성들임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도저히 동지적 관계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 피해자들에게 "위안부 생활을 햇던 기간에도 즐거운 시간이 있지 않느냐? 왜 그런 시간을 은폐하려고 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일생에서 가장 무기력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강요했던 가해자들과 한 때 즐거웠었던 기억을 상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에 다름아닙니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는 책의 취지와도 전혀 맞지 않은 주장입니다. 채무자가 주장하는 일생의 즐거운 기억?을 상기하는 것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규명하고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통해 문제 해결을 해야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임에도 채무자 박유하는 좃너인 위안부들이 가장 큰 고통을 당하던 시절을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이 동지적 관계였기 때문에 사랑과 평화도 가능했다고 하면서 조선인 위안부들이 즐거웠던 기억가지 은폐하려고 하였다는 사실과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당시 조선인은 일본 국적이었습니다. 따라서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동지적인 관계>를 요구받았습니다. 그런 관계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조선이 일본이 식민지였던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채무자는 <위안부 생활 자체가 소중>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랑과 평화가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표현은 이 질문들이 위안부 자신이 아니라 주변인들, 그리고 대리인들의 의문임을 드러냅니다.
군인들과 사이좋은 모습으로 찍은 과거의 사진들에 마음이 담겨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강요된 평화>라는 것도 대리인들의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조선인 위안부들이 기본적으로 원하지 않은 곳에 끌려가 원하지 않은 성행위를 끊임없이 강요당했던 여성들임을 외면>햇다는 것은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대리인들의 곡해입니다.
위안부가 사진을 내버렸다는 것을 두고 <은폐>했다 하는 것은, 위안부를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기 위한 것입니다. <상기하라고 강요>한 적도 없고, 오히려 은폐하라고 강요해온 이 사회의 무의식의 문제를 지적했을 뿐입니다.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 <그녀들이 자신의 소중한 기억을 버리는 것은 그녀들 자신이 선택한 일이 아니다. 문제 삼을 것으로 여겨진 사회의 억압이다>라고 쓰고 있으니, 채무자의 비판이 위안부가 아니라 지원 단체 및 사회를 향한 것임은 명백합니다. 채권자들의 지적-이런 식으로 앞뒤 문맥을 생략한 지적이야말로 <왜곡>입니다.
9월3일 기제출한 답변서에는 스스로 잣니의 기억을 숨기려 했던 정황을 드러내느 또다른 증언들을 열거해 두었습니다.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4 :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01년)
패전 이후에도 군인과 함게 살기 위해 일본으로 가는 경우도 있었음에도, <사랑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은 그런 상황을 부정하고 싶은 의식의 발로입니다. 그러나 설사 현존위안부들이 그러한 상황과 상관없다 해도 이를 부정하는 것은 그런 증언을 한 다른 위안부에 대해 월권적인 행위일 것입니다.

법원 판단
조선인~관계였기 삭제
그런 사실을 ~ 그녀들 자신 삭제

14. 1부 3장-1 98쪽 1줄

중국뿐 아니라 인도네시아에 있었던 이들의 증언은 조선인 위안부들이 현지인들에게는 '적'의 관계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들 중엔 스스로가 위안소를 경영하는 업자가 된 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일본의 패전이란 우선 그동안의 자신의 위치와 재산을 잃는 일이었다. 그리고 같은 지역에 있었어도 '간호원'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일본군과 함게 쉽게 빠져나온 경우도 있었다. "아무것도 갖고 나오지" 못한 것은 일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말하자면 돈을 벌었던 경우에도 이들은 모든 돈을 잃을 수 밖에 없었고, 그건 그들이 일본의 점령지에 나가 있었던 결과로 일본과 함게 현지에서 쫓겨 달아나야 했던 '준일본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위안부의 가난'은 업주들에게 노예 같은 착취를 당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의 패전'의 결과이기도 하다.
실제로 식민지나 점령지에 나가 있었던 일본인과 조선인 등 '일본 제국'의 구성원들은 갑작스러운 일본의 패전을 맞아 대부분 몸만 빠져나와야 했고, 돌아온 각각의 '조국'에서 오랫동안 차별과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그 부분이 (일본인, 대만인과 함께) '조선인 위안부'가 중국에서 있었던 위안부와도, 다른 동남아시아에 있었던 위안부와도 같은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극명히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채권자 이유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가 중국과 인도네시아 현지 위안부들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반복하면서
일본군과 함게 조선인 위안부는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에서 "적"의 관계에 있었고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군과 더불어 일본 패전의 피해를 입은 것은 "준일본인"이었기 때문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인 위안부는 자신들의 조국땅에서 위안부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머나 먼 제3국에서 끌려가서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하였습니다.
일본여성이 일본에서 강제로, 혹은 기망에 의하여 위안소로 동원되고 성노예 생활을 하였다면 아무리 전쟁을 수행하던 도중이었다고 하더라도 일본 당국은 일본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혔을 것입니다. 조선인 위안부들은 준일본인으로서 보호를 받은 것이 아니라 식민지 여성으로 철저히 성노예로 이용당한 희생자입니다.
일본군이 패전을 한 경우 현지에서 생활할 능력이 되지 않는 조선인 위안부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현지에서 생존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며 현지에서 살 길이 없는 현지를 탈출해야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조선인 위안부가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에게 적으로 취급된 사실이 있다면 이는 현지에 생활기반이 없는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군과 함께 생활하다시피한 것에서 비롯된 오해의 산물일 것이지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군과 같은 역할을 했기 대문은 아닐 것입니다.
일본이 패전하였을 때 현지에 머물 수 있던 현지 위안부들과 달리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군과 함께 패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가 있었던 것을 무시하고 채무자는 마치 조선인 위안부가 준일본인으로서 일본군과 더불어 현지인들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였거나 현지 위안부들과 다른 혜택을 받으면서 가해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조선인 위안부는 중국인 위안부나 동남아시아 다른 위안부와 마찬가지로 궁극저긍로 일본군에 의한 피해자입니다.

채무자 해명
이 글에서 다른 나라의 위안부가 아니라 일반인과의 관계를 말했습니다.
<다른 국적의 위안부들과 비교>하지 않은 문장을 그렇게 간주하는 것은 고소장이 반복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미숙한 독해력을 드러냅니다.
현지인들이 <일본인>으로서 거주한 위안부들을 <적>으로 생각한 것은 자신의 토지를 점령했으니 <사실>입니다. 조선인 위안부 중에는 <머나먼 제3국>뿐 아니라, 일본에서 위안부 생활을 한 이도 있었고, 드러나지 않았으나 조선에도 군인이 주둔했으니 조선 땅에도 위안부는 있었습니다. 일본 땅에 위안부가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유희남 할머니의 경우가 그런 경우입니다.
채권자들과 대리인들의 반발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이해들이 달라지는 데 대한 반발입니다. 조선 땅에서 배를 탄 위안부 중에는 <일본 여성>도 있었습니다. 위안부 모집에서 일본인 여성과의 차이를 굳이 보려는 것은 여성 인권을 말하면서 조선인만을 소중히 생각하는 인식이 드러나는 모순입니다.
거듭 말해온 것처럼 조선인 위안부가 그동안의 생각되어오던 범주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을 기술하는 이유는 이 문제를 명확히 보기 위한 학자적 탐구의 결과일 뿐입니다. 일본의 악독함만을 주장하는 논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부분을 명확히 보고 그런 아이러니를 만든 것이 <일본 제국>이었다는 인식이야말로 일본의 반성을 촉구할 수 있다는 것이 채무자의 생각입니다.

법원 판단
해당 문구 유지

15. 1부 3장-1 99쪽 5줄
버마의 양곤(랑군)에 있다가 전쟁 막바지에 폭격을 피해 태국으로 피신했던 이 위안부 역시 일본군의 안내로 일본까지 왔다가 귀국한 경우다. 이들이 '전쟁범인', 즉 전범들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된 이유는 이들이 '일본군'과 함께 행동하며 '전쟁을 수행'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설사 그들이 가혹한 성노동을 강요당했던 '피해자'라고 해도 '제국의 일원'이었던 이상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채권자 이유
채무자 박유하는 전쟁범죄의 피해자이자 일본군 성노예였던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군과 함께 행동하면서 전쟁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전범들이 있는 곳으로 가게되었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군과 함께 전쟁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전범들이 있는 곳으로 간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방법으로 전쟁터를 벗어날 방법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군과 함께 전범들이 있는 곳으로 끌려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채무자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현지 위안부, 즉 조선인 위안부와 마찬가지로 일본군에 대한 성노예 생활을 하였던 현지 위안부들도 조선인 위안부들과 마찬가지로 일본군 전범과 함께 움직였어야 할 것입니다. 성노예 생활을 한 현지 위안부들 역시 채무자의 논리라면 일본군과 함께 전쟁을 수행한 것에 다름없습니다.
채무자 박유하는 전쟁범죄 피해자인 조선인 위안부를 일본군과 함께 전쟁ㅇ르 수행하였다고 반복하여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당시의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으며, 국권이 없는 국가의 백성이었던 조선인 여성들은 <제국 일본>의 통치를 받는 식민지 백성으로서 위안부에 모집되었습니다. 국가의 전시 통치 체계에서 조선인 여성들이 위안부로서 함께 다니며 군인을 <위안>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했던 것은 그 결과일 뿐입니다.
본서에 언급된 수류탄을 나르고 총쏘기를 배우고 간호를 배우는 행위는 적극적 의지가 담겨 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전쟁수행> 행위입니다. 채무자는 그것이 일본의 강요로 이루어졌다고 썼습니다.

법원 판단
전쟁범인~때문이다 삭제


삭제된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부분에 대한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 교수의 논쟁 - 1 박유하와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교수 페이스북을 뒤져보니 지난해 2월 '제국의 위안부' 가처분이 났을 당시 박 교수와 원고 측(위안부 할머니들)의 입장이 모두 담긴 자료가 올라와 있다. 

페이스북 자체가 검색이 어려운 관계로 여기에 해당 내용을 옮겨 싣는다. 일단 사진파일은 1번 글에 모두 담아 놓고, 전체 텍스트는 분량이 많은 관계로 읽으면서 타이핑 하면서 나눠서 담으려 한다.

강조와 밑줄 표시는 파일에 나온 그대로를 따랐다. 원본에 그렇게 나온 것인지 박 교수가 임의로 강조와 밑줄을 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글에서 채권자는 위안부 할머니들이고, 채무자는 박유하 교수다.

parkyouhaa.zip - 제국의 위안부 삭제요구 53개항과 위안부 할머니, 박유하 측의 주장 파일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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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 표현 중 명예훼손 부분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입니다.

1. 1부 1장-1 19쪽 8줄

센다는 '위안부', '군인'과 마찬가지로, 군인의 전쟁수행을 자신의 몸을 희생해가며 도운 '애국'한 존재라고 이해하고 있다. 국가를 위한 군인들의 희생에 대한 보상은 있는데 왜 위안부에게는 없느냐는 것이 이 책의 관심사이자 주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센다의 시각은 이후에 나온 그 어떤 책보다도 위안부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다.

채권자 이유
채무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성노예 생활을 자신의 몸을 희생해가며 애국을 한 것이라고 여기고 이에 대하여 일본정부는 보상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채무자의 시각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애국에 대하여 일본 정부가 법적책임을 인정하거나 잘못을 빌 이유가 없는 것이며 희생에 대한 보상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채무자가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잘못 파악한 것에 비롯된 것에 불과합니다.
조선인 '위안부'를 일본 출신 위안부처럼 일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애국하는 존재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희생과 애국은 자발성을 전제로 한 것인데 강제나 기망에 의해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조선인 위안부들을 자신을 희생해 애국한 존재라고 표현하는 것은 전혀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채권자를 포함한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성노예 생활을 한 피해자임을 외면한 주장입니다.
그럼에도 채무자 박유하는 일본인 위안부에 대한 센다의 견해를 인용하면서 조선인 위안부들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애국한 존재라고 표현하여 채권자를 포함한 조선인 '위안부'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는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보상의 정당성을 위해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엿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조선인 위안부의 본질을 왜곡하면서까지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채무자 해명
채권자 측은 근본적인 오해 및 곡해를 하고 있습니다.
9월 3일의 답변서에서도 설명했듯 이  책에서 <애국>이라 말한 것은 <애국>을 당했다고 말하기 위함이고 그렇게 해야 하는 구조 속으로 몰아넣은 식민 지배구조를 비판하기 위한 것입니다. 정확히는 <애국을 위한 동원>을 당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조선인 일본군들 역시 마찬가지고, 군인들에 대한 보상은 있었으니 책임과 보상을 하라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채권자들이 반발하는 것은, 조선이 식민지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채권자들은 <희생과 애국은 자발성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강제나 기망>의 주체는 직접적으로는 일본군이 아닙니다. 위안소를 만들고 모집한 것은 사실이지만, <강제나 기망>의 주체는 업자들이었고 그렇다는 사실이 파악될 경우, 일본군들은 끌려온 이들을 되돌려 보내거나(본문76쪽) 다른 곳에 취직시키기도 했습니다.(한구위안소-추가제출)
당시의 조선 여성들은 일본 여성과 마찬가지로 <국방부인회>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본문61쪽). 황국신민서사를 외우고 함께 수류탄을 나르기도 했습니다(본문58쪽). 표면적인 구조가 <일본인>으로서 참여해야 했던 이상, 그건 당연히 요구되는 일이었습니다. 채권자들이 애국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그러한 정황을 그동안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서에서 말했듯 위안부들이 처한 상황은 같지 않습니다. 따라서 생존해 있는 일본군위안부들이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지 않았을 수 있고, 그들을 특정한 것이 아니므로 명예훼손이 될 수가 없습니다.
채무자들은 본서에서 위안부들의 명예를 훼손시키기는커녕 그들이 처한 시대적 상황을 보다 명료하게 드러냄으로써 일본인들의 반성적 자각을 요구하려 했습니다. 위안부가 동원되는 과정에서 <애국>이라는 시대적 프레임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본서에서 제시한 자료 이외에도 9월 3일에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였습니다. 일본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애국>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에게 일본어를 강요한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법원 결정 : 해당 문구 삭제

2. 1부 1장-2 31쪽 19줄

그것은 분명 국가의 부조리한 책략이었지만, 외국에서 서러운 음지생활을 하던 그들에게는 그 역할은 자신에 대한 긍지가 되어 살아가는 힘이 되었을 수 있다.

채권자 이유
조선인 '위안부'를 일본을 위해 애국햇던 "애국자"의 역할을 담당했던 존재라고 전제한 후, '위안부'로서의 역할이 삶의 긍지가 되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조선인 위안부들이 원하지 않은 성노예 생활을 하며 비참하게 생활한 전쟁범죄의 피해자임에도 오히려 성노예 생활을 삶의 긍지의 원천이 될 수 있었다고 왜곡하여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이 부분은 일본인 위안부에 관한 서술입니다. 따라서 문제시될 이유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본서의 다른 부분-일본을 비판하는 부분에서 채무자는 위안부의 <비참한 생활상>에 대해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채권자들의 주장은 그런 부분을 도외시한 주장입니다.

법원 결정 : 해당 문구 유지

3. 1부 1장-2 32쪽 3줄

'가라유키상의 후예.' '위안부'의 본질은 실은 바로 여기에 있다.

채권자 이유
채무자 박유하는 가라유키상들이 해외로 진출하여 자발적으로 성을 팔아 돈을 벌고 이들을 통하여 일본 경제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여 일본 국가의 국민으로서 당당할 수도 있었다고 기술한 후 위 가라유키상의 후예가 바로 '위안부'의 본질이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즉 채권자를 포함한 조선인 위안부를 역시 가라유키상의 후예로 일본군을 상대로 성을 팔아 돈을 벌고 국민의 일원으로서 당당할 수도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어 강제로 성노예 생활을 했던 조선인 위안부의 처지를 심각히 왜곡하고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 해명
<가라유키상의 후예를 위안부>로 보는 것은 저의 학문적 판단입니다. 또한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본 서안에 많은 근거자료를 기술하였습니다. 위안부의 기본구조가 관리매춘임은 위안부들 자신의 증언에 나오는 사실입니다. <강제로 성노예 생활>을 시킨 것도 구조적으로는 일본군이나 직접적으로는 업자입니다. 그 사실을 기술한 것이 <위안부의 처지를 왜곡>하는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법원 결정 : 해당 문구 삭제

4. 1부 1장-2 33쪽 7줄

'위안부'의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이 일본인 창기의 고통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중략)
그리고 '조선인 위안부'라는 존재가 생기게 된 것은 이들의 위치를 조선인 여성들이 대체한 결과였다.

채권자 이유
의사에 반해 성착취를 당했던 조선인 위안부를 경제적 이유로 자발적인 의사에 의하여 성을 팔았던 일본인 창기와 동일시하고 그들의 고통이 서로 다르지 않다고 사실을 왜곡하여 채권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채무자는 일본군의 필요에 의하여 조직적으로 성노예로 동원된 조선인 위안부를 경제적 이유로 자발적으로 창기가 된 일본 여성과 동일시하고 있어 조선인 위안부의 처지를 심하게 왜곡하고 있습니다.
조선인 위안부들은 강제나 기망에 의하여 위안소에 끌려가 강제 성노예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피해는 일본군의 조직적인 위안소 설치와 동원에 의한 것이지 가난과 남성우월주의적 가부장제 때문에 일본인 창기를 대체한 것이 아닙니다.
일본은 자국 여인들에 대한 대규모 조달이 불가능하여 식민지 조선여인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한 것입니다.

채무자 해명
<의사에 반해 성 착취를 당했던 조선인 위안부>라는 틀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의사에 반하>도록 만든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업자의 존재를 부각하는 것은 일본군의 책임을 부정하는 일이 되기는커녕 그러한 협력체계를 만든 식민지배구조를 비판하는 일이 본서의 목적입니다.
<일본인 창기>와 그 고통이 같지 않다고 주장하는 일은(물론 조선위안부와 일본인위안부간에 차별이 있었다는 것은 본서에 기술한 바 있습니다.)
채권자들의 일본인위안부와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문제를 여성문제라 하면서도 매춘에 대한 차별의식과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도 겪어야 했던 고통은 도외시하려는 채권자들의 의식을 드러냅니다. 설사 창기출신이라 하더라도 가부장제와 국가주의가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동원한 가난한 여성들의 고난은 일본인이나 조선인이나 기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이 곧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채권자들은 <가난과 남성 우월적 가부장제>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저의 학문적 견지에서 본 시각일 뿐 찬성하지 않는다 하여 부정되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본서에 쓴 것처럼 강제의 직접적 주체는 업자나 유괴범들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난과 가부장제>가 위안부의 비극의 원인이라는 것은 2005년 본인이 지적한 이후, 다른 연구자들도 말하고 있습니다.
<자국 여인들에 대한 대규모 조달이 불가능하여 식민지 조선 여인들을 동원했다>는 지적은, 바로 그러한 동원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식민지 지배라는 인식이 부재하는 지적입니다. 근거가 있는 이상, 저의 학문적 판단자체가 부정되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일본인 위안부는 환경이 좋은 곳에서 일하고 조선인 위안부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양쪽 다 전쟁터에서 군인들과 함께 쫓겨 다니다 폭격을 당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폭격이 아니라 이른바 옥쇄를 하는 경우 일본군과 함께 죽는 건 일본인 위안부였습니다. 채권자의 해석은 전후 문맥이나 근거자료를 생략한, 자의적인 지적입니다.

법원 결정 : '위안부의~필요가 있다'는 구절만 삭제

5. 38쪽 4줄

그에 따라 업자에게 의뢰하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일반적인 '위안부'의 대다수는 '가라유키상'같은 이중성을 지닌 존재로 보아야 한다.

채권자 이유
일본군의 필요에 의하여 위안부를 모집한 경우도 있지만 위안부의 대다수는 자발적으로 성을 팔았던 가라유키상 같은 이중성을 지닌 존재라고 기술하여 채권자를 포함한 조선인 위안부 대다수가 자발적으로 성을 판 가라유키상과 같은 입장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라고 표현할만한 구체적 근거가 없으며 의사에 반해 일본군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수단에 이용된 조선인 위안부를 자발적인 성판매자인 가라유키상과 동일시하고 있어 심각한 명예훼손을 하고 있습니다.
채권자들은 강제나 기망에 의하여 끌려가 강간을 당한 후 성노예 생활을 한 것이지 결코 자발적으로 성을 매매하러간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채권자들을 가라유키상과 동일시하는 것은 피해자의 피해를 왜곡하는 허위 사실입니다.

채무자 해명
<가라유키는 자발적으로 성을 팔았다>면서 위안부와 가라유키 사이에 차이를 보려 하는 지적은 앞에서 본 것처럼 위안부의 상황이 임노동이 아니었다는 것을 강조하려 한 지적입니다. 채무자는 <위안부는 자발적으로 간 사람>이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본서는 사실을 정확히 보되 그런 사실을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보다 정확하게 보는 일을 통해 일본을 비판/설득하기 위한 책입니다.
이 부분의 강조점은 가라유키와 위안부가 똑같다는 것이 아니라 양쪽 다 국가의 필요에 의해 동원된 존재라는 점입니다. 채권자의 지적은 다중의 독자(한국, 일본, 지원자, 부정자, 일본 정부 등)를 상대로 각각에 필요한 논지를 펼치고 있는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강간 후 성노예 생활을 했다>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한 측면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본서에 다수 인용한 기존의 증언집이 보여줍니다.

법원에서 삭제한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의 34곳 박유하와 '제국의 위안부'

(위안부 할머니들과 박유하의 논쟁 1회 참고)

제국의 위안부는 2013년과 2015년 두 번 출간됐다. 2013년 8월에 출간된 것이 원본이고, 이후 법원의 판결에 따라 34곳을 삭제한 판이 2015년 6월 16일 나왔다.

삭제된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이제와서 2013년 판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국회도서관에 가면 찾을 가능성이 있겠지만 게으른 관계로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뜻밖에 2015년 2월 17일 법원이 내린 가처분 결정이 인터넷에 떠 있었다. 물론 이것이 실제 가처분 문서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하나, 박유하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가처분 결정 사진을 볼 때, 맞는 내용으로 보인다.

결정문의 별지2에는 제국의 위안부 2015년판에서 삭제된 34곳이 나와 있다. 해당 문서에서 전문을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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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내용
1 19쪽 센다는 ‘위안부’를, ‘군인’과 마찬가지로, 군인의 전쟁 수행을 자신의 몸을 희생해가며 도운 ‘애국’한 존재라고 이해하고 있다. 국가를 위한 군인들의 희생에 대한 보상은 있는데 왜 위안부에게는 없느냐는 것이 이 책의 관심사이자 주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센다의 시각은 이후에 나온 그 어떤 책보다도 위안부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었다.

2 32쪽 ‘가라유키상의 후예.’ ‘위안부’의 본질은 실은 바로 여기에 있다.

3 33쪽 ‘위안부’의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이 일본인 창기의 고통과 기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는 점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4 38쪽 그에 따라 업자에게 의뢰하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일반적인 ‘위안부’의 대다수는 ‘가라유키상’같은 이중성을 지닌 존재로 보아야 한다.

5 38쪽 그러나 ‘위안부’들을 ‘유괴’하고 ‘강제연행’한 것은 최소한 조선 땅에서는, 그리고 공적으로는 일본군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수요를 만든 것이 곧 강제연행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6 61쪽 그녀들이 ‘황국신민서사’를 외우고 무슨 날이면 ‘국방부인회’의 옷을 갈아입고 기모노 위에 띠를 두르고 참여한 것은 그래서였다. 그것은 국가가 멋대로 부과한 역할이었지만, 그러한 정신적 ‘위안’자로서의 역할-자기 존재에 대한 (다소 무리한) 긍지가 그녀들이 처한 가혹한 생활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7 62쪽 “응모했을 때도 그랬지만, 이런 몸이 된 나도 군인들을 위해 일할 수있다, 나라를 위해 몸바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네들은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자유로워져서 내지에 돌아가도 다시 몸 파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성들은 군인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돈도 벌고 싶었겠지만요.(26쪽)”
물론 이것은 일본인 위안부의 경우다. 그러나 조선인 위안부 역시 ‘일본제국의 위안부’였던 이상 기본적인 관계는 같다고 해야 한다.

8 65쪽 가족과 고향을 떠나 머나먼 전쟁터에서 내일이면 죽을지도 모르는 군인들을 정신적ㆍ신체적으로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역할. 그 기본적인 역할은 수없는 예외를 낳았지만, ‘일본 제국’의 일원으로서 요구된 ‘조선인 위안부’의 역할은 그런 것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사랑도 싹틀 수 있었다.

9 67쪽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이런 식의 사랑과 평화가 가능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기본적으로는 동지적인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녀들에게는 소중했을 기억의 흔적들을 그녀들 자신이 “다 내삐렀”다는 점이다. “그거 놔두면 문제될까 봐”라는 말은, 그런 사실을 은폐하려 한 것이 그녀들 자신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10 99쪽 버마의 양곤(랑군)에 있다가 전쟁 막바지에 폭격을 피해 태국으로 피신했던 이 위안부 역시 일본군의 안내로 일본까지 왔다가 귀국한 경우다. 이들이 ‘전쟁범인’, 즉 전범들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된 이유는 이들이 ‘일본군’과 함께 행동하며 ‘전쟁을 수행’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설사 그들이 가혹한 성노동을 강요당했던 ‘피해자’라고 해도 ‘제국의 일원’이었던 이상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11 112쪽 조선인 여성이 위안부가 된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른 경제활동이 가능한 문화자본을 갖지 못한 가난한 여성들이 매춘업에 종사하게 되는 것과 같은 구조 속의 일이다.

12 120쪽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이들은 ‘위안’을 ‘매춘’으로만 생각했고 우리는 ‘강간’으로만 이해했지만, ‘위안’이란 기본적으로는 그 두 요소를 다 포함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위안’은 가혹한 먹이사슬 구조 속에서 실제로 돈을 버는 이들은 적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수입이 예상되는 노동이었고, 그런 의미에서는 ‘강간적 매춘’이었다. 혹은 ‘매춘적 강간’이었다.

13 130쪽 아편은 하루하루의 고통을 잊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증언에 의하면 대부분은 ‘주인’이나 상인들을 통한 직접사용이었다. 군인과 함께 사용한 경우는 오히려 즐기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14 137쪽 일본인․ 조선인․ 대만인 ‘위안부’의 경우 ‘노예’적이긴 했어도 기본적으로는 군인과 ‘동지’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다시 말해 같은 ‘제국일본’의 여성으로서 군인을 ‘위안’하는 것이 그녀들에게 부여된 공적인 역할이었다. 그들의 성의 제공은 기본적으로는 일본 제국에 대한 ‘애국’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15 158쪽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그런 유의 업무에 종사하던 여성이 스스로 희망해서 전쟁터로 위문하러 갔다”든가 “여성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위안부를 하게 되는 경우는 없었다”(기무라 사이조)고 보는 견해는 ‘사실’로는 옳을 수도 있다.

16 160쪽 오히려 그녀들의 ‘미소’는 매춘부로서의 미소가 아니라 병사를 ‘위안’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애국처녀’로서의 미소로 보아야 한다(『화해를 위해서』).

17 160쪽 식민지인으로서, 그리고 ‘국가를 위해’ 싸운다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있는 남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민간인’‘여자’로서, 그녀들에게 허용된 긍지 – 자기 존재의 의의, 승인-는 “국가를 위해 싸우는 병사들을 위로해주고 있다”(기무라 사이조)는 역할을 긍정적으로 내면화하는 애국심뿐이었을 수 있다.

18 190쪽 한 개인으로서의 ‘위안부’의 또 다른 기억이 억압되고 봉쇄되어온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일본 군인과 ‘연애’도 하고 ‘위안’을 ‘애국’하는 일로 생각하기도 했던 위안부들의 기억이 은폐된 이유는 그녀들이 언제까지고 일본에 대해 한국이 ‘피해민족’임을 증명해주는 이로 존재해주어야했기 때문이다. ‘위안부’들에게 개인으로서의 기억이 허용되지 않았던것도 그 때문이다. 그녀들은 마치 해방 이후의 삶을 건너뛰기라도 한것처럼, 언제까지고 ‘15살 소녀 피해자’이거나 ‘싸우는 투사 할머니’로 머물러 있어야했다.

19 191쪽 그러나 국가가 군대를 위한 성노동을 당연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에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았던 이상 그것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 강제연행과 강제노동 자체를 국가와 군이 지시하지 않는 이상(일본군의 공식 규율이 강간이나 무상노동, 폭행을 제어하는 입장이었던 이상) 강제연행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일본국가에 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시 말해 위안부들에게 행해진 폭행이나 강제적인 무상노동에 관한 피해는 1차적으로는 업자와 군인 개인의 문제로 물을 수밖에 없다.

20 205쪽 그러나 실제 조선인 위안부는 ‘국가’를 위해서 동원되었고 일본군과 함께 전쟁에 이기고자 그들을 보살피고 사기를 진작한 이들이기도 했다. 대사관 앞 소녀상은 그녀들의 그런 모습을 은폐한다

21 206쪽 그녀들이 해방 후 돌아오지 못했던 것은 일본뿐 아니라 우리 자신 때문이기도 했다. 즉 ‘더럽혀진’ 여성을 배척하는 순결주의와 가부장적인식도 오랫동안 그들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있는 것은 단지 성적으로 더럽혀진 기억만이 아니다. 일본에게 협력한 기억, 그것 역시 그녀들을 돌아오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말하자면 ‘더럽혀진’ 식민지의 기억은 ‘해방된 한국’에는 필요하지 않았다.

22 206쪽 그런 한, ‘피해자’ 소녀에게 목도리를 둘러주고 양말을 신겨주고 우산
을 받쳐주던 사람들이, 그녀들이 일본옷을 입고 일본이름을 가진 ‘일본인’으로서 ‘일본군’에 협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똑같은 손으로 그녀들을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23 207쪽 협력의 기억을 거세하고 하나의 이미지, 저항하고 투쟁하는 이미지만을 표현하는 소녀상은 협력해야 했던 위안부의 슬픔은 표현하지 못한다.

24 208쪽 홀로코스트에는 ‘조선인 위안부’가 갖는 모순, 즉 피해자이자 협력자라는 이중적인 구도는 없다.

25 215쪽 그러나 일본 정부는 사죄했고 2012년 봄에도 다시 사죄를 제안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정대협이 주장하는 국회입법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없다. 그 이유는 1965년의 조약, 그리고 적어도 ‘강제연행’이라는 국가폭력이 조선인 위안부에 관해서 행해진 적은 없다는 점, 있다고 한다면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사례여서 개인의 범죄로 볼 수밖에 없고 그런 한 ‘국가범죄’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점에 있다. 

26 246쪽 1996년 시점에 ‘위안부’란 근본적으로 ‘매춘’의 틀 안에 있던 여성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27 265쪽 조선인 위안부는 같은 일본인 여성으로서의 동지적 관계였다.

28 265쪽 그 이유는 ‘조선인 위안부’가 ‘전쟁’을 매개로 한, 명확히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로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식민지배하에서 동원된 ‘제국의 피해자’이면서, 구조적으로는 함께 국가 협력(전쟁 수행)을 하게 된 ‘동지’의 측면을 띤 복잡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29 291쪽 ‘조선인 위안부’란 “이렇게 해서 조선이나 중국의 여성들이 일본의 공창제도의 최하층에 편입되었고, 아시아 태평양전쟁기의 ‘위안소’의 최대 공급원”(110쪽)이 되면서 생긴 존재였다.

30 294쪽 그들이 그렇게 전쟁터에까지 함께 가게 된 건 똑같이 ‘일본 제국’의 구성원, ‘낭자군’으로 불리는 ‘준군인’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31 294쪽 그녀들이 ‘낭자군이라고 불렸던 것은 그녀들이 국가의 세력을 확장하는 ‘군대’의 보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32 294쪽 ‘조선인 위안부’는 피해자였지만 식민지인으로서의 협력자이기도 했다.

33 296쪽 그리고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는 이미지를 우리가 부정해온 것 역시그런 욕망,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34 306쪽 중국이나 네덜란드와 같은 일본의 적국 여성들의 ‘완벽한 피해’의 기억을 빌려와 덧씌우고, 조선 여성들의 ‘협력’의 기억을 벗겨낸 소녀상을 통해 그들을 ‘민족의 딸’로 만드는 것은, 가부장제와 국가의 희생자였던 ‘위안부’를 또 다시 국가를 위해 희생시키는 일일 뿐이다.


길원옥 할머니 증언자료 당사자 증언 원문자료




* 원글링크 (여성가족부)
* 사진링크 (여성가족부)
* 게시일시 : 2006년 12월 16일, 수정 2014년 11월 10일
* 정리자 : 불명.
* 비고 : 길 할머니는 이용수 할머니와 더불어 2016년 1월 기준으로 수요시위에 가장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분임.

길원옥 할머니 약력
1928년 10.23            평안북도 희천 출생 (주민등록상은 1927년 9월 10일생)
1940년  (13세)          겨울에 만주 하얼빈으로 연행 
1941년 (14세)           요꼬네 병을 얻어 귀국
1942년 경 (15세 경)   중국 석가장으로 연행
1945년 (18세)           인천으로 귀국
1948년 경 (2세 경)    충북 온양에서 사별한 남자와 결혼생활 / 술집에 다니며 생계유지
1954년 (27세)           유부남 황씨와 동거 시작 / 부천에서 만물상, 노점상, 도매상 등 장사를 하며 생계유지
1958년 (31세)           양자 얻음
1976년 경 (49세 경)   빚보증을 잘 못 서서 생활이 어려워짐
1998년  (71세)          위안부 신고
2002년  (75세)          현재 정부 보조금으로 부천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음




길원옥 할머니 증언 읽기

박유하 교수 '제국의 위안부'에 나온 심미자 할머니 박유하와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2년 정도 전에 도서관에서 읽긴 했다. 이미 책과 관련한 논란이 한창일 때로 기억한다. 

당시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확실히 이 책은 논란이 될 만한 책이다. 애초에 저자가 논란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일부 대목은 곱씹어볼 부분도 있다. 조선인 위안부 vs 일본 제국의 대립구도에서 잊은 것은 무엇인가, 조선인 위안부를 일본에 팔아넘긴 '조선인'들은 어디로 갔는가.

실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보면 조선인 협력자들의 모습을 희미하게나마 발견할 수 있다. 김복동 할머니 증언을 보면 "동네의 구장과 반장"이 일본 사람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에도 "저쪽 언덕 위에 서 있는 웬 노인"이 등장한다. 뉴라이트 성향으로 욕은 먹고 있지만 서울대 박지향 교수도 '제국주의'에서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인 협력자들에 주목한 바 있다.

할 수만 있다면 할머니들을 위안부로 넘긴 조선인 협력자들도 친일파로 법적, 역사적 심판을 받게 해야 마땅하지만 이제와서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찾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애초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다. 심미자 할머니에 관한 것이다.

위안부 관련한 자료들을 검토해보니 '심미자'라는 이름이 계속해서 나온다. 심 할머니는 정대협 초기 김학순 할머니와 함께 운동을 이끌었고, 아세아여성기금 논란 때도 기금에 대해 분명히 반대 입장을 취했다. 이후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대협의 노선에 반대해 다른 할머니들과 함께 '세계평화무궁화회'를 만들고, 여기에 속한 33명의 할머니들이 '진짜 위안부'라는 주장을 해오신 모양이다. 심 할머니가 남긴 자료를 보면 일본 대법원으로부터도 일본군 위안부라는 것을 인정받았다고 하나 배상은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추정이지만 세계평화무궁화회 33인 중 상당수는 아세아여성기금을 수령한 분들로 보인다.

내가 잘못 아는 것이 아니라면, 박유하 교수 역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피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그에 걸맞는 배상을 하길 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해법이 정대협의 정통적인 해법과는 다른 수정주의적인 노선일 뿐이다.

그렇다면 정대협과 다른 노선을 취했던 심미자 할머니에 대해 박 교수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리가 없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내 기억에는 박 교수 책에 '심미자'란 이름이 언급된 일이 없다. 

그래서 다시 뒤져보았다. 역시 '심미자'란 이름은 없다. 하지만 박 교수가 심 할머니를 만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은 찾을 수 있었다.

2부 1장의 5. 소거되는 기억들 에서 두 사람의 인터뷰 내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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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0년 전 일이지만, 위안부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 혼자 나와 사는 '위안부' 할머니가 있었다. 그 녀는 개를 키우며 혼자 살고 있었는데, 나눔의 집이 싫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착오로 일본 군인과 헤어지게 된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할머니에게 나눔의 집이 불편했던 것은, 그 공간이 사랑의 기억을 품어주는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완벽한 피해자'의 기억만이 필요한 공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보상금을 받은 위안부들이 아직껏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피해의 기억만이 필요한 곳에서는 화해의 기억은 배제된다. 기금을 받았거나 일본군을 사랑한 위안부들의 이야기는 결코 '위안부 이야기'가 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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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자 할머니가 생전에 남긴 자료를 보면 심 할머니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관음2리의 한 빌라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나눔의집이 있는 광주시 원당리와는 상당한 거리(100미터보다는 멀어 보인다)가 있지만, 나눔의 집 근처에 살고 있었던 것은 맞다.

또한 심미자 할머니는 '스즈키'라는 일본군 헌병 대위에게 연애 감정을 가졌다고 한다. 시티뉴스에 나온 심 할머니의 증언 내용(2002년 10월 11일 이토 다카시가 기록한 것으로 되어 있음)은 다음과 같다. 원문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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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자(沈美子) 할머니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성병치료 606호 주사를 너무 많이 맞았기 때문에, 아기집이 삭아서 결혼을 해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들 하는 사랑하는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심미자(沈美子)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에게‘자식’이 3명이 있다.
 
기꾸부대 “위안소”에서 대마도 출신의 스즈키라는 헌병대위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일본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성병에 걸린 군인들에게 주사 놓아주는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해방 후에, 후쿠오카의 운동화 고무바닥을 붙이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 스즈키가 3살짜리 여자 아이를 데리고 와서 고향에 데려 갈수 없으니 맡아 달라고 했습니다.

나의 성병 치료를 위해 많은 돈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바락<하꼬방>도 사주었습니다. 그것은, 스즈키가‘첩’에게서 낳은 아이를 나에게 돌보게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귀국할 때, 그 아이를 한국에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를 심미자(沈美子)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는, ‘너무 정이 들었기 때문에’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이유만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위안소”라는 지옥과도 같은 상황에 내던져진 소녀가 특정한 일본 병사를 좋아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가해 행위를 강력히 규탄하는 심미자(沈美子)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에게 분명히 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친절히 다가 온 스즈키에게 헌병대장에게 심미자(沈美子) 할머니는 연애감정을 가졌던 것이다. 
 
패전으로 심미자(沈美子) 할머니는 자유의 몸이 되어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지만, 스즈키에 대한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스즈키의 아이를 맡은 것은 심미자(沈美子) 의 적극적은 의사가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심미자(沈美子) 할머니가 한국에 데려 온 그 여자 아이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던 한국어를 금방 배우게 되었다.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 채 ‘한국인’으로 자라나, 결혼하여 두 명의 아이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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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할머니가 스즈키의 딸을 데려와서 키웠고, 링크의 뒷부분에 보면 그 외에도 해방 이후 2명의 아이를 더 입양했다는 내용이다. 분명 평범한 한국인의 머릿 속에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물론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다. 스즈키라는 이름은 흔하지만 '대마도' 출신의 '헌병 대위'이기 때문에 어쩌면 특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심 할머니 증언의 역사적 진실성을 검토한 연구 성과는 발견한 바 없고, 내가 일본어를 거의 하지 못하기 때문에 혼자서 알아내기는 어려울 듯 하다.

아세아여성기금을 받았다는 60명의 할머니들은 누구일까. 아세아여성기금 관련자료

2014년 2월, 와다 하루키 교수는 아세아여성기금을 받은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가 60명이라고 밝혔다.

아세아여성기금은 1995년 7월 일본에서 출범한 사단법인이다. 일본 정부가 기금액의 상당부분을 냈지만, 이 기금은 일본 정부가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일본 국민들이 '도의적 책임'을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기금이 출범한 이후 아세아여성기금을 받았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말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심미자 등 몇몇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아세아여성기금을 둘러싼 이견 때문에 결국 정대협과 갈라진 것으로 보인다.

심 할머니를 비롯한 33인은 자신들이 진짜 위안부 피해자라며 '무궁화 친목회'를 결성하고, 여기에는 아세아여성기금을 받은 할머니들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심 할머니의 유언이라는 타이틀로 올라온 시티뉴스 기사에는 아세아여성기금을 받은 7명의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름이 나온다.

김경순(金卿順), 문부전(文富全), 박복순(朴福順), 여복실(呂福實), 가명임(假名任), 정복수(鄭福壽), 진경팽(陳慶彭) 총 7명이다. 이 중 중간에 '가명임'의 경우 실명은 아닌 듯 하다.(가씨는 賈 자를 쓰지 않을까?) 시티뉴스 다른 기사에 나온 사진에서 볼 수 있듯 '가명임'은 이름이 아니라 그냥 가명이라는 뜻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심 할머니 등 '33인'에 이름을 올린 할머니들 중 상당수는 아세아여성기금을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33인'의 명단이 공개된 것을 찾지 못했기에 일단은 이름이 나온 6분의 할머니와 심미자 할머니가 현재 어떻게 계시는지만 알아봤다.

심미자 할머니는 2008년 2월 27일 별세했다.
김경순 할머니는 지난해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 일본 정부 등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대해 사과하고 피해를 배상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동명이인이 아니라면 같은 김경순 할머니일 것으로 보인다. 한일 위안부 협상에 대해 위안부 할머니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린다는 내용의 연합뉴스 기사에 나온 유희남 할머니가 김 할머니와 함께 원고로 참여했다.
문부전, 진경팽 할머니는 2007년 5월 2일, 5월 10일 별세했다.
여복실 할머니는 2008년 4월 7일 별세했다.
정복수 할머니는 나눔의 집에 계시다. 나눔의 집 홈페이지에 따르면 정 할머니는 1916년생으로 올해 101세가 되셨다. 나눔의집 홈페이지에 지난해 10월 26일 자로 집중치료실에 계시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지난해 12월 29일에는 한일 협상 경과를 설명하러 온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의 설명을 직접 들으셨다.

위에 나온 김경순 할머니의 법률 대리인인 김형진 변호사가 지난 1월 8일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한 바 있다. 여기서 김형진 변호사는 한일 위안부 협상에 대해 "이번 합의가 상당히 저희는 정부가 신경을 많이 쓰고 잘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의 "잘 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김 변호사가 말하는 것은 합의의 '내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 변호사는 이번 양국 합의가 김 할머니가 진행하는 소송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어쨌든 한일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문에서 일본은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함"이란 표현을용했다.

김 변호사의 논리는 이렇다. 미국에서 진행중인 소송 과정에서 피고인 일본 정부 등이 한일 협상의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면 협상 자체가 하나마나였다는 것을 일본이 자인하는 셈이다. 반대로 위 합의가 유의미한 합의였다고 일본이 미국 법정에서도 인정한다면, 미국 법원은 일본 정부가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 인터뷰에서 김 변호사는 "일본 법원이 아주 일관성 있게 우리 피해자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 말에서 나는 아세아여성기금의 복합적인 성격을 읽을 수 있었다.

일단 아세아여성기금은 일본 정부가 주도적으로 만든, 하지만 형식적으로는 일본 민간이 만든 기금이다. 일본 정부는 아세아여성기금을 통해 전체의 1/4인 60명의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속죄금'을 포함해 1인당 500만엔을 지급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았다는 일각의 주장은 거짓이지만 진실이다. 일본 정부의 돈이 일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흘러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 돈을 지급한 주체는 일본 정부가 아닌 와다 하루키 교수 등 일본 민간이었기 때문이다. 즉, 일본 정부는 일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한 바는 있으나, 자신의 행위가 불법입을 인정하는 '배상'은 한 바가 없다.

범죄자의 친구들이 모금을 했고, 거기에 범죄자는 슬쩍 자신의 돈을 얹는다. 범죄자의 친구들은 피해자들에게 '속죄금'이라며 돈을 나눠준다. 형편이 어려운 몇몇 피해자들은 그 돈을 받았다. 범죄자들에게 피해 보상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돈을 받은 것은 맞는데 사과를 받은 것은 더더욱 아닌 것이 바로 아세아여성기금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평균 연령이 90살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아세아여성기금이 발족했을 때도 70살 가까이 되었을 것이다.

김경순 할머니 등 기금을 받은 분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이고 고마워라'라고 받았을까, '마음엔 안들지만 그래도 일본 사람들의 마음인데'라며 받았을까, 이도저도 아니고 '당장 사는게 어려우니까' 받았을까. 그 마음은 당사자들 말고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다만 일본에서 의도했건 아니건 아세아여성기금 때문에 피해자 할머니들 사이에 상처가 생겼다는 점 만큼은 기억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는 기금을 받은 할머니들을 정부위로금 지급대상에서 제외했고, 이후 위안부 할머니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져 33명의 할머니들이 별도로 단체를 만드는 일까지 발생했다. 여성기금을 받은 당사자 중 한 분은 아직도 사적인 법정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김복동 할머니 증언자료 당사자 증언 원문자료

원글링크 : (정신대연구소)
* 게시일시 : 2000년 7월 15일
* 정리자 : 정진성


연구회에서 할머니들의 증언을 채록하는 어려운 작업을 진행하는 중에, 내가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을 정리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할머니와 며칠간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할머니의 기억력이 놀랍게도 선명했기 때문이다. 
1993년 6월에 나는 김복동 할머니와 비엔나에서 열린 UN 인권대회에 가게 되었다. 우리는 미국 여성단체가 주관하는 여성인권포럼에서 발표를 했고, 또 필리핀 단체와 함께 군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하는 포럼을 조직했다. 바쁜 일정 틈틈이 나는 할머니를 바짝 쫓아다니면서 할머니의 기억을 되살리느라 애썼다. 할머니의 기억은 매우 정확했고, 말씀에 논리가 정연했다. 때문에 혼란스럽지 않게 일관된 정리를 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당시의 상황을 아주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자세히 침착하게 묘사하는데 감정의 동요조차 별로 보이지 않았다. 오지의 군부대로 출장 위안을 가서 다리를 펼 사이도 없이 당한 일을 조용히 이야기하실 때는 오히려 내 가슴이 메었다. 오랜 세월 풍파를 겪으면서 감정을 가라앉히는 법을 나름으로 터득하신 듯했다. 
과거를 밝힌 후, 가깝게 지내던 친척들과 왕래가 끊겨 외로우셨으나, 그들을 위해 되도록 모습을 숨기는 배려를 해 오셨다. 그러나 최근 나눔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시고, “이젠 내가 할 일이 있으면 하겠다”고 하신다. 자주 따뜻한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다.


 
조사‧정리자 정진성은 1953년 충남 공주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학사, 석사, 시카고 대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1985년 봄부터 덕성여자대학교 사회학과에서 강의하다가 현재는 서울대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식민지 시기 사회사와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던 중 정신대 문제와 만나게 되었다. 


김학순 할머니 증언 읽기

김학순 할머니 증언자료 당사자 증언 원문자료

* 원글링크 : (정신대연구소)
* 게시일시 : 2000년 7월 15일
* 정리자 : 이상화


김학순 할머니 증언 읽기

이용수 할머니 증언자료 당사자 증언 원문자료

* 원글링크 (정신대연구소)
* 게시일시 : 2000년 7월 15일 
* 정리자 : 고혜정


이용수 할머니 증언내용 읽기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과 아세아여성기금 일본군 위안부


요새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말들이 많다. 일본의 사과를 환영한다는 어버이연합엄마부대의 집회가 이어지는 것을 보니 조만간 '일본 사과하라는 목소리 지겹다'는 말까지 나올 것 같다. 하긴 대놓고 말은 안해도 내심 "할복이라도 해야 제대로 된 사과일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예상보다 많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일 위안부 협상 이후 전개된 상황을 보며 뭔가 기본에서부터 생각해볼 지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안부 문제 관련 의견이 갈리는 지점은 크게 2군데다. 첫째,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문제에 대한 이견이다. 닛폰TV에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동영상을 보자. 6분부터 일본군의 위안부 모집 경위를 설명한다. 스스로 응모했거나 빚 때문에 팔려간 경우는 있지만 군에서 조직적으로 강제 연행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고 있다.
13분에는 요시다 세이지의 '강제 연행' 증언이 나온다. 이후 이 증언은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닛폰TV는 전한다. 14분에는 '강제성'에 대한 일본 내 논쟁을 다룬다. 하타 이쿠히코라는 학자는 군을 포함한 일본의 관헌에 의한 조직적 위안부 강제 연행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는 일본군과 관계가 있는 업체가 여성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분명히 강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환기시킨 정대협은 일본 정부에 7가지 사항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전쟁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사죄, 법적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이다. 그리고 '강제연행 사실 인정'은 기본으로 들어가 있다.
정대협이 생각하는 '강제연행'은 무엇일까? 정대협 홈페이지의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탭에 강제동원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연행 당시의 나이가 11세에서 27세에 이르며 대다수 취업사기나 유괴, 납치 등의 방식으로 동원되었다"고 되어 있다. 정대협이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를 거론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정대협이 생각하는 '강제성'은 요시미 교수가 생각하는 '강제성'과 같은 것이라 봐도 무방할 듯 하다.
1993년 고노 담화에서도 일본의 강제 동원을 인정하는 내용이 있다. "위안부의 모집에 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 경우에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이 있으며, 더욱이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하였다는 것이 명확하게 되었다."
종합해보면, 일본군 위안부의 동원은 주로 일본군과 관련이 있는 업자가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는 방식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현재 일본 정부는 '일본군이 직접 한 것은 아니다'는 입장이고, 위안부 피해자들과 정대협 등은 '큰 차원에서 보면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연행에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라 정리할 수 있다.
일본의 강제동원진상규명 네트워크의 고바야시 히사모토 차장은 2015년 12월 2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아직 수집하지 않은 위안부 관련 자료가 국립공문서관과 방위성에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일본 정부의 '간접적인' 강제동원만 알려졌지만, '직접적인' 강제동원을 알 수 있는 자료도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문제는 자료의 대부분이 일본에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됐건, 일본 학자들이 됐건 일본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두번째 쟁점은 아세아여성기금(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이다. 
국민기금은 사회당 소속의 무라야마 총리 시절인 1995년 7월 발족했다. 한국에서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으로 통하는 와다 하루키 교수 등의 모금과 일본 정부의 돈을 합쳐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도의적 책임조로 속죄금 200만엔, 의료복지지원금 300만엔을 지원했다.
구체적인 지원 내역은 알 수 없지만 와다 교수는 2014년 2월 27일 한국인 60명, 대만인 13명, 필리핀인 211명, 네덜란드인 79명 등 모두 363명에게 기금을 지급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기금이 설립된 이후 정대협에서는 바로 반발에 나섰다.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는 좋게 보면 정대협의 7대 요구안 중 전쟁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 사죄 3가지를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 교과서에도 위안부 문제가 실리기 시작했으니 4가지는 일본 정부가 요구를 수용한 셈이다.
국민기금은 '법적배상'과 연결된 문제다. 국민기금은 형식적으로는 민간의 '재단법인'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직접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돈을 준 것은 아니다. 또한, '배상'의 뜻이 아니라 '도의적 책임'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돈을 준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정대협이 그렇게 반발한 것이다.
문제는 일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비록 국민기금이 '법적배상'은 아니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 데 있다. 김학순 할머니와 함께 정대협 초기를 이끌었던 심미자 할머니는 정대협과 다른 노선을 걸었다. 심 할머니 등 국민기금을 받은 할머니 33명은 무궁화할머니회를 결성하고 정대협을 비판했다. 심미자 할머니와 인터뷰를 한 지만원씨는 2005년 4월 13~15일 자신의 홈페이지 시스템클럽에 무궁화회 33명이 진짜 위안부 피해자고 나머지는 가짜라고 주장한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처음 세상에 공개된 것으로부터 따지기만 해도 20년이 넘은 문제다. 목소리만 높이기보다는 기본부터 차근차근 돌아가보려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최초 증언'을 통해 피해자들 스스로가 생각하는 '강제성'은 무엇이었는지, 위안부 피해자들이 '법적배상'을 받기 위한 노력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아세아여성기금을 받은 33인의 할머니들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원문자료'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위안부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시시한 결말로 끝날 수도 있다. 애초에 내가 지쳐서 블로깅을 그만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난 일단 해보겠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주장' 말고 자료와 사실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하나씩 길을 찾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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